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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티 구호에 주도적 역할 


미국에 거주하는 아이티인들이 고국의 지진 참사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가족들의 생사 확인에 매달리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미국이 국제사회의 아이티 구호 활동을 주도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고 합니다.

) 미국에도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죠?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 가장 집중돼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답) 플로리다 하면 중남미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 내 도시이기 때문에 언뜻 그럴 것 같은데요. 실제로 미국에서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가장 많은 지역은 뉴욕 시입니다. 12만 5천 명이 뉴욕에 거주하고 있구요.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다음으로 아이티 인구가 밀집돼 있다고 하네요.

) 그 정도 규모라면 아이티에 있는 그들 가족들 수만 해도 상당할 것 같네요. 가족들 안부 걱정 때문에 제대로 생활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답) 말로는 표현 못할 상황이라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아이티에 가족이 살고 있다는 뉴욕의 한 아이티인 얘기를 들어보시죠.

"Their house collapsed…"

이모는 지진으로 이미 숨졌고 살아남은 다른 가족들도 거리에서 생활하며 굶주리고 있다는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아이티인 밀집지역인 뉴욕, 하지만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지역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구조대를 결성해 지난 주말 아이티 지진 현장을 찾았습니다.

) 잔해 속에 매몰된 사람들을 어떻게든 신속히 구조해 내는 게 가장 급선무겠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말이죠.

답) 그렇습니다. '태스크 포스 원'이라고 명명된 이들 뉴욕 출신 구조대원들은 지금까지도 아이티 건물 잔해를 샅샅이 뒤지면서 생존자들의 가느다란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대로 소리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기력이 없을 텐데) 그래서 구조대가 가져간 것이 음향탐지 장치입니다. 콘크리트 잔해 밑의 아주 작은 숨소리라도 인식할 수 있게 말입니다.

) 참 절박한 상황이군요. 미국 내 다른 아이티 커뮤니티 상황은 어떻습니까?

답) 앞서 마이애미가 아이티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미국 내 도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마이애미에 집단촌을 이룬 아이티 이민자들, 고국의 가족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습니다.

"No communication + I feel bad + No good…"

거의 절규에 가깝죠? 대가족이 아이티에 남아 있는데 아무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뉴욕, 마이애미 뿐만이 아니구요, 미국의 또 다른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많은 아이티인들도 고국의 엄청난 재난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이 곳은 영화산업의 중심지답게 영화배우나 아이티 출신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구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 미국 내 아이티인들,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최악의 지진 참사를 겪고 있는 아이티에 대해 그래도 미국이 구호의 선봉에 서 있죠?

답) 그렇습니다. 미국은 이미 아이티에 수천 명의 군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1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데요. 미국은 또 주요 공항 관제권을 넘겨받아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아이티의 행정부 기능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아이티 국민들은 식량, 식수, 의약품을 비롯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것이다, 이런 약속을 하고 있구요.

) 전직 대통령들도 나서고 있다면서요?

답) 예. 클린턴과 부시 전 대통령도 아이티 돕기 재단을 만들어 기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관계 뿐만이 아니구요. 마이애미의 가톨릭 교회도 나서고 있는데요. 지진 참사에 부모와 집을 잃은 아이티 어린이 수천 명을 플로리다로 집단 이주시켜 보호, 양육하는 계획을 진행 중입니다. 실현 여부는 불분명하지만요.

) 자, 미국이 아이티 구호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의외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어요. 양국 간 과거사가 좀 껄끄럽다, 그게 출발점인 것 같아요.

답) 사실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과 아이티, 양국관계가 그리 순탄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2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1804년 아이티 주민들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흑인들의 노예국가'라면서 아이티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미국도 영국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요.

답) 모순이죠? 오히려 1888년에는 미국 해병대가 아이티의 군부 반란을 지원했구요, 1915년에는 정치불안을 겪던 아이티에 군대를 보내 장기 주둔시키게 됩니다. 1934년까지 사실상의 식민통치를 계속한 겁니다. 아이티에 대한 미국의 간섭은 최근까지 계속됐는데요. 1990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취임 몇 달 만에 쿠데타로 망명에 올랐습니다만 미국 주도 하의 다국적군이 다시 복위시킨 적도 있습니다.

) 아이티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 도마에 올랐었는데, 미국의 이번 아이티 지원도 그래서 딴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런 시각도 있다는 거죠?

답) 국익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죠. 아이티는 쿠바와 함께 카리브 해의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쿠바와 관계 진전이 더딘 상황에서 아이티가 등을 돌리면 카리브해를 잃게 된다는 겁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경우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미국의 아이티 지원에 흠집을 내고 있습니다. 왜 자꾸 무장병력을 파견하느냐는 겁니다. 총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의사와 약품, 연료 등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 아니냐, 이렇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예.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지도력은 타국을 종속시키는 것보다 타국을 돕는 데서 나왔다, 이렇게 공언하고 있는데요. 최악의 지진 참사를 겪고 있는 아이티가 세계 열강들의 주도권 경쟁의 무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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