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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이야기 미국사 106] 피의 캔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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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에 반대하는 캔사스 주민들은 별도의 정부를 세웠다. 이들은 자유주당이라는 정치 집단을 만들었고, 당원들은 자체적으로 헌법을 만들고 주지사를 뽑았다.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은 자유주당의 행동을 혁명으로 규정했다.

“캔사스 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사태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엄중히 경고합니다. 자유주당 당원들이 준주나 연방정부의 관리들, 또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재산에 공격을 가할 경우, 즉시 국가반역죄로 기소하겠습니다. 또한 이시간 이후부터, 캔사스 주지사에게, 캔사스 내에 있는 군 기지 두 개에 대한 지휘권을 부여 하겠습니다. ”

자유주 지지자들은 노예제를 지지하는 켄사스의 신임 주지사가 이 군대를 자유주 정부의 지도자들을 체포하는 데 동원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자유주 지지자가 노예제를 지지하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면서 양측간의 전투가 시작됐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전쟁이, 아이고 전쟁이 벌어졌어요. 지금 로렌스 마을에는, 노예제를 반대하는 자유주 주민들이 죄-다 집결해서 방위군을 결성했답니다. 그런데 노예제를 지지하는 쪽에서 수 백명이 미주리 주 경계선을 넘어 와서, 로렌스 마을로 들어가서 마을을 모조리 불태우려 한다지 뭡니까.”

사태가 심각해 지자, 노예제를 지지하는 지사와 자유주 지사는 긴급 회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협상 끝에 휴전을 약속하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휴전은 오래 가지 못했다.

협상에 합의 한 뒤 몇 주 사이에, 휴전을 깨뜨리거나 자유주 지도자들을 체포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또다시 미주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캔사스로 건너왔고, 로렌스 마을이 다시 그들의 목표가 됐다. 이번에는 휴전이 없었다.

노예제를 지지하는 폭도들이 공격을 감행 해, 건물들을 불태웠다. 존 브라운을 비롯한 일부 로렌스 마을 사람들은 노예 지지자들의 군대에 끝까지 맞섰다.

“저는, 물러 서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이번 공격으로 자유주 주민 다섯 명이 살해됐습니다. 우리 쪽에서 다섯명이 목숨을 잃었으니, 이에 대한 대가로, 노예제를 지지하는 그쪽도, 다섯명이 죽어 줘야 겠지요. 우리가 당한 것과 똑같이 되갚으려면, 기어코 다섯 명을 죽여야 합니다.”

존 브라운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가, 노예제 지지자 다섯 명을 죽였다. 이렇게 캔사스의 혼란은 계속됐고, 주민들은 강제로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집들은 불탔고, 많은 사람들이 살해됐는데, 캔사스 준주의 이 유혈 사태를 사람들은 ‘피의 캔사스’라고 부른다.

노예제를 둘러싼 논쟁과 함께 북부의 자유주와 남부의 노예주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존재했다. 그 차이는 경제와 노동형태, 생활 방식도 포함됐다. 이런 차이점들로 야기된 1850년대 사회 혼란은 1856년 대통령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됐다.

1856년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의 Know-nothing당, 이렇게 세 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내세웠다. 휘그당은 서부 준주의 노예문제로 극심하게 분열돼 있었고, 당의 존재 조차 미미한 상태여서 대통령 후보를 내세우지 못했다. 남부 휘그당원 대부분은 민주당에 합류했고, 북부 휘그당원 대부분은 Know-nothing당에 합류했다.

Know-nothing당은 이민에 반대하는 비밀조직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것을 두려워했고, 당원들은 자신들이 이 조직에 소속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법정에서 당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항상,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대답했는데, 그래서 이 조직의 이름이 Know-nothing당으로 불리게 됐다.

민주당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제임스 뷰캐넌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신생 정당인 공화당은 대부분 노예폐지론자들이었는데, 필라델피아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고 캘리포니아주 출신 존 프레몬트 상원의원을 후보로 선정했다. 프레몬트는 미국의 서부를 개척한 주역으로 젊고 역동적인 사람이었다.

Know-nothing당은 이민을 비난하는 정책에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노예문제에서 북부와 남부 당원들의 의견이 부딪혔다. 결국 당 자체가 분열하고 말았다. 대의원들은 전당대회에서 이 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한 후보를 선출했으나, 그는Know-nothing당원이 아니라 휘그당원인 밀라드 필모어 전대통령이었다. 북부 지역 당원들은 필모어 전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며Know-nothing당을 이탈해 공화당 후보 존 프레몬트를 지지했다.

1856년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의 제임스 부캐넌 후보와 공화당의 존 프레몬트 후보의 대결이었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의 프레몬트 후보는 남부의 노예주에서는 지지표를 기대할 수가 없었고, 북부 주에서 얻은 표가 전부였다. 그런반면 부캐넌 후보는 남부 주들의 헌법적 권리가 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남부에서 승리를 기대했다. 개표 결과, 결국 민주당의 제임스 부케넌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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