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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베트남 개혁개방 23년] 6. 미국과의 관계개선


베트남이 경제성장을 위해 '도이모이'로 불리는 개혁 개방에 나선 지 이 달로 23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빠른 속도의 성장을 이루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아 온 베트남은 이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현지 취재를 통해 베트남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성장의 원동력을 살펴보는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여섯 번째 순서로 베트남 경제발전의 핵심 동력이 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이연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호치민 시 중심가에 있는 뉴월드 호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0년 방문 당시 묵어서 유명해진 호텔입니다.

이 호텔 3층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상공회의소에서 지난 11월 말 만난 허브 코크란 대표는 베트남 경제는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극적인 발전의 동력이 마련됐다고 말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에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이듬해에는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데 이어 2000년에 무역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베트남 경제가 도약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은 1986년 12월 '도이모이'를 선포한 이후 개혁개방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경제 발전의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1991년에 베트남 1호 공단을 개발한 '탄뚜안 공단관리회사'의 짠 탄 홍 부사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련이 붕괴된데다, 미국의 경제 제재와 금수 조치가 계속돼 어려움이 매우 심했다는 것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결국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총부리를 마주 겨눴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기로 결정합니다. 우선 전쟁 실종자와 포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요구에 적극 협조해 신뢰를 쌓았습니다. 이에 미국은 1994년 경제 제재를 해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베트남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습니다.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4년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의 인형제조업체인 '세모비나'의 신광재 사장입니다.

"당시 공산권 국가하고 사업하자면 사실상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마음의 불안을 느꼈는데, 미국과 수교하면서 그런 불안이 해소됐죠. 또 미국과 수교가 되면서 다른 나라들도 많이 들어오고…"

미국 기업도 베트남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55 km 떨어진 하이둥에 있는 포드자동차 조립공장은 두 나라가 외교관계를 맺은1995년에 설립됐습니다. 미국 대기업 가운데 베트남 투자는 처음이었고, 따라서 오랫동안 베트남에 투자한 미국 기업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포드 베트남법인의 마이클 피스 대표는 15년 전 투자 당시 베트남의 잠재적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합니다.

8천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베트남에서 중산층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따라서 먼저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피스 대표는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미국 기업들의 진출이나 투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호치민 주재 미국상공회의소의 코크란 대표는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한 1994년 3월부터 2001년 12월까지도 양국 간 교역이나 미국인들의 베트남 투자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까지도 두 나라 사이에 무역협정이 발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무역협정이 맺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높은 관세가 붙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베트남의 값싼 임금을 이용해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시장으로 수출하기 위해 베트남에 진출했던 다른 나라 기업들도 투자 확대를 보류했고, 베트남의 경제성장에는 제동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1997년 시작된 동남아 금융 위기로 외국 기업들이 대규모로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미국 시장 진출을 경제 위기 극복의 유일한 돌파구로 인식한 베트남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에 적극 나섰다고, 베트남 도이모이 정책의 설계자인 레 당 쯔웽 전 기획투자부 차관은 말합니다.

쯔웽 전 차관은 미국과의 무역협정으로 베트남 상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40%에서 3% 이하로 크게 줄면서 대미 수출이 크게 증가했으며, 이는 미국이 베트남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2000년 7월에 체결돼 이듬해 12월 발효된 미-베트남 간 무역협정으로 베트남은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미국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 역시 공산품과 농산물, 그리고 은행과 같은 서비스 부문 진출이 쉬워졌습니다.

호치민 주재 미국상공회의소의 코크란 대표는 두 나라 간 무역협정이 베트남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합니다.

미국시장 수출을 목표로 하는 한국과 타이완 등 아시아 국가의 기업들이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베트남인들의 일자리도 획기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코크란 대표는 현재 약 5백 개 미국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면서, 베트남에 대한 미국 기업과 투자자들의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호치민 시 거리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에게서 한때 총부리를 겨누며 싸웠던 미국인들에 대한 적대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올해 25살인 린 응옥 바 씨는 큰 전쟁이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은 미국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린 씨는 미국인들이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쯔웽 전 차관은 베트남이 치열한 전쟁을 치른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베트남인들이 전쟁을 잊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베트남은 국가 건설과 경제 재건을 위해 과거의 일은 뒤로 하고 미래를 본다고 쯔웽 전 차관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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