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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인류의 역사를 바꾼 전염병 – 결핵 편


안녕하세요? 화제가 되는 뉴스를 중심으로 그에 얽힌 역사를 돌아보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최근 신종독감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전염병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요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신종독감에 쏠려 있지만, 사실 신종독감 보다 더 치사율이 높고 무서운 병이 결핵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 시간에는 인류 역사 속에서 결핵은 어떤 질병이고, 또 인간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도움 말씀에 한국의 김상재 국제결핵연구소장, 하바드 대학교 공중보건학 교수 배리 블룸 박사입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가극 ‘라 보엠’…… 여주인공인 재봉사 미미는 시인 루돌포와 사랑에 빠지지만 가난과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갑니다. 역시 이탈리아 작곡가인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이 작품 또한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데요. 고급 매춘부인 비올레타는 귀족 청년 알프레드와 신분과 나이를 초월해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병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라 보엠’의 미미와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는 모두 갸냘픈 몸매에 창백한 피부, 홍조 띤 얼굴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데요. 젊고 아름다운 두 여성의 목숨을 앗아가는 질병은 바로 결핵입니다.

이처럼 결핵은 수 많은 가극과 문학 작품에서 비련의 주인공들을 통해 미화돼 왔습니다. 결핵의 증상…… 즉 여윈 몸과 창백한 피부, 홍조 띤 얼굴은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칭송 받았고요. 19세기 들어 낭만주의가 꽃을 피울 무렵에는 창의성과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다는 증거로 여겨지면서,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1829년 의학 교육을 받았던 영국 시인 존 키이츠는 기침을 하면서 선홍빛 피를 쏟았다. 키이츠는 친구에게 동맥피라며,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한 방울의 피는 자신에게 사형선고나 다름 없다며, 자신은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년 뒤 키이츠는 25살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결핵으로 목숨을 잃은 예술가는 키이츠 만이 아닙니다. 폴란드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 체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등이 결핵으로 사망했고요. 한국에서도 시인 이상이 결핵으로 숨진 것을 비롯해, 나도향, 김춘수, 김지하 등 많은 시인들이 결핵을 앓으면서 ‘예술인의 직업병’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결핵을 앓은 이유는 그 만큼 결핵이 만연했기 때문이라고 하바드 대학교 공중보건학 교수 배리 블룸 박사는 설명합니다.

//블룸 박사//
“1800년대, 19세기에 프랑스 파리나 영국의 사망자 가운데 4분의 1이 결핵으로 숨졌습니다. 1632년에 영국에서 첫 전염병에 관한 연구 보고서가 나왔는데요. 존 그런트란 사람이 발표했는데, 런던이 있는 미들섹스 군에서 주민들의 사망원인을 조사한 것이죠. 그 결과 사망원인 제1위는 영아사망이었고, 그 다음이 결핵이었습니다.”

결핵은 예부터 인간을 괴롭혀온 질병의 하나입니다. 기원전 7세기 앗시리아를 지배했던 아슈르바니팔 왕 시대에 만들어진 점토판을 보면 잦은 기침과 창백하고 차가운 피부, 피가 섞인 가래 등 결핵의 증상을 묘사하는 문구가 나오고요. 심지어 6천년 전에 죽은 이집트 미라에서도 결핵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김상재 소장//
“그건 불과 수천 년의 얘기지만 사실은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결핵 균이 사람 몸에 들어와 있었죠. 일부 미라나 그런 걸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거고요. (결핵 균이) 사람 몸에 기생하기 시작한 건 그 보다 더 훨씬 전의 얘기죠.”

한국의 김상재 국제결핵연구소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기원전 8천 년에서 4천 년 사이 인간이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결핵 환자가 발생했다고 보는데요. 인간과 동물 간의 접촉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결핵은 오랫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질병이지만 그 원인인 결핵균이 밝혀진 것은 19세기말에 이르러서입니다. 그 전에는 유전설과 나쁜 공기로 인한 전염설, 심지어 흡혈귀와 연관이 있다는 설까지 나왔는데요. 결핵 환자의 증상인 창백한 얼굴, 차가운 피부, 유난히 반짝이는 눈, 그리고 희미한 심장박동이 바로 흡혈귀의 증거란 것이었습니다.

원인을 몰랐으니만큼 현대 의학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치료법이 시행되기도 했는데요. 중세 유럽에서는 왕의 손이 닿으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새로 즉위한 왕이나 왕비에게 특별한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13세기 영국을 다스렸던 에드워드 1세 시대에는 1달에 5백 명 이상, 14세기 프랑스 왕 필리프 6세 시대에는 하루 1천5백 명 이상의 환자들이 왕의 손에 닿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같은 관습은18세기 초 영국의 앤 여왕 때까지 이어졌다.”

이 같은 관습이 중단된 것은 결핵 환자가 계속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왕의 치유 능력을 믿지 않게 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18세기말부터 결핵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해 19세기 들어 절정을 이뤘던 것입니다.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온 결핵이 이 때와서 기승을 부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상재 소장//
“유럽에서는 산업혁명기에 노동인구들이 많이 모여서 생산하게 되잖습니까? 산업혁명이 결국 인구의 이동을 가져왔다는 말이에요. 인구가 도시에 모이고 밀집한 생활환경에서 생산활동을 하다 보니까 결핵이 전파될 수 있는 환경이 매우 잘 조성된 거죠.”

산업혁명 당시의 가혹한 노동 조건과 열악한 환경이 주원인이었다는 건데요. 따라서 결핵이 만연했던 1800년대에는 7명 중 1사람, 생산능력을 보유한 연령대에서 3분의 1 이상이 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결핵 환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19세기 중반에 요양원이 등장했습니다.

//블룸 박사//
“19세기 중반 독일 의사 헤르만 브레머가 오스트리아에 처음 요양원을 세웠죠. 브레머는 결핵 환자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쬐면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컬럼비아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였던 에드워드 리빙스턴 트루도가 뉴욕 주 새러낙 호반에 세운 요양원이 처음이었는데요. 트루도 자신이 결핵 환자였습니다. 다 죽게 돼서 신선한 공기나 마시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생각으로 산에 들어갔는데 회복이 된 겁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을 세웠죠.”

결핵 약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요양원이 크게 유행을 했는데요. 한국에서도 마산에 국립요양원이 세워져 나도향, 김상옥, 구상 등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이 곳을 거쳐가기도 했습니다.

“마산에 온 지도 벌써 두 주일이 넘었습니다. 서울서 마산을 동경할 적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마산이었는지요! 그러나 이 마산에 딱 와서 보니까 동경할 적에 그 아름다운 마산이 아니요, 환멸의 섬섬함을 주는 쓸쓸한 마산이었나이다.”

‘벙어리 삼룡이’, ‘뽕’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나도향은 1920년대에 발표한 소설 ‘피 묻은 편지 몇 쪽’에서 요양원에서 지내는 쓸쓸함을 이렇게 표현했는데요. 나도향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병마의 고통과 갱생의 의지를 작품에 투영시키면서 결핵문학이란 표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낭만적이기만 하던 결핵에 대한 인식은 1882년 독일 과학자 로버트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하면서 크게 바뀌게 됩니다. 하바드 대학교의 배리 블룸 교수는 결핵 균의 발견이 두 가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합니다.

//블룸 박사//
“첫 번째는 로버트 코흐가 결핵의 원인을 발견함으로써 전염병학이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코흐 덕택에 전염병과 비전염병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1882년 결핵균 발견 이후 공중보건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환경을 바꿈으로써 건강한 사람에게 병이 전염되는 것을 막자는 것인데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거리에 침을 뱉지 못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는 등 대대적으로 공중보건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946년, 결핵 치료의 획기적인 길이 열리게 됩니다. 미국인 과학자 셀맨 왁스만이 개발한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이 결핵치료에 효과적이란 사실이 입증된 것인데요. 환자 격리 수용과 치료약의 개발, 생활 환경의 개선 등에 힘입어 결핵 환자의 수가 크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에 이르러 학자들은 결핵을 퇴치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는데요. 그러나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 빈곤지역에서는 여전히 결핵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고요. 전 세계적으로 한 해 2백만 명 이상이 결핵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블룸 박사//
“그리고 지금 매우 두려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부적절한 치료와 항생제의 사용으로 주요 치료약에 내성을 보이는 내성 결핵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한 결핵이 다시 만연하지 않을까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북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요. 북한에서 결핵 퇴치사업을 벌이고 있는 유진벨 재단의 스테판 린튼 회장은 최근 들어 북한 내 일반 결핵환자 발생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일반 결핵약이 듣지 않는 내성 환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린튼 회장//
“우리가 방문하는 기관들로 봐서는 수는 늘고 있지 않지만 일반 결핵약이 안 듣는 다약제 내성 환자들은 수가 늘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의 흑사병과 비교해 백색 역병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결핵……. 한 때 젊음과 열정, 순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질병 결핵은 아직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염병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JJ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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