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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역사


안녕하세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오는 25일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바로 성탄절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전 세계 많은 나라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예쁘게 꾸미고, 크리스마스 선물과 카드를 주고받곤 하는데요. 이런 크리스마스 풍습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 시간에는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에 있을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머물 곳이 없음이어라.”

신약성서 누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 장면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태어난 도시에 가서 호적등록을 하란 명령을 내렸고요. 요셉은 아내 마리아와 함께 출생지인 베들레헴에 갑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여관이 꽉 차서 방을 구할 수가 없었는데요. 할 수 없이 마구간에서 밤을 지내던 중에 마리아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란 것입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매년 12월 25일을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레스태드 교수//
“아무도 모르죠. 정확히 언제 태어났다고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습니다. 성경에 나와있지 않아요.”

펜네 레스태드 텍사스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예수가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성경에 전혀 언급이 없다고 설명했는데요. 사람들은 예수가 태어나던 날밤, 양을 치는 목자들이 들판에 나와있었다는 성경 구절을 지적하면서, 한겨울인 12월 25일이 아니라, 봄이나 여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마인들은 동지 1주일 전부터 1달 동안 사투르날리아 축전을 벌였다. 농경신 사투르누스에게 감사하기 위해 성대한 잔치를 열고,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겼다. 사투르날리아는 로마의 사회질서가 완전히 뒤바뀌는 쾌락의 시간이었다. 이 기간에는 노예도 자유롭게 주인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고, 주인이 거꾸로 노예에게 봉사하기도 했다.”

네, 성탄절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고대 로마인들의 겨울 축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또한 당시 로마 귀족들은 태양 신 미트라를 숭배했는데요. 태양 신 미트라의 생일이 바로12월 25일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원래 부활절에 의미를 뒀을 뿐, 예수의 생일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4세기에 이르러 성탄절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요. 서기 350년, 교황 율리어스 1세는 태양신의 생일인 12월 25일을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로 공표했습니다.

//레스태드 교수//
“가톨릭 교회가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이교도들, 즉 로마인들의 풍습을 허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죠. 이교도들의 축전을 막는 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이를 받아들여서 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는 거였습니다.”

이교도들이 동지를 지내던 풍습은 중세에 이르러 크리스마스, 성탄절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크리스마스 (Christmas)란 말은 ‘Christes maesse’, 즉 ‘그리스도의 축전’이란 말에서 유래했는데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인 의미보다 실컷 놀면서 먹고 마시는 축전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17세기 초에 이르러 크리스마스는 영국에서 큰 탄압을 받게 됩니다.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청교도 세력이 왕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것인데요.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 풍습이 지나치게 문란하고, 인간의 영혼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고요. 1652년에 크리스마스를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몰래 크리스마스 잔치를 벌였고요. 1656년 런던 남동쪽의 캔터베리 시에서는 크리스마스 폐지에 반발해 큰 폭동이 일어났는데요. 이에 놀란 캔터베리 의회는 크리스마스 부활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켄트 군, 또는 캔터베리 시민 수천 명은 선언한다. 1천5백 년 이상 교회에서 내려온 성탄절 축전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을 시장이 폭력적으로 제압하려 함에 따라 최근 폭동이 발생했다. 이에 캔터베리 시민들은 왕정복고를 결의하고, 종교가 예전의 광명을 되찾고, 이 왕국에 내려오던 법이 유지될 것을 촉구한다.”

크리스마스를 다시 돌려주지 않으면,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일종의 협박이었는데요. 캔터베리 시민들의 소망은 얼마 가지 않아 이뤄집니다. 영국이 왕정으로 돌아가면서 찰스 2세가 즉위했고요. 이와 함께 크리스마스도 부활했습니다.

영국에서 벌어진 크리스마스 싸움은 청교도들의 처절한 패배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요. 영국의 청교도들보다 더욱 신앙심이 투철했던 이들은 당연히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펜네 레스태드 텍사스 대학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레스태드 교수//
“청교도들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고 나서 성경에 예수 탄생일이 나와있지 않으니까 기념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많았어요. 당시 다른 개신교도들도 신대륙에 왔는데, 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싶어 했거든요.”

1659년 보스턴에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다가 발각되면 벌금으로 5실링을 내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막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1719년에 발행된 보스톤 연감을 보면, 12월말에 아이들이나 하인들이 밤에 너무 소란을 피우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이는 당시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겼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독립전쟁 후에 바뀌게 됩니다.

“영국에서 독립한 뒤 미국에서는 영국적인 것이라면 뭐든지 배척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였다. 178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미국 연방의회 회의가 열렸고, 그 후로도 67년 동안 계속해서 크리스마스 날에 의회가 열렸다.”

그렇습니다. 독립전쟁이 끝난 뒤 미국인들은 영국 왕이 정해놓은 명절을 모두 폐지했습니다. 하지만 명절을 즐기고 싶은 열망이 미국인들 마음에 가득했고요.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지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끝난 지 5년 뒤인 1870년,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은 국민화합을 위해 크리스마스를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레스태드 교수//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됐는데요. 그저 은행이 문을 닫고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하루 쉰다는 의미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점점 가족 중심이 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특히 여성들이 좀 더 가정에 신경을 쓰게 됐죠. 집안에 나무를 들여와 장식을 하고 선물을 매다는 등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풍습이 퍼지게 됐습니다.”

전나무와 같은 상록수를 집안에 들여 장식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인들의 풍습에서 비롯됐습니다.

//레스태드 교수//
“그 옛날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숲 속을 거닐다 나무를 발견해서 집안에 들여왔다는 얘기가 있죠. 촛불을 걸어놓고, 신의 위대한 창조물을 찬양했다는 얘기 말입니다.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독일 사람들이 집안에 나무를 들여와 장식하기 시작했고요. 독일의 알버트 공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했을 때, 1841년인가 1842년에 여왕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선물했어요. 그러면서 상류층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고요. 일반 사람들에게도 퍼진 거죠.”

산업화와 더불어 점점 더 많은 물건이 생산되고, 백화점에 물건이 넘쳐나면서, 선물을 주고 받는 문화 또한 확산되기 시작했고요. 가족 규모가 작아지면서 자녀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습니다. 역사학자 펜네 레스태드 교수입니다.

//레스타드 교수//
“아이들이 집안에서 점점 더 소중한 존재가 되기 시작했어요.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1790년대에는 자식이 15명이라면, 그저 농사를 도울 인력이 15명이다, 뭐 그 정도로 생각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19세기 들어 가족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특히 부유층 가정이 점점 핵가족화되면서,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고요. 좀 더 좋은 물건을 사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죠.”

크리스마스 날 어린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산타 클로스, 산타 할아버지는 3세기경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에서 유래했습니다. 미라의 대주교였던 성 니콜라스는 12월에 한 해 동안 착한 일을 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곤 했는데요. 네델란드와 독일 등 유럽인들은 이를 본떠서 12월 6일을 성 니콜라스 축일로 기념하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줬습니다. 이 같은 풍습이 19세기 미국에서 산타 클로스란 상상의 인물과 함께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레스태드 교수//
“19세기 초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란 사람이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란 시를 썼는데요. 시 내용이 아주 재미있고 재치가 있거든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산타 클로스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선물을 놓고 간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이 시가 신문에 실려 널리 알려지면서, 산타 클로스를 흉내 내는 가정이 늘어났습니다.”

1950년대에 이르자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완전히 가족적인 명절로 자리를 잡게 됐는데요. 종교를 막론하고 미국인들의 98 퍼센트가 어떤 형태로든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합니다.

물론 선물이나 물질적인 면에 치중하면서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변색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요. 크리스마스는 그 동안 어떤 탄압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널리 확산돼 왔고요. 앞으로도 영원히 인류와 함께 하면서, 끊임 없이 재창조될 것으로 보입니다.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은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봤고요. 다음 시간에는 달력의 역사에 관해 전해 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도 기대해 주시고요. 저는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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