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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회조사국 은퇴하는 한반도 전문가 래리 닉쉬 박사


미국 의회 산하 연구기관인 의회조사국의 한반도 전문가 래리 닉쉬 박사가 다음 달 초 은퇴합니다. 지난 1966년 의회조사국 근무를 시작한 이래 40년 넘게 한반도 문제를 연구, 조사해 온 닉쉬 박사는 어제 (27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자신이 작성한 다수의 북한 관련 보고서가 미 의회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회고했습니다. 닉쉬 박사를 유미정 기자가 인터뷰 했습니다.

문) 닉쉬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어떤 계기로 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답) 저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다시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외교관계로 조지타운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3년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 상무부 동아시아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수출 상담회에 참가하고 아시아 무역사절단들을 만나면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됐죠. 이후 정치안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의회조사국의 전신인 입법참고국 LRS (Legislative Reference Service)의 아시아 외교정책 부서 분석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때가1966년 이었습니다.

문) 당시 의회에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가 많이 있었나요?

답)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외교정책 부서에 5~6명의 지원 인력을 포함해 2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90명 정도로 직원이 늘었는데, 정말 괄목할만한 성장입니다. 한반도 전문가는 저 외에 마크 매닌 박사, 딕 낸토 박사, 엠마 찬렛-에버리 등 3명이 더 있습니다.

문) 청취자들을 위해서 의회조사국 CRS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CRS는 지난 1914년 미 의회가 의원들과 의회의 각종 위원회를 지원하도록 만든 초당적인 연구, 조사 기관입니다. 이들의 의뢰에 따라 최적의 방법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의회조사국의 일입니다. 물론 의회조사국 자체의 노력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 박사님께서 작성한 북한 관련 보고서들을 저희 방송에서도 여러 번 소개했는데요, 보고서 가운데 가장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 있습니까?

답) 하나는 1980년 초에 쓴 것입니다. 북한 관련 사안에 대한 단순한 연대기를 정리한 보고서였는데요, 당시 하원 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 소위 위원장이었던 민주당의 스티븐 솔라즈 의원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솔라즈 의원은 북한의 초청으로 방북한 미국의 몇 안 되는 의원 가운데 한 사람인데요, 그가 보고서에서 북한 측에 제기하려는 사안에 일일이 표시를 하고서 북한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 측과의 논의가 아주 깊이 있고 자세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솔라즈 의원이 제기한 사안 가운데 하나가 북한 측을 아주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문) 솔라즈 의원이 제기한 문제가 어떤 것이었나요?

답) 북한의 평화협정 제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북한은 지난 1974년 최고인민회의 의장 이름으로 미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북한은 1980년 초에도 지금처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습니다. 저는 보고서에서 북한이 평화협상으로 미-북 양자 협상을 이끌어 내려 한다고 분석했는데, 솔라즈 의원이 이를 북한 측에 추궁한 것이죠.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제안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평화협정 체결 제안과 이를 이용하겠다는 의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없습니다. 다만 현재 평화 협상으로 핵 협상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조금 다른 것입니다.

문) 최근 발표한 보고서 가운데 의회의 주목을 끈 보고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답) 최근에는 많은 의원들이 북한과 이란 관계, 그리고 중동 내 북한의 테러지원 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 국무부가 테러단체와 관련된 북한의 활동을 의회에 보고하도록 의무화 한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의원들이 백악관과 국무부에 북한과 이란의 관계를 우려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의회는 아니지만 북한 측의 직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문) 어떤 내용의 보고서였나요?

답) 한국의 재벌기업인 현대의 자금이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건네졌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이 보고서가 나가자 북한은 근거 없는 것이라며 의회조사국을 강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문) 박사님께서 의회조사국 근무를 시작한 1966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13년 뒤인데요. 당시 한반도 문제를 보는 미국의 시각은 어땠습니까?

답) 당시 공산주의가 조기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시했던 것은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분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였습니다. 김일성은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쪽을 이용해 양쪽 모두에 지원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덩샤오핑 정권 하에서 중국이 좀 더 개혁주의로 나가자 북-중 관계가 악화됐습니다. 북한이 좀 더 소련 쪽으로 치우쳤는데 불행히도 소련과 동유럽권이 붕괴하면서 북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지요. 이후 1990년 초 워싱턴과 한국에서는 북한 붕괴론이 제기되면서 미국의 정책이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저는 1996년 한국 국방대학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동유럽의 붕괴 이유가 북한에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체제는 루마니아 같은 나라와는 다르며, 북한도 동유럽 국가들의 붕괴로부터 교훈을 배웠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가정한 대북정책을 입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 지난 40 여년을 회고할 때,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가장 큰 성공과 실패는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을 강화한 것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봉쇄한 것이 가장 큰 성공이라고 봅니다. 또 미국의 정책이 1988년 한국의 민주화에 영향을 주고, 1960년대에 시작해서 197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의 경제적 기적에 기여한 것 등도 성공입니다. 한국의 기적적인 도약과 발전은 미국 외교정책의 성공적인 요소들이 이뤄낸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가장 큰 실패는 미국의 정책이 북한의 진정한 내부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미국은 미국이 바라는 북한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 동안 너무 핵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대북정책에 북한의 내부 변화와 개혁을 촉진하는 요소들을 넣지 못했습니다.

문) 북한 내부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답) 중국의 덩샤오핑 정권은 지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북-중 관계에서 북한의 경제개혁을 중요한 사안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중국은 북한이 중국식 경제 개방을 추진하는 것을 조건으로 원조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와 평행전략을 추진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었죠. 덩샤오핑 사후 중국은 이런 입장을 철회했습니다. 북한의 열악한 경제 사정과 북한이 아직도 외부 원조를 바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은 아직도 이 같은 노력을 전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문) 역사학자로서 한반도 통일에 대해 어떻게 전망 하십니까?

답) 통일을 향한 진정한 움직임이 있으려면 북한에 김정일 일가 체제가 아닌 다른 종류의 체제가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한국과 세계 다른 나라들에 개방하겠다는 좀 더 강한 의지를 가진, 좀 더 온건한 시각의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해야 합니다. 지금 김정일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으로 권력 세습이 거론되고 있는데, 김정일 일가가 권력을 유지하는 한 통일을 향한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미 의회조사국에서 40년 이상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하고 은퇴하는 래리 닉쉬 박사와의 인터뷰를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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