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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행은 바보 같은 결정였다‘-탈북자 오길남 씨


독일 유학 중 두 딸과 아내를 데리고 월북했다 홀로 탈출해 괴로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오길남 씨의 이야기가 오늘(22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소개됐습니다. 오 씨는 자신이 바보같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탄식했는데요, 이연철 기자가 자세한 소식 전해 드립니다.

오길남 씨는 지난 1985년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부인과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던 오 씨는 당시 한국의 권위주의적 군사정부에 비판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오 씨를 눈 여겨 보고 있던 북한 공작원들이 접근해 간염을 앓고 있던 아내의 병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정부 내 좋은 일자리도 주겠다며 유인했습니다.

오 씨는 이에 부인의 반대를 무시한 채 가족을 이끌고 북한으로 건너갔습니다.

오 씨는 자신의 바보 같은 결정 때문에 그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탄식하면서,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부인의 생각이 옳았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오 씨의 부인은 간염 치료를 받지 못했고, 대신 오 씨 부부는 몇 개월 동안 김일성의 교시들만을 반복 학습해야 했습니다. 오 씨 부부는 대남 선전방송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북한 당국은 곧바로 오 씨에게 독일로 돌아가 한국 유학생들을 포섭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물론 가족은 데리고 갈 수 없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오 씨는 한국 유학생들을 데려오겠다고 했지만, 부인은 오 씨가 양심에 비춰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교통사고로 이미 가족이 다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고, 오 씨는 회상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지령을 받고 독일로 향하던 그는 결국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구조를 요청했고, 1992년에 한국대사관에 자수했습니다.

오 씨는 19년 전 독일에 주재하는 비공식 북한 기관원들을 통해 부인의 자필 편지와 눈밭에서 찍은 사진, 딸의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전달받았습니다. 딸은 녹음테이프에서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먹였습니다.

가족들은 오 씨가 북한을 탈출한 직후 체포돼 '15호 수용소'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오 씨는 더 이상 가족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오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면서, 악명 높은 '15호 수용소'는 공개처형이 흔하고 구타와 강간이 횡행하며 수감자들은 굶주림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올해 68살인 오길남 씨는 한국 정부가 출연한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했습니다. 술에 의존해 과거에 얽매인 채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오 씨는 가끔은 가족들이 살아 있다고 믿고, 또 때로는 가족들이 죽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면서, 어느 경우든 모두 자신의 바보 같은 결정 때문에 그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자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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