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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산책] 필리핀 교도소, 수감자들 교화 과정 일환으로 춤 교습


(진행자)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문화계 소식을 전해 드리는 ‘문화가 산책’ 시간입니다. 부지영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소식을 갖고 나오셨나요?

(기자) 장양희 기자는 혹시 교도소에 가보신 일 있으세요?

(진행자) 교도소요? 없는데요. 부지영 기자는 가봤나요?

(기자) 갑자기 교도소 얘기를 꺼내서 깜짝 놀라셨죠? 저도 사실은 못 가봤습니다. 예전에 워싱턴 인근에 큰 교도소가 있었잖아요? 그 앞을 운전해서 지나간 적은 있는데,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진행자) 로튼에 있던 교도소 말이군요.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갔죠? 그런데 왜 난데 없이 교도소 얘기인가요?

(기자) 네, 궁금하시죠? 오늘 색다른 교도소를 제가 소개해 드리려고 하거든요.

(진행자) 색다른 교도소라니, 어떤 곳이죠?

(기자) 필리핀 세부 지방에 있는 교도소인데요. 교도소 하면 아무래도 좀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하지만 매일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즐겁게 지내는 교도소도 있습니다. 바로 좀 전에 말씀 드렸듯이 필리핀 세부 지방에 있는 교도소인데요. 세부 교도소 수감자들은 교화 과정의 일환으로 매일 몇 시간씩 춤 교습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단체로 춤추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큰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오늘 그 소식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행자) 춤추는 교도소 수감자들이라, 상상만 해도 재미있네요. 함께 들어볼까요?

//텍스트//
필리핀 세부 섬의 한 교도소……. 전기 철조망이 둘러쳐진 담장 너머로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옵니다. 이어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1천여 명의 재소자들이 일제히 몸을 흔들기 시작하는데요. 열심히 춤을 추느라 얼굴에 땀이 흐르는데도 마냥 즐거운 표정입니다.

세부지방교정갱생센터, 약자로 보통 CPDRC로 불리는 세부 교도소에서는 하루 두 차례 이런 풍경이 벌어집니다. 재소자들의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을 위해 시작된 교화 프로그램의 일환인데요. 몇 년 전 세부 주지사의 동생인 바이론 가르시아 씨가 보안 담당 고문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가르시아 씨는 보안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지만, 교도소 일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당시 세부 교도소는 재소자들의 패싸움 문제로 큰 골치를 앓고 있었는데요. 가르시아 씨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재소자들의 갱생을 도울 수 있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가르시아 씨//
“어느 날 재소자들의 하루 일과를 관찰하고 있었는데요. 교도소 경비원 한 명이 다가오더니, 재소자들 사이에 폭력 충돌이 있을 것 같다며, 대 비하라고 하더군요. 그 때 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요. 폭력 충돌에 대비할 게 아니라 재소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음악이나 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때 나온 음악이 영국 록 밴드 퀸의 노래였는데요.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재소자들이 한둘씩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하더니 춤을 추는 거였어요. 그걸 보고 아, 이거다 싶었죠.”

당시 세부 교도소는 교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행진 훈련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북과 나팔을 불며 일사불란에게 움직이는 훈련 시간이었는데요. 가르시아 씨는 북과 나팔 대신에 미국의 팝송 등 대중음악을 이용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가르시아 씨//
“재소자들이 좋아했어요. 아무래도 더 재미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 같이 단순한 춤 동작을 배워서 군무를 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침, 저녁으로 춤 시간을 정해놓고, 춤 가르칠 사람을 구해서, 모든 재소자들이 의무적으로 참가하게 했습니다.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두 시간, 아픈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가해서 춤을 추게 한 겁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춤을 통한 교화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둡고 음울하던 재소자들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재소자들 사이에서 폭력 충돌이 사라졌고, 문제를 일으키던 재소자들이 모범수로 변해갔습니다. 이 같이 달라지는 재소자들의 모습에 고무된 가르시아 씨는 인터넷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재소자들이 춤추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가르시아 씨//
“제가 발견한 이런 새로운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여기 전혀 새로운 방식의 교화 프로그램이 있다고 말이죠. 즐거운 춤을 통해 재소자들이 체력도 단련하고, 딴 생각도 하지 않게 되고, 재소자들끼리 사이도 좋아지니, 혼자만 알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른 교도소, 다른 지방 사람에게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 때 마침 아들이 유튜브란 사이트가 있다면서,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려보라고 설득했어요.”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개씩 동영상이 올라오는 가운데, 재소자들의 춤은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부 교도소의 동영상 하나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는데요. 유명 가수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Thriller)’ 춤을 그대로 흉내 낸 동영상이었습니다.

//가르시아 씨//
“스릴러 뮤직 비디오를 보면 재소자들이랑 많이 비슷해요. 시체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좀비를 비롯해 악의 무리들이 나오는데,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춤을 추죠. 재소자들도 결국 사회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들어온 사람들인데요. 다들 함께 춤을 추면서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는 게 좀비들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스릴러’ 춤을 추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재소자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주며 말했죠. 이 춤을 추면서 모두들 안에 들어있는 악의 기운, 악한 마음을 다 내보내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요.”

가르시아 씨의 말을 이해한 듯, 재소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췄고요. 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인터넷에 오른 지 며칠 만에 조회수 1백만을 넘어섰습니다. 이 일은 재소자들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됐는데요. 사회에서 외면 받는 범죄자 신분에서 하루 아침에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되자, 재소자들은 더욱 더 열심히 춤을 연습했습니다.

재소자들은 보통 아침 시간에는 체력 단련을 위해 그 동안 배운 춤 몇 가지를 차례로 반복하고, 오후에는 새로운 춤을 배우는데요. 한국 여성 그룹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비롯해, 남성 그룹 수퍼 주니어의 ‘쏘리쏘리’, 빅뱅의 ‘거짓말’ 등 한국 가수들의 노래와 춤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르시아 씨는 재소자들이 춤출 곡을 직접 고르다고 합니다.

//가르시아 씨//
“한국 노래는 제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됐어요. 특히 올해 20살인 제 아들이 한국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원더걸스 뿐만이 아니라, 한국 가수들 노래가 필리핀에서 인기입니다. 아이들이 소개하는 한국 노래들 중에서 제가 마음에 드는 노래를 고르죠.”

세부 교도소의 ‘춤추는 재소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큰 관심을 끌면서, 재소자들의 춤을 직접 보고 싶다는 문의도 늘었는데요. 이에 따라 교도소 측은 한 달에 한 번 재소자들의 공연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가르시아 씨//
“한 달에 한번 마지막 토요일에 일반 공개를 하는데요. 2008년 4월부터 시작했는데, 이제는 세부 지방의 관광 명물이 됐습니다.”

재소자들의 가족이나 친구는 공연에 초대받지만 일반 관람객들은 돈을 주고 입장권을 사야 하는데요. 이렇게 거둔 공연비는 재소자들의 통장에 쌓여 출소할 때 지급되고 있습니다. 음악과 춤을 통한 세부 교도소의 교화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면서, 필리핀 내 다른 교도소들 가운데 이를 따라 하는 곳이 늘고 있는데요. 가르시아 씨가 믿고 있는 ‘음악의 힘, 긍정의 힘’이 전 세계 교도소로 퍼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진행자) 부지영 기자, 오늘 얘기 잘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더 흥미로운 소식 기대해 보고요. 오늘 ‘문화가 산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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