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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건 다시 보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4)


(박정희 대통령) 포터 대사!

(포터 주한 미국 대사) 네, 각하

(박정희 – 심각한 어조로) 우리 대한민국은 현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과 사흘 전에 북한이 내 목숨을 노리고, 무장공비를 보내더니, 이젠 미국 군함을 나포해 갔어요. 난, 이런 북한의 행위를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포터) 각하! 저희 미국 정부도 지금,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 보시면서, 대응방안을 정하셔도 늦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 격앙된 어조로) 이거 보시오, 포터 대사!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소? 북한이 청와대로 무장공비를 보내고 미국 배를 끌고 갔어요! 이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자는 수작이요! 북한이 이런 짓을 계속한다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 불가피합니다.

(포터) 각하, 각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군사적 대응은 그렇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박정희- 단호한 어조로) 일단 한국과 미국 공군이 북한의 공군 비행장을 폭격하고 나서, 해군 함정을 파견해 동해상에서 활동하는 북한 군함들을 공격합시다. 조만간 한국군 1군단 사령부에 완벽한 전시 태세를 갖추라는 명령을 내릴 참이요. 이번 기회에 북한에 본 때를 보여주자 이 말입니다!

(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방금 들으셨듯이 푸에블로호가 나포되고 하루가 지난 1968년 1월 24일,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윌리엄 포터 주한 미국 대사에게 북한에 군사보복을 하자고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이런 전면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측에 군사보복을 요구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는 그 이유를 당시 한반도를 휘감고 있었던 안보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 Act 1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 /// " 당시 한국의 상황은 미국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틀 전에 1.21사태가 났는데, 그것 때문에 벌써 한국 국민들은 연일 가두 시위와 반공 성명으로 울분과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 두 사건,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심각한 안보 불안감의 대표적인 증거, 즉 북한 김일성이 조만간 한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예시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죠."

(해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에서 눈여겨 봐야할 점의 하나는 당시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소련의 입장입니다. 백악관은 사건 초기 푸에블로호 사건의 배후에 소련이 있지 않나라고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소련의 힘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요, 존슨 대통령은 나포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소련 측에 미국의 입장과 강력한 항의의 뜻을 북한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렇지만 소련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대단히 소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낭독 1- 소련 측 전문) 우리 소련은 이번 푸에블로호 나포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건 해결 과정에 있어서 중재자 역할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기를 권고합니다.

(해설) 북한에 항의의 뜻을 전달해 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소련은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소련 측이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존슨 행정부는 다시 한번 소련에게 급박한 사정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사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지 5일 후인 1968년 1월 28일, 위싱턴 DC 소재 소련 대사관에는 존슨 대통령 명의로 다음과 같은 전문이 전해집니다.

(낭독 2 – 존슨 대통령 전문) 코시킨 수상 각하!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지점은 분명히 공해상으로, 공해상에 있는 함정을 나포한 것은 분별없는 짓입니다. 우리가 작년에 만나 합의했듯이, 세계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이 미국과 소련의 공통된 관심사라면, 이번 사태가 세계평화에 방해가 되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련이 북한에 어떠한 방법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해서 나포된 선박과 승무원을 즉각 석방하도록 해주시길 희망합니다.

(해설) 세계평화를 위해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 하지만 백악관 측의 이런 바램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회신은 실망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낭독 3 – 코시킨 소련 수상 전문) 존슨 대통령 각하! 소련은 미국의 군함이 나포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합니다. 하지만 나포된 선박은 공해가 아닌 북한 영해 안에 있었고, 이 점이 문제의 핵심이고,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 측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저기서 미국이 북한에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말이 들리고 있는데, 이런 말은 정말 무책임한 말로써 불에 기름을 붓는 행위입니다. 미국은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감정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에 대한 어떤 압력도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입니다.

(해설) 외형상으로 보면 소련은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를 침범했기 때문에 나포됐다는 북한의 주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푸에블로호 나포 사실이 알려진 직후 소련도 미국처럼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정성윤 교수는 지적합니다.

/// Act 2 정성윤 교수 /// " 소련은 당시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와 관련해서 심각한 전략적 고민을 했다. 소련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직후에 김일성의 나포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김일성이 자칫 한반도에서 미국과의 무력 분쟁을 야기하고 예기치 않게 소련이 한반도 분쟁에 관련되는 것을 상당히 우려했다."

(해설) 정성윤 교수는 또 소련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두고 소련은 북한의 행동을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지적합니다.

/// Act 2 정성윤 교수 /// " 소련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상당히 불쾌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당시를 말해 주는 소련 측 자료를 보면 소련은 푸에블로호 나포와 관련해서 그 어떠한 정보도 사전에 북한으로부터 얻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사건 다음 날인 1월 24일, 북한 외무성 차관인 김태봉이 평양 주재 소련 대사에게 푸에블로호 나포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한다. 그리고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 자료를 보면 소련이 북한이 이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상당히 불쾌해 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소련 측은 이 사건이 발생한 며칠 후에 북한 측에 또다시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지만, 김일성 정권으로부터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한다."

(해설) 북한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혹스러움과 불쾌함을 가진, 소련 정부는 일단 북한을 옹호하고 나섰지만, 이 사건을 두고 점점 북한 측과 긴장상태에 들어가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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