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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인물들] 제 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


(엠씨)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이들의 행적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나긴 역사속에는 뚜렷한 족적을 남겨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업적과 사상, 그들이 세상에 미친 영향등을 알아보는 세계를 움직인 인물들, 진행에 박영서입니다. 오늘은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NA(남)지난 10월 1일, 미국 남부 조지아주 플래인즈시,오색의 풍선이 파란 가을하늘을 수놓고 있고, 사람들의 웃음과 환호속에 마을 축제가 한창이다. 마을의 전통축제인 13회 플래인즈시 땅콩축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85회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다.이 마을이 낳은 가장 유명한 인물, 허름한 청바지에 줄무늬 셔츠를 입고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친근한 이웃인 지미 카터 할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존경을 담은 소박하고 따뜻한 행사였다.

NA(여)재임시 가장 무능하고 인기없는 대통령으로 꼽히던 지미 카터.그러나 그는 지금 놀랍게도 퇴임후 가장 성공한 대통령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뿐만 아니라 그는 퇴임후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임기중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고지식하리만큼 소신과 원칙을 지킨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세계 평화의 전도사이다.

#MUSIC

NA(남) 땅콩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지미 카터의 유년기와 청년기는 매우 평범했다.
그는 무료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해군사관학교를 지원했고, 그리 출중하지 않은 장교생활을 했으며,부친이 별세하면서 땅콩농사를 이어받는다. 이 젊은이가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NA(여)1974년,워싱톤 정가는 야당사무소 불법도청사건에 닉슨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극도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었다.그리고 미국민들은 대통령 사임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보며, 정치지도자들에 대해 큰 혐오감에 빠져있었다. 이때 이름없는 남부 조지아주의 주지사의 출현은 미국민들에게 신선한 희망으로 비쳐졌다. 미국민들은 땅콩농부의 아들, 독실한 기독교신앙으로 무장된 그에게서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을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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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남) 1976년 도덕주의정책을 전면에 내서운 카터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제랄드 포드를 누르고, 마침내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SFX:

NA(여) 그러나 이 선량한 땅콩농부의 백악관 생활은 시련과 실패의 연속이었다.잇따른 에너지위기와 정치문제에 있어 그의 노력은 무참하게 실패했고, 국민들에게 무능하고 유약한 대통령으로 비춰지게 된다.실망한 미국민들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을 선택했다.재임에 실패한 카터는 고향인 조지아주 농장으로 돌아간다.

#STING
(엠씨) 취임당시 66퍼센트였던 지지율이 퇴임무렵 34퍼센트까지 곤두박질칠정도로 카터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는데요.그런 그가 어떻게 백악관을 떠난후 오히려 미국민의 사랑과 존경,아니 전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된걸까요?
비록 재임에는 실패지만 농장에 돌아온 카터대통령은 좌절하지 않고 국민들을 위한 일을 찾기시작했습니다.그때 그가 찾은 것이 바로, Habitat 운동,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었는데요,가난하고 소외된 집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사랑을 전하는 이 운동에 카터 대통령은 주저없이 뛰어들었고 ,전직 대통령이 허름한 작업복에 모자를 눌러쓰고 건축자재를 나르며 봉사활동에 헌신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sfx :habitat

(엠씨)이 지구상에는 2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쓰러져가는 허름한 빈민가에서, 그리고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이들에게 보금자리를 지어주는 것,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이 바로 Habitat의 꿈입니다.Habitat는 현재 세계 곳곳에 수백개의 지부가 결성돼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구요, 그 중심에는 바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그가 세운 비영리 재단 ‘Jimmy Carter Work Project’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데요. 1994년,북한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의 충돌은 전쟁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카터대통령은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게 중재에 나설 것을 희망했고,개인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 협상 국면을 조성합니다. 이로써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놓여있던 한반도 위기 상황은 급반전을 이루게 됩니다.
이밖에도 카터 전대통령은 국제분쟁을 중재하고 지구촌의 빈곤과 질병퇴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는데요.그런 카터전대통령에게 세계는 평화상이라는 선물을 줍니다.노벨위원회가 선정문에서도 밝혔듯이 이집트와 이스라엘 분쟁을 해소한 공로만으로도 평화상을 받기에 충분했던 거죠.
사람들은 지미카터를 어떤 인물로 기억하고 있는지, 그가 이룬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들어봤습니다.

#M1
어떤 사람은 지미 카터더러 땅콩 농부라고 하는데 카터는 단순히 땅콩 농부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이란 인질사태때 그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지금 카터가 인권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점수를 주지 않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란 인질 사태는 잊어버려야해요. 그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M2
저는 카터 전대통령이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터 전대통령은 분명히 미국 현대사에서 위대한 대통령가운데 한명입니다. 그는 여전히 챔피언이고, 오바마 대통령이 카터의 발자국을 좇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W1
저는 카터씨를 존경해요, 카터는 매우 똑똑하고 친절한 사람 같아요 그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해비타트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위해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엠씨) 카터대통령은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는 말을 했었는데요, 카터 대통령이 진정으로 위대한 까닭은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후회가 아닌 꿈으로 채워나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찌는듯한 더위에도, 혹한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구를 이끌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집없는 이들에게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해주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올해 85세인 그의 인생 이모작은 미국을 너머 세계 도처에서 오늘도 아름다운 수확을 거두고 있습니다.

# SFX CARTER

NA(남).
언젠가 카터는 자신이 미래에 대한 큰 꿈을 갖게된 동기를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다. 미 해군장교로 복무할 당시, 해군제독이었던 하이만 리코버 장군이 그에게 사관생도 시절 성적이 어떠했느냐고 물었고,그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자신의 성적을 보고했다. 리코버 제독은 다시 한번 물었다. “귀관은 그때 최선을 다했는가” 곰곰 생각하던 카터는 이렇게 말했다. “최선을 다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리코버 제독은 다시 한번 물었다.”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카터는 이 마지막 질문을 평생 잊지 않았다.

엠씨)세계를 움직인 인물들,오늘은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을 듣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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