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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이야기 미국사 107] 드레드 스코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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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의 제임스 부캐넌 후보와 공화당의 존 프레몬트 후보의 대결이었다. 개표 결과, 결국 민주당의 제임스 부케넌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제임스 부캐넌 대통은 일흔살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그는 하원과 상원에서 의원으로 활동했고, 국무장관과 대사를 역임했다. 부케넌은 노예문제에 대한 분쟁에서 남부의 입장을 지지했다.

“북부는 남부에 대한 간섭을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아무리 봐도 북부가 너무 과한 면이 있어요. 이렇게 공격적인 방법으로 계속 남부를 압박 하면, 남부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북부에서 노예 문제에 대해 지금 처럼 계속 간섭을 한다면, 남부에서 연방을 탈퇴하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남부 입장에서 보면 연방을 탈퇴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니까요.”

제임스 부캐넌 대통령은 노예폐지론자들을 침묵시키기만 하면 노예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부캐넌 대통령은 각료를 임명할 때도 자신과 생각과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을 기용했다.

앞서, 프랭클린 피어스 전대통령이 각 정파를 골고루 기용해서 내각을 구성했으나 분열의 골만 깊어질 뿐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을 예로 들며,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해, 내각의 단합을 이루려 했다.

국무장관과 재무장관, 육군장관, 내무장관 그리고 우정장관, 모두 남부인이 기용됐고, 북부 출신도 남부 정책에 지지하는 이들로 내각을 구성했다. 1857년 3월, 제임스 부캐넌 대통령이 백안관에 취임했다. 부캐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노예제를 둘러싼 논쟁을 비난했다.

“노예제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은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북부는 노예가 합법인 노예주에 대한 간섭을 즉시 중단하고, 앞으로 새로 편입되는 준주의 노예 제도 문제는 그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합중국에서 노예 문제를 쉽게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노예문제와 관련된 소송에서는, 대법원에서도, 노예제 문제는 준주의 주민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판결을 내릴 거라고 믿습니다. 북부건 남부건, 선량한 미합중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법원의 판결은 수용을 할 테니까요. ”

취임사에서 밝힌 노예 문제에 대한 부캐넌 대통령의 입장은 당시 큰 화제가 되고 있던 ‘드레드 스코트’사건에 대한 대법원 대법관의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드레드 스코트는 미주리주에서 한 육군 군의관에게 팔린 흑인 노예였다. 군의관은 4년 간 스코트를 데리고 일리노이주와 위스컨신 준주에 거주했다. 스코트는 미주리 법원에, 자유를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 일리노이 주와 위스컨신 주에서 살았습니다. 1820년의 미주리 타협안에 따라, 이 두 지역은 노예제가 불법인 주가 됐고, 저는 4년이란 시간을 노예제를 금지하는 주에서 살았으니, 법적으로, 분명히 자유인이 될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 미주리 법원은 스코트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상고 되고, 미주리 대법원은 이번에는 스코트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스코트는 이 사건을 연방 대법원에 항소했다.

“저는,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제가 법적으로 자유인이라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제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라고 합니다. 미주리 법원이나 미주리 대법원이나, 다들 법을 잘 알고 배운 것도 많은 분들 아닙니까? 저 같이 평생 일만 하고 못 배운 무식쟁이도 아닌 분들이 같은 법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건지, 다들 하나 같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다. 제발 연방대법원에서, 제가 노예인지, 자유인인지, 정당한 판결을 내려 주십시요. ”

스코트의 항소에 대해 그의 주인은, 과연 국회가 준주에서 노예제를 중단시킬 권한이 있는지, 과연 미주리 타협안은 합법인지 여부에 대해 대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1856년 12월. 연방 대법원은 이 사건을 심리했다. 대법관들은 이 사건이 심각한 헌법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신중하게 검토했다. 9명의 대법관들 중 대부분은 이 민감한 문제에 말려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들은 흑인은 미국 국민이 아니라고 결정했고, 따라서 드레드 스코트는 법원에 자신의 사건을 청원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준주에서 노예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결정을 미룬 채, 판결이 내려지는 듯 했다.

하지만 9명의 대법관 중 2명은 이런 결정에 반대했다. 북부 출신인 이 두 명의 대법관은 지금의 결정이 준주가 노예제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판결문에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의 소수 의견을 내겠다고 했다. 두 명의 대법관이 소수 의견을 내기로 하자, 다른 일곱명의 대법관도 의견을 내기로 결정했다.

이 일곱명의 대법관 중 다섯명은 남부 출신이었고, 두 명은 북부 출신이었다. 남부 출신 대법관 중 한명인 제임스 카튼은 제임스 부캐넌,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친구였다. 부케넌은 카튼 대법관에게 드레드 스코트 사건에 대해 언제 판결을 내릴 것인지 묻는 편지를 썼고, 카튼 대법관은 답장을 보냈다.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은 곧 내려질 겁니다. 그 전에, 대통령 당선자께 한가지 도움을 청할 게 있는데, 북부 출신 대법관 중 한 명이 남부 출신의 다섯 명에게 합세하도록, 힘을 좀 실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민감한 상황에서 북부 출신 대법관 한명이 합세한다면, 국민들이 좀 더 쉽게 대법원의 결정을 받아 들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대통령 당선자께서 직접 펜실베니아 주 출신의 로버트 그라이어 판사에게 편지를 한 통 써 주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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