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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이야기 미국사 101] 1850 타협안 (3)


매사추세츠 주의 다니엘 웹스터 상원의원은 노예제도는 나쁜 제도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단합이라고 호소했다. 웹스터 상원의원은 노예제 폐지를 지지하는 단체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저는 노예제 폐지 단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생각진 않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 행동으로 움직이는, 정직하고 휼륭한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체들이 남부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따지고 간섭하는 행동들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다는 사실을 간과 할 수는 없습니다.”

웹스터 의원은 버지니아 주의 경우를 분쟁의 예로 들며 설명했다.

“버지니아 주는 원래 노예제도가 합법적이었죠. 실제로 노예폐지론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에는, 버지니아 주의 여론은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노예폐지론자들이 주민들을 자극하고 나서 부터는, 아무도 공개적으로 노예제를 반대할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노예폐지론자들은 노예제를 없앤 게 아니라, 오히려 노예제 존속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말입니다. ”

웹스터 의원은 또, 북부는 남부가 취하고 있는 조치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남부에서 새로운 미국의 통치령에 노예제 합법화를 추진하는 것 역시, 잘못 된 일입니다. 남부가 이런 시도를 한다면, 그것은 ‘노예제는 이미 그 제도가 존재하는 주로만 제한한다’는 초기의 협정을 위반하는 주장입니다. 또 최근 남부 의원들이, 남부의 노예들이 북부의 근로자들 보다 더 잘살고 있다고 주장하며, 북부의 노동조건에 대해 성명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 북부는 항의할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

웹스터 의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북부와 남부가 서로를 용서하자며 호소했다.

“남북이 함께 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남부는 자칫하면 미합중국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전쟁이나 폭력을 통하지 않고는 연방 탈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북부와 남부 양쪽 모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서로 연결돼 있는데, 어떻게 이걸 하루 아침에 갈라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

웹스터 의원은 미합중국이 분리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합중국의 남과 북은 어떤 방법으로도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의회도, 결코, 북부와 남부 사이에 국경을 만들 수 없습니다. 어떤 의원은 평화적인 분리를 주장하셨는데, 평화적인 분리라니요?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며,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을 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우리는 위대한 헌법의 영향을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햇살이 비치면 산에 쌓인 눈이 녹아 없어지듯이, 미합중국이 분리라는 말로 지금껏 쌓아 놓은 모든 것들이 와해돼야 한다는 말입니까? 의원들께서는 더 이상 ‘분리 가능성’같은 끔직한 문제를 놓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어두운 생각은 꺼내지도 말고, 그 대신, 함께 광명으로 나아갑시다. 자유와 연방의 신선한 공기를 다시 한번 만끽하자, 이말입니다. ”

다니엘 웹스터 의원의 연설은, 북부와 남부를 완전히 분리시킬듯이 위협했던, 끊임 없는 논쟁들을 일단 진정시켰다. 그리고 얼마 뒤, 노예주 의원 6명과 자유주 의원 6명으로 위원회가 구성돼, 새로운 법안을 마련했다. 켄터키 주 헨리 클레이 의원의 제안을 기초로 한 타협안이었다.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를 자유주로 인정하고, 뉴멕시코 와 유타에 준 주 정부를 세우도록 규정했으며, 텍사스와 뉴멕시코 간의 경계선 분쟁을 해결했다. 또 콜롬비아 지역에서 노예 매매를 금지시켰고, 도망간 노예에 대한 새 법의 승인을 요구했다

북부와 남부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 타협안을 지지했다. 하지만,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은 이 타협안을 지지 하지 않았고, 이 논쟁이 그렇게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믿지 않았다.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의 재임 1년 반이 지나가던 때인 1850년 7월 4일. 테일러 대통령은 독립기념일 야외기념 행사에 참석한 뒤부터 심장에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닷새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의 뒤를 이어 밀라드 필모어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밀라드 필모어 대통령은 노예제와 서부 준주에 대한 의회 타협안에 대해, 테일러 전 대통령과는 의견이 달랐다. 필모어 대통령은 미국이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의회 타협안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롤 보냈다. 1850년 9월, 상원과 하원은 ‘1850년 타협안’의 전 부분을 승인했고, 필모어 대통령은 이 법안에 서명했다.

필모어 대통령이 ‘1850년 타협안’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은 축제 분위기로 들떴다. 많은 사람들은 노예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생각했고, 연방이 살아나게 됐다고 믿었다. 1850년 타협안은 노예문제와 서부 준주 문제를 둘러싼 국가적인 논쟁을 진정시켜 주었고, 국가의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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