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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이야기 미국사 98] 새 영토에 대한 노예제도 문제


남부와 북부는 새 영토에서 노예제도 허용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사실, 텍사스가 주로 합병되기 전까지는, 미국의 모든 지도자들은 의회에 노예 문제 결정권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와 오레건, 뉴 멕시코 등의 노예 문제 처리에, 미주리 타협안의 경계선이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주리 타협안의 적용 범위를 서쪽의 태평양 연안 지역까지 확대하는 건 어떻습니까? 즉 통치령의 경계선 북쪽 지역은 노예 해방구로 남아 있고, 남쪽은 노예 허용구로 남겨 두는 거지요. ”

미주리 타협안 역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새영토에 정부를 수립하자는 데는 누구나 동의했지만, 노예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델라웨어 출신 존 클레이튼 상원의원이 새 영토의 노예문제를 다루는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다.

특별 위원회는 상원의 합의에 따라 구성됐고, 클레이튼 상원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특별 위원회는 6일 이내에 타협안을 통과시켰다.

“네 명의 휘그당원과 네 명의 민주당원, 그리고 북부와 남부에서도 같은 수의 의원들이 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타협안을 도출해 냈습니다. 오레건은 자유 통치령으로 노예제를 불법으로 결정했습니다. 또 캘리포니아와 뉴 멕시코는 지방 의회가 노예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갖지 못하는 만큼, 이 두 곳의 노예 문제는 모두 연방 대법원이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

특별 위원회가 내 놓은 타협안은 상원을 통과 했지만, 하원은 이를 부결시켰다. 오랜 토론 끝에, 의회는 오레건의 통치령 정부 수립안을 통과 시켰고, 오레건은 노예를 금지하는 자유의 통치령이 됐다.

근소한 표 차이로, 오레건이 노예를 금지하는 주가 되자, 존 칼훈 상원의원은 크게 반발했다.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남부인들에게는 불리한 표결이었고, 무엇보다, 남부 출신 의원들이 노예 반대 통치령 설정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레건이 노예 반대 통치령이 되고 얼마 뒤, 의회는 회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1848년 선거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미합중국이 새로운 대통령 선거 운동에 돌입했던 이 시기, 제임스 폴크 대통령은 연로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행정부 출발과 함께 대통령으로서 해야할 몇가지 큰 계획들을 세웠었죠. 무엇보다 수입 상품에 대한 세금을 줄이는 문제와 독립된 재무부를 창설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영국과 오레건 경계선 문제도 우선 과제였습니다. 또 캘리포니아를 미국 영토로 합병시킬 계획도 세웠었지요. 다행히도, 제 임기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 처음 계획들이 거의 성사가 됐고, 큰 성과를 이뤘는데 하하.. 이 만하면 국가를 위해, 제대로 봉사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

폴크 대통령은 4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대통령으로서 계획했던 일들을 성사시켰다. 오레곤 문제는 영국과 타협을 이뤘고, 1846년에는 정부 돈을 보관 할 수 있는 독립된 재무부를 다시 수립해, 정부 자금을 더 이상 민간 은행에 보관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처음 행정부 출범 때의 계획대로 수입 상품에 대한 세금도 대폭 낮췄고, 멕시코와 맺은 협정에 따라 캘리포니아 뿐만 아니라 뉴 멕시코까지 미국 영토로 합병 시켰다.

1848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민주당은 볼티모어에서 열린 전당대회를 통해 미시간 출신의 루이스 카스 상원 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예순 여섯의 나이에 후보로 지명된 카스 의원은 북부 출신이면서도 노예 제도를 반대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미 합중국의 새로운 통치령의 노예 문제는, 현지 주민 스스로의 뜻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휘그당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던 전쟁 영웅 재커리 테일러 장군을 후보로 선정했다.

“테일러 장군은 정치 경험도 없고, 정식 교육을 받은 적도 없죠.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대부분을 서부에서 인디언과 싸우며 보냈고, 소규모 미국 군 부대의 지휘관으로 일한 게 경력의 전붑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정치인들의 눈으로 볼 때, 대통령이 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유권자들이 전쟁영웅을 얼마나 좋아하고, 어떻게 열광하는지,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윌리엄 헨리 해리슨 전 대통령도 군대의 영웅이라는 것 때문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사실입니다. ”

민주당은 루이스 카스 의원을 휘그당은 재커리 테일러 장군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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