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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인류의 역사를 바꾼 전염병 – 인플루엔자 편


안녕하세요? 화제가 되는 뉴스를 중심으로 역사를 더듬어가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최근 신종독감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전염병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신종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이미 4천 7백 명을 넘어섰는데요. 미국에서는 5백60 명 이상, 한국에서는 20명 이상이 신종독감으로 숨졌습니다.

북한은 아직까지 신종독감 감염자가 없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지난 달 영국 언론은 유엔 보고서를 인용해 신종독감에 자력으로 대처하기 힘든 나라 가운데 하나로 북한을 꼽은 바 있습니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사태와 같이 신종독감이 크게 유행할 경우, 북한은 상당히 취약한 상황에 있다는 건데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전염병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독감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도움 말씀에 이수연 미국 훼어팩스 군 보건교육관, ‘대 독감 (The Great Influenza)’의 저자인 역사학자 존 배리 씨, ‘독감 (Flu)’이란 책을 쓴 지나 콜라타 뉴욕 타임즈 기자입니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하늘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19살 세르비아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 중이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황태자 부부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총성이 울린 지 불과 15분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 암살 사건인데요. 이에 분개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유럽 각국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요. 나중에는 미국까지 가담하게 됩니다. 1914년 7월부터 1918년 11월까지 약 4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수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탱크와 잠수함, 기관총, 독가스 등 많은 새로운 과학무기들이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대 전쟁이 끝날 무렵, 인류는 그 어떤 대량살상무기보다도 더 치명적인, 새로운 적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한 미군 젊은이가 프랑스 전선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총 한방 쏴보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적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감기 증세였다. 그러다가 증세가 심해지면서 점점 온 몸이 푸른 색으로 변해가더니, 몸에서 썩은 내가 나기 시작했다. 입과 귀, 코, 심지어 눈에서까지 피가 흐르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더니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1918년 가을부터 1919년 봄까지 6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이와 같은 증상으로 죽어갔습니다.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병은 바로 스페인 독감이었습니다.

//콜라타 기자//
“스페인 독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스페인에서 처음 보도를 했기 때문이고요. 스페인에서 처음 이 병이 발생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독감’이란 책의 저자인 지나 콜라타 뉴욕타임즈 기자는 당시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실이 비밀에 부쳐졌다고 설명하는데요. 참전국들이 언론검열을 통해 자국에 불리한 내용이 보도되는 것을 막는 가운데, 중립국인 스페인이 전염병 유행 사실을 처음 보도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입장에서 보면 좀 억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스페인 독감을 다룬 책 ‘대 독감’의 저자 존 배리 씨는 스페인 독감의 발생지가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합니다.

//배리 씨//
“미국 캔자스 주에서 시작했다는 증거가 꽤 설득력이 있고요. 유럽에서 처음 발생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제가 보기엔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또 중국에서 시작돼서 10년 이상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는 주장도 있고,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발생지가 어디였건, 스페인 독감은 무서운 기세로 퍼졌습니다.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는데요.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 연감 기록에 따르면, 무오년 독감으로 알려진 이 독감으로7백40만 명이 감염됐고, 14만 명이 숨졌습니다.

//배리 씨//
“노벨상 수상자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최소 5천만 명, 최고 1억 명에 달했습니다. 요즘 인구 비율로 보면 1억7천5백만 명에서 3억5천만 명이란 얘기니까 굉장한 거죠.”

그렇습니다. 인구 비례로 보면 14세기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이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망자 수를 놓고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병은 바로 스페인 독감입니다.

“1918년 전염병이 아무런 사전경고도 없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병원과 시체 보관소는 시신으로 가득 찼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1주일에 4천5백 명 이상이 죽어갔고, 집단매장지에 매장될 시신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이 같은 전염병의 대 공습에 사람들은 당황했는데요.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시는 모든 시민들에게 마스크, 즉 얼굴가리개 착용을 의무화 했고요. 어린 아이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냄새가 강한 마늘을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처방은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요.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면서 불렀다는 이 노래, 즉 창문을 여니 독감이 들어왔다는 내용의 노래 가사처럼 전염병은 기척도 없이 각 가정에 침투했습니다.

사실 독감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항상 존재했던 질병입니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독감의 증상을 묘사한 기록을 남겼고, 과거 자료를 보면 독감으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여러 차례 유행한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은 이전의 독감과는 달랐습니다. 대부분 어린이나 노인들이 독감에 취약한데 반해,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20살에서 30살, 즉 전쟁터에 나가 싸울 나이의 젊은 청년들을 공격했던 겁니다. 한창 건강할 나이의 청년들이 왜 맥 없이 쓰러졌는지, 이수연 훼어팩스 군 보건교육관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이수연 씨//
“계절성 독감은 우리 자체 어느 정도 면역체가 있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은 질병과 싸워서 이길 수가 있는데요. 이렇게 새로운 바이러스로 한번 더 변종이 된 신종 독감의 케이스는 건강한 사람들이 더 어떻게든 세균하고 싸우려고요. 면역체가 훨씬 더 왕성하게 움직여요. 그러다 보면 몸에 갖고 있는 면역체 자체가 완전히,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죽이는, 그런 식으로 면역체가 막 돌기 시작하거든요.”

군인들의 집단 생활, 부대의 이동도 전염병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는 곳으로 병사들이 파견됐기 때문인데요. 1차 대전 기간 동안에 사망한 미군 10만 명 가운데 4만 3천명, 거의 절반 가량이 스페인 독감으로 숨졌습니다. 하지만 대도시나 군 막사처럼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만 환자가 발생한 건 아니었습니다. 지나 콜라타 뉴욕 타임즈 신문 기자입니다.

//콜라타 기자//
“예를 들어 알래스카 한 마을의 경우, 어른들이 거의 모두 다 독감으로 죽은 겁니다. 그토록 멀리 떨어진 외딴 마을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인데요. 독감에 걸린 우편배달부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개 썰매를 타고 편지를 배달하러 갔다가, 그 마을 주민 모두를 감염시킨 겁니다.”

그런가 하면 배리 씨는 대도시보다 외딴 마을 주민들이 더 바이러스에 취약했다고 설명합니다.

//배리 씨//
“어떤 종류든 독감 바이러스에 한 번 노출이 되면 다른 독감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보호 능력이 생깁니다. 알래스카 마을이나 아프리카 밀림지역과 같이 외딴 지역의 경우, 독감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결과 매년 다양한 독감 바이러스를 접하는 도시 사람들보다 더 취약한 것입니다.”

“1919년 당시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우 윌슨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데 필요한 병력을 미국이 제공했기 때문에 당시 우드로우 윌슨 만큼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는 없었던 것이다. 윌슨 대통령은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는 민족 자결주의와 평화주의에 입각해, 독일에 대한 배상금 요구와 영토분할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스페인 독감에 걸린 윌슨 대통령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고, 이를 반대하는 영국과 프랑스를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이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발생했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단정지어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 독감 (The Great Influenza)’의 저자 존 배리 씨와 같은 역사학자들은 스페인 독감이 베르사이유 조약 체결과정에서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배리 씨//
“1920년대 서구 사회에서 도덕이 무너지고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퍼지는데 스페인 독감이 기여했다고 생각하고요. 또 베르사이유 조약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요. 윌슨 미국 대통령이 병에 걸려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지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게 된 거죠. 베르사이유 조약이 독일에 지나치게 가혹한 협정이었다는데 다들 동의하고 있는데요.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는데 어느 정도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윌슨 대통령이 심한 독감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국은 독일에 대해 군비축소와 엄청난 금액의 배상금 지불, 식민지 포기 등을 요구했고요. 독일 국민들이 이처럼 일방적인 조약에 반발하면서, 결국 나치 정권이 등장하게 됐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됐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스페인 독감은 또 세계 독감 감시체계와 연례 독감 예방접종 시행을 가져오는 등 공중보건 분야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수연 씨//
“이 스패니쉬 독감 때문에 일반 계절성 독감을 예방하는 예방접종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걸로 인해서 우리가 혹시 또 다른 이런 일이 있는데 대비해서, 거기에 대한 기술을 더 개발해야 되고, 그리고 그걸로 인해서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해야 되는구나, 그래서 해마다 계절성 독감 예방접종이 있는 것 같아요.”

인류가 독감의 원인이 바이러스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고도 10여 년이 지나서였습니다. 1932년 미국의 세균학자 리차드 쇼프가 돼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감기와 독감이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인데요. 이 같은 발견에 힘입어 백신이 개발되고, 매년 예방접종이 시행되고 있지만 변형을 일으킨 신종 바이러스가 속속 등장하면서, 독감은 여전히 인류에게 큰 위협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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