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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탈북 난민 100명 시대 특집] 미국의 탈북자 촌 (2)


미국 내 탈북 난민 1백 명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지난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난민 지위를 받아 제3국에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지난 9월 말 현재 93명으로 이르면 올해 안에 1백 명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는 탈북자 1백 명 시대를 맞아 여덟 차례에 걸쳐 특집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5부는 미국 내 탈북자촌으로 불리는 중서부의 A도시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살아가는 얘기들을 어제에 이어 계속해서 보내드립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탈북 남성 5명이 오랜만에 모였습니다. 40대 바울 씨, 30대 제임스 씨, 그리고 20대 루크와 사이먼, 브라이언 씨. 가끔 만나 취업정보도 교환하고 노래방에 가서 회포도 푸는 사이인 이들이 오늘은 바울 씨 집에 모여 미국 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눕니다.

루크 “저는 미국에 제일 처음 왔을 때 실망했어요. 아니 날 이런 촌구석에 박아 놓나. 월마트에 가려니까 저기라는데 저기 가도 보이긴 뭐가 보여. 5분을 걸어도 안 보이는 거예요.”

중국에서 인구밀도가 좁은 대도시에 살다가 자동차 없이 다니기 힘든 전형적인 미국 도시에 도착하자 혼란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훗날 조금 이해되는 게 사람들이 차에 의존하잖아요. 전 중국에 살면서, 중국은 대중교통도 발전했지만 모든 게 가쳐워요. 밀집해 살죠. 미국은 땅이 넓은 나라니까 다 흩어 살아요. 모래알 처럼. 모든 게 다 거리가 멀잖아요. 처음에 왔을 때 어! 이게..아닌데 이런 생각만 들더라구요.”

이 도시에 정착했던 탈북자 가운데 적어도 5 명 이상이 다른 대도시로 떠난 배경에는 그런 문화적 차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경향이 높다고 이 곳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 곳의 난민단체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A도시가 난민들에게 주는 장점이 많다고 설명합니다. 미국 입국 1년 뒤에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도 다른 도시들은 신청자가 많아 영주권을 받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이 곳은 대개 2-3개월 안에 영주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주거비가 싸고 시 정부가 취업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점도 강점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일부 난민들은 자신들이 받는 혜택을 비교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지원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두 달 전 입국한 막내 사이먼 씨가 지원에 대해 일부 불만을 털어놓자 탈북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집니다.

사이먼: “ 처음에 와 영어를 모르면 미국 사람보다 돈을 아주 적게 버는데 그 적게 버는 데서 택스(세금)를 내고 집이 없어서 집세를 내고 모든 게 돈이 나가야 하는데, 또 차가 없으면 걸어서 일을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1년이라도 난민들한테 기회를 좀 줬으면 좋겠어요.

루크: “ 그건 네 욕심이고. 미국에 얼마나 살기 힘든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내가 만약 미국 시민이라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 미국 사람 먼저 살려라. 그 다음에 난민이 있으면 도와줘라. 난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 북한에 있을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쿠바에 뭘 얼마 보내주고 어디에 뭘 보내구 당이 선전할 때 난 야 야 국민한테 좀 돌려라. 난 이 생각 들더라구. 제 국민 굶어 죽이면서 제 위상이나 올려서 뭐 하냐.”

조국 북한에 대해 갖는 피해의식도 각양각색입니다. 하루 10시간씩 일본식당에서 일하며 2년제 전문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루크 씨는 북한 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거부감 때문에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밝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루크 “ 컨버세이션 강의 중 만약 친구가 미국에 오고 싶다면 걔한테 뭘 사전에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냐고 선생이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얘기했어요. You rather not say I’m from north Korea. Never say I’m from North Korea.”

루크 씨는 식당에서 혹은 버스정류장에서 일부 미국인들로부터 상처를 종종 받았다고 말합니다. 손님들이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 북한에서 왔다고 하니…말을 뚝 끊더라는 것입니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정착 선배 브라이언 씨는 소수만 그런 것이라며 선입견을 갖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브라이언: “ 그건 선입견이야. 각자가 갖고 있는 선입견. 미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식견과 아저씨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틀린 거야.

루크: 전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몇몇은 그래. 난 우리 가게 단골이라고 오는 손님들이 그렇게 피하더라고요. 또 학교 강의실에서 러시아 애 둘이 뒤에 앉았는데 “Hey are you from China? 그래서 “No! I’m from North Korea” 그랬더니 Really? 하더니 강의시간에 가방을 들고 나가는 거예요. (웃음) 농담이었겠지만 걔들도 그만치 싫은 거예요. 내가 싫은 게 아니라 북한이 싫은 거겠죠.”

각자 인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미국에 온 것을 후회하거나 미국 문화가 갖는 우수성을 부정하는 탈북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난 6월 초등학생 딸과 함께 입국한 린다 씨. 중국에서 10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미국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도 미국 사회에 대해 놀란다고 말합니다.

“버스에 장애자가 오르고 내릴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돼 있는 거예요. 태국과 중국에서도 이런 것 못 봤어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한 방울의 물에 우주가 빗긴다. 근데 내가 그걸 하나 보고 느낀 것이 미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닌가.(웃음). 그리고 장애자가 오르고 내릴 때마다 장치를 풀고 하면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런데 누구 하나 싫어한다던가 인상을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아주 당연한 듯이. 그걸 보고 놀래버린 거예요.”

린다 씨 등 이 도시의 탈북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언어였습니다. 소통을 못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직장에서도 여러 오해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뉴저지의 탈북 난민 1호 데보라 씨가 지적한 대로 영어 배우기를 쉽게 포기하면서도 좋은 직장을 얻기 원하는 이중성 때문에 취업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이 곳의 난민 단체 관계자들도 그런 문제를 지적합니다.

“제일 기초가 바로 영어예요. 이 것을 못하고 직업을 잡아봤자 많이 받아야 시간 당 10불, 5불, 7불 이렇지만 영어가 되면 작게 받는 게 10불 이예요. 더 받을 수 있고요. 고 몇 달 동안이라도 영어를 좀 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하고. 대화가 되면 직업도 좋은 것을 구하고 사람 관계에도 말 실수를 잘못해서 오해를 당하는 경우도 없고 그럴 거예요.”

자신의 언어 실력을 간과한 채 단체가 제공하는 시간제 직업들의 보수가 작다며 불평하는 난민들을 볼 때 마음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에 먼저 정착한 선배 탈북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다시 겪지 말라며 후배들에게 정착생활에 대해 적극 조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탈북자들로부터 감사보다는 오히려 상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에스더: “빈 손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서로가 다 도우며 살고 싶거든요. 그런데 가끔씩 도우면서 상처받을 때가 있어요. 여자들끼리는 괜찮아요. 그런데 이성 간에 평가하고 그런 쪽으로 보면 상처 받고 내가 하는 일에 상처 받기 때문에. 이젠 미국 문화를 알았기 때문에 내가 어느 선까지만 가야 한다는 것을 포착하고 더 이상은 안 가요.”

브라이언: “돕는 것 외에 말 한마디라도 조언해 주길 원하거든요. 나는. 누구든 상관없이. 근데 워낙 고집이 세서 그런지. 자기 생각이 강하고. 말을 들으려고 안 해요.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버텨보라는 충고를 해줘도 그 것이 어딘가 모르게 너는 좀 여유 있으니까 그런 소리 한다. 배부른 흥정하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이런 구설수에 오르기 싫어서인지 이 도시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탈북자 부부는 인터뷰도 사양한 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남몰래 도와가며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에만 성실히 매달렸습니다. 이 부부는 열 마디보다 자신들이 먼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다른 탈북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확실한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에스더 씨는 북한 정부의 감시로 습관화된 의심하는 버릇과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아픈 과거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미국 문화에 적응하고 열심히 목적을 이룬다면 모두가 웃으며 함께 보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다 밑바닥부터 시작할 각오를 갖고 오돼 분명한 목적을 갖고 한 곳에 포커스를 맞추면 좋겠어요. 미국 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다재는 무죄다. 모든 것 잘하는 사람은 무죄라고, 그래서 밑바닥부터 시작하되 내가 잘하는 것을 하나 잡아 포커스 하라는 것. 그걸 꼭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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