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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일반경제 속 장마당의 역할


북한의 이번 화폐개혁 조치는 일반주민들 사이에 성행하고 있는 장마당을 규제하는 것이 주요 이유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은 국영상점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에서 일반주민들의 생계수단이 돼 왔는데요, 이진희 기자와 북한에 장마당이 생긴 배경과 주민생활에 미친 영향 등을 알아봅니다.

문) 화폐개혁 조치로 북한 내 장마당이 마비되고 상거래가 중단되는 등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하던데요?

답) 그렇습니다. 17년 만에 단행된 북한의 이번 화폐개혁은 현행 화폐를 1백 대 1의 비율로 새 화폐로 맞바꾸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요, 다시 말해 1천 원짜리 현행 화폐를 10원짜리 새 화폐와 맞바꾸는 것입니다. 돈의 가치가 1백분의 1로 떨어진다는 것인데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정부 당국으로부터 아직 새로운 가격이 하달되지 않아 물건을 팔 수 없는 상태라며, 평양 시내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의 언론매체들도 장마당을 통한 상행위가 중단되면서 상인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문) 이번 조치는 무엇보다 민간 상거래, 특히 장마당의 확산으로 느슨해진 주민통제의 고삐를 다시 틀어쥐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있지요?

답) 그렇습니다. 지난 2002년 7.1 경제개선 조치 이후

장마당 등 개인 상거래를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북한 상인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들은 당국의 단속을 피해 장마당에서 외국 상품, (한국산도 많이 있다고 하는데요), 외국 상품을 상당량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조치는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을 통해 상업거래로 돈을 모은 이들 상인들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문) 그렇다면, 북한의 장마당은 언제부터, 왜 생겨나서 확산됐는지요?

답) 정확한 시점을 알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와 워싱턴 소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란드 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가 있는데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경제는 지난 1980년대 말부터 구 소련과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붕괴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말 중반 기아 사태를 겪는 동안 정부의 배급체제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시장이 출현했습니다. 가정과 직장, 지방 당 조직, 정부기관 등 북한 내 소규모 사회경제 단위들이 식량 확보를 위해 불법인 시장경제 활동에 착수하면서 장마당 등을 통한 거래가 이뤄지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장마당은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우후죽순처럼 전국에 확산돼, 평양은 물론이고 시, 군, 지방 곳곳에도 들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 북한 당국도 처음에는 장마당 활동을 어느 정도 묵인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답) 그렇습니다. 북한 당국은 장마당을 탐탁잖게 여기면서도 식량난 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난 2003년에 장마당을 양성화 했습니다. 그 결과 평양에는 구역별로 시장이 생기고 지방에도 시, 군 별로 1-2개씩 종합시장이 생겼습니다. 시골에는 농민시장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장마당은 북한 당국의 배급체제가 제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북한주민들의 실질적인 생계수단이 돼 온 것입니다.

문) 그러면 장마당이 북한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답) 무엇보다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의식이 주민들 사이에 확산됐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것이죠. 또 개인 상거래를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돈을 버는 사람과 못 버는 사람 간 빈부격차도 생겼습니다. 군대나 광산 일 등으로 집을 비우는 남성들을 대신해서 여성들이 앞다퉈 장사에 나서는 바람에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남성의 지위가 약화됐다고 합니다.

문) 그런데 북한 당국이 사실상 묵인해 온 장마당 활동을 다시 통제하려는 이유가 겁니까?

답) 장마당 활동이 지나치게 확산되면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주민들의 장마당 의존도가 커지면서 주민들에 대한 당의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고 합니다. 또 장마당에서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한국산과 중국산 등 외국 물건이 넘쳐나고 이와 함께 외부 정보가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지방 당국 차원에서 이따금씩 단속을 벌였지만 나중에는 중앙 당 간부가 직접 단속에 나서는 등 단속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장마당 단속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 장마당 단속에 나선 당 간부가 주민들과 말다툼을 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본 기억이 나는데요…

답) 네, 지난 해 10월 한국의 북한 전문잡지인 ‘림진강’ 소속 북한 기자들이 해주와 사리원에서 촬영한 동영상인데요. 북한에서는 여자들의 상거래를 금지하기 위해 바지를 못 입게 한다고 합니다. 이 동영상에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자전거에 탔다 단속에 걸인 20대 여성이 나오는데요. 이 여성은 규찰대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합니다. 정부가 형평성 없는 단속을 한다며 여인이 거세게 규찰대원들을 몰아 붙이자, 인근에 있던 교통경찰이 싸움을 말립니다. 그렇지만 이 여성은 죽일테면 죽여보라며 대들고, 오히려 단속하던 사람들이 뒤로 밀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또 북한에는 단속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여는 일명 ‘메뚜기 시장’이 있는데요, 동영상에서 물건을 팔던 여성들은 단속원이 나타나자 입을 ‘뽀로퉁’한 채 중얼대며 곧 자리를 뜹니다. 하지만 단속원이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보따리를 풀고 장사를 시작합니다.

문)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들 아닙니까?

답)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장마당을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 이후 북한에 만연된 금전만능주의, 그리고 북-중 국경을 통한 외부정부 유입과 함께 북한 주민들의 의식과 생활을 바꾼 주요 요인으로 지목합니다. 이처럼 북한주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생계유지에 필수요건인 장마당이 이번 화폐개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북한주민들 생활에 어떤 변화가 올지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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