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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화폐의 역사 (4)


안녕하세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지난 주 홍콩에서 실시된 경매에서 중국 청나라 때 지폐 한 장이 미화로 약 12만 7천 달러에 팔렸다고 합니다. 이는 지폐 경매 사상 최고액이라고 하는데요. 중국은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해 사용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초의 지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대체로 10세기 송나라 때부터 사용됐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지폐가 널리 통용됐다는 13세기말 원나라를 기준으로 잡아도 서양보다 4백 년이나 앞선 것인데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은 지폐의 등장과 현재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플라스틱 머니, 즉 신용카드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지폐가 너무 오래 유통돼서 찢어지거나 닳게 되면 조폐소에서 3 퍼센트 할인해 새 지폐로 교환해준다. 만약 접시나 허리띠 등 사치품을 만들기 위해 금이나 은이 필요하다면, 왕립 조폐소에 찾아가 이들 지폐를 내고 조폐소장에게 금이나 은을 받아오면 되는 것이다. 왕의 군대도 모두 이런 종류의 돈을 지불 받았다.”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13세기 중국인들이 지폐를 사용하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이었던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 숙부와 함께 동방으로 여행을 떠나 17년 동안 중국에 머물며 관직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금화나 은화 등 주화에만 익숙했던 마르코 폴로의 눈에 원나라의 지폐는 신기한 마법의 종이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글턴 씨//
“지폐는 지폐에 쓰여있는 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화폐라고 생각합니다. 금화는 무게를 달았을 때 그 무게만큼 가치가 있지만 지폐, 그러니까 종이는 그만한 가치가 없잖아요? 지폐는 중국에서 먼저 사용됐던 것 같습니다. 구리 동전을 많이 갖고 다니다 보니 무거우니까, 좀 더 액면가가 큰 화폐가 필요했죠. 그러다가 지폐의 남발로 인플레이션, 즉 화폐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크게 상승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 때문에 지폐 사용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 소속 화폐 전문가로 ‘역사: 화폐’란 책의 공동저자인 캐서린 이글턴 씨의 설명이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지니는 금화나 은화와는 달리, 지폐는 신용을 기반으로 한 명목화폐인데요. 독일의 유명한 소설가 괴테는 19세기에 발표한 희곡 ‘파우스트’에서 지폐에 대한 환상을 꼬집었습니다.

“알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하노라. 여기 이 지폐는 1천 크로네로 통용될 것이다. 제국의 영토 내에 매장된 무진장한 보화를 그 확실한 담보로 충당한다. 그 풍부한 보물을 곧 발굴하여 태환용으로 사용하도록 조치하였다.”
(‘파우스트 2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정서웅 옮김 민음사)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와 그에게 영혼을 판 주인공 파우스트는 부채에 허덕이는 황제를 설득해 지폐를 발행하게 합니다. 나라 안 어딘 가에 묻혀있는, 아직 발견되지도 않은 보물을 담보로 해서 지폐를 발행한 건데요. 거액의 지폐가 땅에 굴러다닐 정도로 흔해지자, 사람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빵집으로 달려가 빵을 사고, 새 옷을 만들어 입고, 잔치를 여는데요. 만약 현실에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금방 물가가 치솟으면서, 지폐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웨더포드 박사//
“예를 들어 1700년대 초반에 프랑스가 지폐를 발행했는데요. 프랑스가 미국에 소유하고 있던 자원을 담보로 한 것이었습니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의 금광에 금이 많이 묻혀있다고 믿고 지폐를 발행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금이 많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러자 지폐가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면서, 프랑스 경제에 큰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돈의 역사’란 책의 저자인 인류학자 잭 웨더포드 박사였습니다. 독일 작가 괴테가 ‘파우스트’를 쓸 무렵에는 유럽에서 지폐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는데요. 서양 최초의 지폐는 17세기에 스웨덴에서 나왔습니다.

//이글턴 씨//
“유럽에서는 스웨덴에서 처음 지폐를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구리 동전 무게가 20 킬로그램이나 나가게 됐거든요. 그래서 실용적인 이유에서 지폐가 필요하게 됐죠.”

대영 박물관의 화폐 전문가인 캐서린 이글턴 씨에 따르면, 스웨덴 스톡홀름 은행의 설립자인 요한 팜스트루흐가 1661년에 유럽 최초의 지폐를 발행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사용되던 구리 동전이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사용하기 불편했기 때문에 지폐가 나오게 된 것인데요. 초기 지폐는 금이나 은으로 바꿀 수 있는 태환화폐였습니다.

//이글턴 씨//
“예를 들어 2백 년 전에 영국 은행권을 은행에 가져가면 금으로 바꿔줬다는 거죠. 10 파운드 지폐를 은행에 내면, 금 10 파운드, 약 4. 5 킬로그램의 금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지폐는 그렇지 않죠. 10 파운드 지폐를 내면 그에 해당하는 소액권 다른 지폐나 동전으로 바꿔줄 뿐, 은행에서 금으로 바꿔주진 않죠.”

그렇기 때문에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보다 훨씬 많은 지폐를 발행할 경우, 문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지폐를 들고 가도 금으로 바꿀 수 없으면, 그 지폐는 그냥 종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죠. 유럽 최초의 지폐를 발행한 스톡홀름 은행 총재 팜스트루흐 역시 이런 실수를 저질렀는데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폐를 남발했습니다. 팜스트루흐는 후에 국가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혐의로 사형 선고까지 받았는데요. 나중에 징역형으로 감형돼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상업은행의 역사가 이탈리아의 것이고, 중앙은행의 역사가 영국의 것이라면, 중앙정부가 발행한 지폐의 역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의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오늘날 지폐가 널리 통용되게 된 공을 미국에 돌렸는데요. 미국 중앙정부가 발행한 최초의 지폐는 ‘대륙지폐’란 뜻의 ‘컨티넨탈 (Continental Currency)’이었습니다. 1776년, 영국에 대해 독립을 선언한 미 대륙회의는 독립전쟁 자금을 대기 위해 ‘컨티넨탈’이란 지폐를 발행한 것인데요. 미국 화폐연구협회 박물관 전시책임자인 덕 머드 씨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머드 씨//
“처음에는 컨티넨탈이 인기가 좋았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으니까요. 그래서 굉장히 많이 발행했는데, 불행히도 이를 지원하는 금이나 은이 없었거든요. 1776년 말에서 1777년 초에 이르자,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데 어떻게 정부가 금이나 은으로 바꿔줄 수 있겠느냐 걱정하면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요. 1778년에 들어서 컨티넨탈은 완전히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아무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컨티넨탈로 쓴 맛을 본 미국 연방정부는 한 동안 지폐 발행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연방정부는 금화나 은화 같은 주화만 발행했고요. 지폐는 각 주 정부가 승인한 민간 은행에서 발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미국 연방정부가 영구적으로 다시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1861년에 남북전쟁이 일어난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미국 화폐연구협회 박물관 전시책임자인 덕 머드 씨는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합니다.

//머드 씨//
“전쟁은 경제에 부담을 주고, 병사들이나 무기 등 비용이 많이 들죠. 미국 서부에서 금과 은이 나오고 있었지만 전쟁비용을 댈 만큼 충분하진 않았기 때문에 미국 채권을 담보로 지폐를 발행한 건데요. 지폐 뒷면을 녹색 잉크로 인쇄했기 때문에 ‘그린 백스 (Green Backs)’라고 불렀습니다. 이 그린 백스는 미국에서 처음 영구적으로 발행된 지폐입니다.”

그 뒤 미국은 1913년에 연방준비법을 제정해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설립하고요. 지폐의 발행을 일원화합니다.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는 금화나 은화 등 실물화폐를 화폐 1세대라고 한다면, 신용에 기반을 둔 명목화폐인 지폐를 화폐 2세대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화폐 3 세대, 제3의 화폐로 불리는 플라스틱 머니, 즉 신용카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그가 내게 준 판지 조각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가 말을 이어갔다. ‘이 카드는 일정 금액의 달러 가치가 있습니다. 옛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내가 정해놓은 가치를 점원이 확인하게 되는데요. 내가 주문한 물건 가격에 맞춰, 여기 줄줄이 있는 4각형 모양을 하나씩 떼어내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벨라미 ‘뒤를 돌아보며’)

19세기 미국 작가 에드워드 벨라미는 이상향을 그린 소설 ‘뒤를 돌아보며 (Looking Backwards)’에서 신용카드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화폐 없이 모든 생활필수품을 구입하고 소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지불 수단으로서 ‘신용카드’란 용어를 사용한 것인데요. 국가가 일정 금액의 가치가 있는 종이 카드를 분배하고, 국민은 생필품이 필요할 때마다 이 카드를 이용해 배급소에서 타간다는 것입니다. 벨라미는 이 소설에서 국가가 모든 것을 공급하고, 온 국민이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주의 이상향을 그렸는데요. 현실에서 신용카드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탄생했습니다.

//이글턴 씨//
“신용카드 같은 플라스틱 카드를 이용한 거래 방식은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일부 백화점에서 신용카드를 발행했는데요. 이것이 확대되면서 어떤 상점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일반 신용카드로 발전한 거죠.”

대영 박물관의 화폐전시 책임자인 캐서린 이글턴 씨는 미국 백화점이 일부 단골들을 위한 외상구매 수단으로 처음 신용카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는데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신용카드의 효시는 1950년에 나온 다이너스 클럽 카드였다고 미국 화폐연구협회 박물관의 덕 머드 씨는 말합니다.

//머드 씨//
“식당에서 사용하도록 나온 카드죠. 다이너스 클럽 가맹점인 식당에서 사용하게 돼있는데요. 처음에는 카드가 종이였어요. 고객의 이름과 번호, 발행날짜, 기간 등이 쓰여 있고요. 뒤에 작은 책자가 달려 있어서 이 카드를 받는 식당 이름과 주소 등이 적혀 있었죠. 그러다가 가맹점이 늘어나면서 책자가 점점 두꺼워지니까 그냥 식당 유리창에 다이너스 클럽 상징인 로고를 붙이도록 했고요. 플라스틱으로 카드를 만들고 정보를 담은 자기 띠를 붙이는 등 점점 진화하게 된 거죠.”

다이너스 카드가 성공을 거두면서 식당에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나오게 됐고요. 오늘날 일부 국가에서는 금전 거래의 50 퍼센트 이상이 신용카드로 이뤄진다고 할 정도로 신용카드가 널리 확산됐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손 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지불결제 방식이 늘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손 전화가 화폐나 신용카드를 대신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조개 껍질에서부터 금화와 은화, 지폐와 신용카드로 발전해온 화폐가 미래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지난 4주 동안 살펴본 화폐의 역사는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다음 주 이 시간에는 더욱 흥미로운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 뵐 것을 약속 드리면서, 저는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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