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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달력의 유래와 역사 (2)


안녕하세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2010년 새해가 밝은 지도 벌써 닷새가 지났습니다. 벽에 새 달력은 걸어 놓으셨는지, 가족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빨간 동그라미는 그려 놓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큰 의미를 부여하고, 지난 날을 되새기거나 새로운 각오를 다지곤 하는데요. 사실 달력은 인간이 정해놓은 하나의 규칙에 불과하죠. 어떻게 해서 이런 규칙이 생기게 됐는지,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지난 시간에 이어서 달력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달력의 역사는 수만 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사시대 인류는 동물 뼈에 자국을 남겨 날짜를 셌고요. 달과 별, 태양 등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해 달력을 만들었는데요.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달력은 고대 로마 달력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이정모 교수//
“기원전 48년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정벌에서 돌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를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나라로 바꾸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정권이 안정적일 것이라고 느낀 거죠. 여기에 가장 우선적인 것이 바로 달력이었습니다.”

안양대학교 이정모 교수의 설명이었는데요. 당시 로마인들이 사용하고 있던 누마력은 한 해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서, 시민들 사이에 불만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이정모 교수//
“어떤 해는 355일이고, 또 어떤 해는 382일이니, 세금을 내는 입장이나, 또는 관리의 임기가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니 사회가 불안했죠. 이런 불안을 잠재우고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달력을 개혁하기 위해서,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한 것입니다.”

2천여 년 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포한 율리우스 달력의 특징은 바로 윤년을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미국 북아이오아 대학교 토마스 학키 교수입니다.

//학키 교수//
“초기 태양력의 문제점은 대체적으로 1년의 길이가 짧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가 갈 수록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가 계절상으로 맞지 않게 됐죠. 율리우스 달력이 중요한 이유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정기적으로 날짜를 수정했다는데 있습니다. 바로 4년 마다 한번씩 윤년을 둔 것이죠. 실제 1년의 길이는 365. 25일인데요. 1년 365일이 정확하지 않으니까, 4년마다 한 번씩 하루를 더해서, 366일로 정한 것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 각 달의 이름은 로마 고유의 이름을 그대로 썼습니다.

“고대 로마 달력에서 새해 첫 달은 군신 마르스(Mars)의 이름을 딴 마르티우스 (Martius)였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달, 또는 ‘땅과 바다를 여는 이’란 의미를 가진 아브릴리스(Aprilis)가 2월, 봄의 여신 마이아(Maia)의 달을 뜻하는 마이우스(Maius)가 3월, 결혼과 출산을 관장하는 최고의 여신인 유노(Juno)의 이름을 딴 유니우스(Junius)가 4월, 그리고 다섯 번째 달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가 5월, 여섯 번째 달을 의미하는 섹스틸리스(Sextilis)가 6월이었다.”

네, 고대 로마 달력에서는 현재의 3월에 해당되는 마르티우스가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이었습니다. 군신 마르스의 이름을 딴 마르티우스는 겨울철에 잠시 휴전에 들어갔던 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곱 번째 달을 의미하는 셉템베르(September)는 7월, 여덟 번째 달을 의미하는 옥토베르(October)는 8월, 아홉 번째 달을 의미하는 노벰베르(November)는 9월, 열 번째 달을 의미하는 데셈베르(December)는 10월이었다.”

그렇습니다. 초기 로마의 달력은1년이 열 달로만 돼 있었고요. 겨울철 농한기인 마지막 두 달에는 아예 이름이 없었는데요. 기원전 8세기에 누마 폼필리우스 왕이 달력을 개혁하면서, 열한 번째 달과 열두 번째 달에도 이름을 붙였습니다. 문의 수호신인 야누스의 이름을 딴 야누아리우스(Januarius)가 11월, 한 해 마지막에 벌였던 축전 페브루아(Februa)의 이름을 딴 페브루아리우스(Febriarius)가 12월이었습니다.

이처럼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각 달의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달력을 재정비하면서 뒤죽박죽이 됩니다.

//이정모 교수//
“카이사르는 11월 1일에 새 달력을 공포했거든요. 두 달 기다렸다가 1월 1일에 하면 간단한데요. 하루라도 빨리 집정관에 취임하고 싶어서, 11월 1일을 1월 1일로 당겨버린 것이죠. 덕분에 11월이었던 재뉴어리가 1월이 됐습니다. 그래서 옥토퍼스, 즉 문어는 다리는 8개잖아요. 하지만 옥토버는 10월이고요. 또 10번째 달이란 뜻의 디셈버는 12월이 돼버려서 영어 단어가 우습게 돼버렸죠.”

‘달력과 권력’이란 책의 저자인 안양대학교 이정모 교수의 설명이었는데요. 이정모 교수는 카이사르가 달력 개혁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생일이 있는 7월의 이름 역시 율리우스(Julius)로 바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줄라이(July)라고 부르게 된 건데요. 달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통치자는 또 있었습니다.

//이정모 교수//
“율리우스를 이어서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투스도 달력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이 있는 8월을 어거스트(아우구스투스)로 이름을 바꿨죠. 그런데 문제는 짝수 달은 30일로 하루가 적었다는 것입니다. 날짜가 하루 적은 것도 불쾌했지만, 또 당시에 짝수는 홀수에 비해 불길하다고 여겨졌거든요. 그래서 페브러리에서 또 하루를 빼와서 8월을 31일로 만들고, 2월은 28일로 줄어들었죠.”

그 밖에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는 4월을 네로네우스로 바꾸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네로 황제 사후에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기원전 46년에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포한 율리우스 달력은 1천5백여 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널리 사용됩니다. 매우 과학적으로 보이는 이 달력에도 문제가 있었는데요. 북아이오아 대학교의 토마스 학키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학키 교수//
“1년이 약 365.25일이라고 앞에서 말한 것 기억하시죠? 그런데 사실 1년은 365.24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년에 11분 14초의 차이가 나는데요. 당시 사람들이 그 차이를 무시했다는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죠. 로마 사람들은 율리우스 달력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될 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작은 차이가 쌓이고 쌓여서, 많이 어긋나게 된 거죠.”

가장 큰 문제는 부활절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춘분이 지난 뒤에 보름달이 뜬 이후의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해 왔는데요. 16세기에 이르자 달력에 쓰여있는 춘분과 실제 춘분이 열흘 이상이나 차이가 나게 된 것입니다.

“1582년 10월5일부터 10월 14일 사이에 로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에는 태어난 사람도, 죽은 사람도 없었고, 결혼식도, 장례식도 거행되지 않았다. 교회 종소리도 울리지 않았고, 아이들의 웃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기간에는 돈을 번 사람도, 전쟁을 벌인 사람도 없었다.”

이 열흘 동안 로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모든 사람이 마법에 걸려 깊은 잠에 빠지기라도 했던 걸까요?

아닙니다. 단지 달력에서 열흘이 사라졌던 것뿐인데요. 그러니까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밤에 잠자리에 든 로마인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10월 15일 금요일 아침에 깨어났습니다. 단순하게 열흘을 건너 뛰고, 요일은 그대로 진행한 것인데요.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계절에 맞춰 과감히 달력에서 열흘을 없앤 것입니다.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윤년 규칙도 바꿨는데요. 4백 년 동안 1백 번 지내던 윤년을 97번만 지내도록 조정했습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을 비롯해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가톨릭 국가들은 즉시 새 달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개신교 국가였던 영국은 1752년에 이르러서야 그레고리우스 달력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1752년 9월 2일에 잠든 영국인들은 열흘 이상을 뛰어넘어 1752년 9월 14일에 깨어났던 것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1700년, 일본은 1873년, 러시아는 1918년에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인들은 고종 황제 시절에 내린 조칙에 따라,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하면서 그레고리우스 달력을 사용하게 된다.”

무려 열흘 이상을 건너 뛴 그레고리우스 달력, 그렇다면 그레고리우스 달력은 완벽한 달력일까요?

//학키 교수//
“그레고리우스 달력 역시 완벽하진 않습니다. 1년이 365.24일이란 것도 반올림한 거구요. 소수점 이하 시간이 쌓여서 수만 년이 지나면, 달력이랑 계절의 변화가 또 맞지 않게 되겠죠. 그러면 또 학자들이 모여서 수정을 해야 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전히 오차가 있다는 점 외에도 윤년 계산이 복잡하다는 점, 매년 날짜와 요일이 변한다는 점, 각 달의 길이가 다르다는 점, 또 새해 첫날이 천문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 역시 그레고리우스 달력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정모 교수//
“지구가 태양을 돌 때 사람들이 편하게, 알아서 맞아 떨어지도록 돌아가지 않거든요. 그래서 여전히 오차가 있을 수 밖에 없죠. 해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뭣보다도요. 1월 1일이 천문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이란 겁니다. 옛날 로마 달력처럼 처음 쓴 날이 춘분이어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을 1월1일로 쓰는 것도 아니고요.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을 1월 1일로 정했죠.”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은 그레고리우스 달력을 대신할 새로운 달력을 제안해 왔습니다. 1849년 프랑스의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는1년이 열세 달이고, 1달이 28일인 달력을 만들자고 주장했는데요. 그러면 매월 1일은 언제나 일요일, 각 달의 마지막 날인 28일인 토요일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달력은 서양 사람들이 싫어하는 13일의 금요일이 매달 온다는 점에서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또한 1930년에 미국의 엘리자베스 아켈리스는 1월, 4월, 7월, 10월 등 각 분기의 첫 번째 달은 길이가 31일이고, 그 외의 달은 30일로 하는 세계 달력을 제안했는데요. 이렇게 여러 가지 안이 나왔지만, 그 어떤 달력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하고 있고요. 현재로선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전 세계 표준 달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새해를 맞이하며 달력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봤는데요. 다음 시간부터는 화폐의 역사에 관해 전해 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도 기대해 주시고요. 저는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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