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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이야기 미국사 94] 제임스 폴크 대통령


미국 역사상 가장 거친 선거 운동중 하나로, 휘그당과 민주당이 중상모략과 인신공격을 펼쳤던 1840년. 정책이 아닌 이미지가 선거 전술이었다.

“곳곳에 통나무 집을 세우고 수 천명씩 모이는 대규모 야외 집회를 열고, 깃발과 악대, 해리슨 후보의 초상을 들고 시가행진을 벌이고, 선거 운동 노래도 만들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선거 운동 노래는 해리슨 후보가 인디언과 용감하게 싸웠던 점을 특히 강조하시구요, 또 ‘해리슨 후보는 보통 사람들, 소시민들의 어렵고 단순한 삶을 사랑한다’는 찬양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쓰셔야 합니다. ”

“그 점은 계획대로 잘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밴 뷰렌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왕처럼 산다는 비난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출신 하원의원은 백악관이 궁전으로 변했고, 밴 뷰렌이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며, 금과 은으로 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고 격렬히 비난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백악관의 카페트는 발이 묻힐만큼 두툼하고, 밴 뷰렌은 비단옷을 입으며 꽃 향기가 나는 향수를 뿌린다는 내용도 빼 놓지 않았더군요. 이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

휘그당에 질세라, 민주당 역시 근거 없는 내용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통나무 집과 궁전의 싸움, 사과주와 샴페인의 싸움으로 미국은 들끓었고, 이 같은 선거전은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휘그당의 해리슨 후보는 글을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돈을 빌려서 생긴 개인 부채는 갚지도 않고, 백인을 노예로 팔아 먹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

메인주를 시작으로 선거가 시작됐다. 총 투표 수에서는 양측이 비슷한 표를 얻었으나, 선거인단 수에서 해리슨 후보가 앞도적으로 앞섰다. 마침내 휘그당의 윌리엄 헨리 해리슨 후보가 미국의 제 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윌리엄 핸리 해리슨 대통령은 직무 수행 한달 만에 사망했다. 취임식 날, 거친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1시간 45분 동안 쉬지 않고 취임 연설을 했는데, 이 때문에 폐렴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버지니아 출신인 존 테일러 부통령이 대통령 직을 승계했다.

존 테일러 부통령은 해리슨 대통령을 대신해 4년간 대통령 직을 수행했고, 1845년 제임스 폴크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당시 폴크 대통령은 텍사스를 넘어 서부로의 영토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텍사스 문제는 1840년 대 미국 정치에서 큰 논쟁거리였다. 1845년 의회는 텍사스 주가 합중국의 주로 연방에 편입시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테일러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불과 사흘 전, 즉 제임스 폴크가 신임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인 3월 1일 법안에 서명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텍사스가 합중국의 주로 편입되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두 나라는 텍사스가 미 연방에 편입되지 않는 조건으로 멕시코로 부터의 텍사스의 독립을 인정하기로 했었다. 텍사스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었다. 합중국 연방의 주가 되든지, 아니면 멕시코로 부터의 독립을 인정 받은 채 공화국으로 남아 있든지, 선택해야 했다. 텍사스 의회는 연방의 주로 편입 되는 쪽을 선택했다.

제임스 폴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두 가지 공약을 내 걸었다. 그는 텍사스와 오레건 전역을 미 연방의 일부로 편입시키겠다고 선언했었다. 국민들은 합중국이 대서양 지역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영토를 넓혀가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동조했기 때문에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국민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대륙 전역에 전파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여겼다.

오레건을 찾은 최초의 미국인은 뉴 잉글랜드 지역의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동물 가죽을 매매하기 위해 오레건 해안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미국인 탐험가 루이스와 클락은 루이지애나 영토를 건너 오레건 지역에 도착했고, 그 뒤를 이어 1811년 존 제이콥 애슈터가 오레건 지역에 있는 콜롬비아 강 어귀에 모피를 거래하는 시설을 세웠다.

영국 탐험가들도 영국에게 같은 지역의 소유권을 갖게 했다. 영국의 허드슨 베이 회사도 콜롬비아에 거래소를 세우고 그 북부의 광대한 영토를 영국령이라고 주장했다. 두 나라는 오레건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오레건은 정착민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은 이 지역을 공동 소유하기로 했다. 이 합의는 1840년대 까지는 잘 유지됐다. 그 뒤를 이어 수 천명의 미국인들이 오레건을 향해 서부로 진출했다. 새 정착인들은 공동 점령 합의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오레건 전 지역이 미국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폴크 대통령은 미국이 오레건 전 지역을 차지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폴크 대통령은 타협안을 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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