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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소설 ‘드라큘라’의 모델로 알려진 발라히아 공국의 블라드 3세


안녕하세요? 화제가 되는 뉴스를 중심으로 역사를 더듬어가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흡혈귀와 인간 소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 ‘뉴문’이 인기를 끌면서 전세계에 흡혈귀 바람이 불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지난 시간에는 동유럽의 흡혈귀 전설을 살펴 봤고요. 이어서 오늘은 소설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는 15세기 루마니아 통치자 블라드 3세에 관해 전해 드리겠습니다.

“내 집에 잘 오셨습니다. 자유롭게, 당신의 의지로 들어오십시오. 그는 날 맞으러 나오려는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은 채 동상처럼 서있었다. 마치 환영의 몸짓이 그를 돌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가 문턱을 넘어서자 거의 충동적으로 앞으로 다가왔고,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난 질겁했는데, 힘도 힘이지만 그의 손이 너무나 차가웠기 때문이다. 그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워서, 살아있는 사람의 손이라기보다는 죽은 사람의 손 같았다.”

네, 소설 ‘드라큘라’에서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드라큘라’는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가 1897년에 발표한 괴기소설인데요. 소설 속의 드라큘라 백작은 현재 루마니아 일부인 트랜실바니아의 귀족으로 카르파시안 산지의 낡은 성에 살고 있습니다.

드라큘라 백작 하면 검은 연미복에 옷깃이 선 검은 망토를 걸친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드라큘라 백작은 그 동안 수 많은 영화를 통해 전형적인 유럽 귀족의 모습으로 묘사돼 왔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사람의 피를 빨아 마시며, 수백 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는 드라큘라 백작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흡혈귀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실제로 드라큘라란 인물이 역사 속에 존재했습니다. 15세기 루마니아 군주였던 블라드 3세의 별명이 바로 드라큘라였던 것입니다.

“블라드 3세의 아버지 블라드 2세는 당시 헝가리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지기스문트로부터 ‘용의 기사단’ 기사로 임명됐다. ‘용의 기사단’은 기독교를 수호하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구성된 것이었다. 블라드 2세는 이를 큰 영예로 생각해 스스로 블라드 드라큘이라고 불렀다.”

네, 드라큘라란 별명은 블라드 3세의 아버지 블라드 2세에게서 비롯됐습니다. ‘용의 기사단’ 단원이 된 블라드 2세는 용을 의미하는 드라큘을 별명으로 사용했는데요. 드라큘라는 바로 ‘드라큘의 아들’, ‘용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플로레스쿠 교수//
“ 블라드 3세는 1431년에 태어나 1476년에 사망했습니다. 발라히아 공국의 네 번째 군주였죠. 당시 루마니아는 발라히아와 몰다비아, 그리고 헝가리의 지배를 받던 트랜실바니아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블라드 3세는 보야르라고 불리는 특권귀족들에 의해 군주로 선출됐는데요. 그 때는 왕위 세습방식이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귀족들이 선출을 했죠.”

미국 보스톤 대학 역사학과의 라두 플로레스쿠 교수는 소설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이 트랜실바니아에서 태어나 발라히아의 군주가 된 블라드 3세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1972년 플로레스쿠 교수는 동료인 레이몬드 맥날리 교수와 함께 ‘드라큘라를 찾아서’란 책을 발표했는데요. 소설 속 드라큘라와 블라드 3세의 연관성을 파헤친 이 책은 학계와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난 2003년에 ‘실제 드라큘라를 찾아서’란 책을 펴낸 영국 작가 마이 트로우 씨 역시 소설 ‘드라큘라’는 블라드3세에서 영감을 받아 쓴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이 트로우 씨//
“브램 스토커는 헝가리 민속학자 미니어스 뱀버리를 통해 드라큘라 이름을 알게 됐어요. 뱀버리는 헝가리 출신이니까 트랜실바니아나 블라드 3세에 관해 잘 알고 있었고, 스토커에게 많은 정보를 준 걸로 생각됩니다. 스토커가 그 내용을 다 소설에 쓰진 않았지만요. 하지만 실존 인물인 드라큘라 블라드 3세를 보면 소설 주인공 드라큘라 백작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뉴화운드랜드 메모리얼 대학교 영문학과의 엘리자베스 밀러 교수의 생각은 다릅니다. 소설 속 드라큘라와 블라드 3세는 이름이 같을 뿐, 그 외에는 비슷한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밀러 교수는 브램 스토커가 블라드 3세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데요.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드라큘라란 이름을 가진 인물이 15세기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블라드 드라큘라, 블라드 3세는 모두 세 차례 발라히아 공국을 지배했습니다.

//트로우 씨//
“처음에는 17살 때였는데 6개월 밖에 통치를 못했어요.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금방 다른 사람에게 쫓겨났습니다. 군주가 될 준비가 아직 안 됐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4~5년 뒤에 다시 권력을 잡아서 12년 내지 13년 동안 지배를 합니다. 그런데 통치 방식이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비슷했어요. 적이 될 만한 사람들은 모두 제거하는 겁니다. 강경한 정부를 세우고,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워 여러 차례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전쟁에서 패한 뒤 헝가리에서 포로 생활을 했는데요. 1476년에 헝가리의 도움으로 다시 발라히아를 통치하게 되지만 몇 주도 못 가서 전쟁터에서 사망합니다.”

블라드 3세는 모두 합쳐서 십 몇 년 동안 발라히아를 통치했지만 유럽 전역에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 이유는 블라드 3세의 또 다른 별명인 블라드 체페슈에서 알 수 있는데요. 루마니아어로 ‘체페슈’는 ‘말뚝을 꽂는 사람’, ‘말뚝으로 찌르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5킬로미터 가량 진군했을 때 말뚝에 찔려 죽어가는 사람들의 숲을 지나게 됐다. 그 숲은 무려 3 평방 킬로미터에 달했고, 남자와 여자, 아이를 가릴 것 없이 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말뚝에 꽂혀 있었다. 황제는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경악했다. 그리고 이처럼 잔인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과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느냐며 군대를 돌려 돌아갔다.”

네, 블라드 3세는 이처럼 잔인한 처형방식으로 유명했습니다. 말뚝으로 사람을 찌르면 사람이 금방 죽지 않고, 오래 고통을 받으며 천천히 죽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블라드 3세는 피를 즐기는 잔인한 군주로 알려지게 됐고요. 나무 말뚝으로 심장을 찌르는 흡혈귀 처형의식 역시 블라드 3세에게서 비롯됐다는 설까지 나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말뚝으로 찌르는 처형 방식은 이전에도 행해졌습니다.

//트로우 씨//
“블라드 3세가 처음은 아니었죠. 당시 유럽은 매우 위험하고 잔인한 사회였습니다. 온갖 종류의 고문 행위가 자행됐죠. 하지만 블라드 3세 이전에는 말뚝으로 찔러서 죽이는 처형 방식이 그렇게 자주 사용되지 않았어요. 폭군 이반이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이반 4세도 이 방법을 사용했지만 나중의 일이죠.”

이 같은 블라드 3세의 잔인성에 관한 얘기는 당시 독일에서 발행된 소책자들을 통해 유럽사회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드라큘라 공으로 알려진 피를 마시는 사악한 폭군에 관한 끔찍하고 기상천외한 얘기’…… 이런 긴 제목의 소책자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요. 블라드 3세가 희생자의 피에 빵을 적셔 먹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흡혈귀와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밀러 교수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밀러 교수//
“그건 완전히 오해입니다. 블라드 3세가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을 표현한 목판화가 있는데요. 배경에 말뚝에 찔린 희생자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희생자의 피에다 빵을 찍어 먹었다는 표현은 이 목판화에 없어요. 15세기에 나온 시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요. 제가 그 시를 영어로 번역한 걸 갖고 있는데, 그런 얘기는 없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해요.”

‘실제 드라큘라를 찾아서’란 책의 저자인 영국 작가 마이 트로우 씨는 블라드 3세에 대한 평가는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트로우 씨//
“블라드 3세에 관해서는 세 가지 관점에서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먼저 발라히아에서는 블라드 3세를 영웅으로 생각했습니다. 루마니아에 가보면 거대한 오스만 제국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국가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죠. 그리고 러시아 쪽에서는 힘과 공포로 다스린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인들의 관점이 있는데요. 트랜실바니아와 발라히아의 독일 상인들은 블라드 3세를 싫어했습니다.”

밀러 교수는 블라드 3세의 가장 큰 적은 오스만 제국이라기보다 트랜실바니아의 독일 정착민들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밀러 교수//
“이들이 발라히아를 지나갈 때마다 일종의 관세를 내라고 강요했거든요. 복종을 안 하면 말뚝으로 찔러 죽였어요. 이들 중 일부가 독일로 돌아가 얘기를 전하면서 책으로 출판돼 나왔는데요. 이 때가 인쇄술이 발달하던 초기였거든요. 이런 책들이 굉장히 인기를 끌었어요. 블라드 3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 독일 책자들 때문입니다.”

보스턴 대학의 라두 플로레스쿠 교수는 블라드 3세와 같은 루마니아 출신인데요. 블라드 3세가 잔인한 군주였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발라히아에 중앙집권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한 공이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플로레스쿠 교수//
“루마니아에서 블라드 3세는 거대한 오스만 제국에 맞서 국가를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당시 동유럽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을 위협하던 회교세력에 저항한 사람이죠. 루마니아 사람들은 블라드 3세가 잔인하긴 했지만 공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처벌했으니까요. 사실 블라드 3세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다른 군주들과 비교해서 그렇게까지 잔인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그 시대 기준에 맞춰서 평가를 해야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흡혈귀 영화 ‘뉴문’의 제작사는 블라드 3세에 관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는데요. 앞으로도 흡혈귀 열풍, 그리고 블라드 3세에 대한 관심은 더욱 거세질 전망입니다.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은 소설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는 발라히아 공국의 블라드 3세에 관해 전해 드렸고요. 다음 시간에는 미국의 크리스마스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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