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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건 다시 보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3)


/// Act 1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 /// " 원래 사건 발발 초기에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최악의 경우에는 핵전쟁까지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요,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뿐만이 아니라 조야의 정치가들과 미국 국민들까지도 북한에 대한 강력한 무력대응을 주문하기 이르렀어요.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후 일주일 이내에 행해졌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의 강력한 대응, 즉 무력적 대응을 주문했던 여론이 압도적인 다수였습니다."

(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의 말처럼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 정부를 비롯한 미국 국민들은 엄청나게 화가 납니다. 그래서 사건 발생 초기에는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하라는 강경론이 힘을 얻는데요, 특히 사건이 발생한 초기 24시간 이내에 미국 군부는 긴급 상황에 대비해 부대 재배치를 포함한 다양한 군사적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미군 태평양 함대 사령부는 예하 부대에 이런 명령을 하달합니다.


(낭독1) 핵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원산항 인근에 파견한다. 태평향 함대 예하 7함대 지휘관들과 참모들은 북한을 상대로 한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부대 재배치를 검토하라. 일단 일본 오키나와 기지에 있는 F-105(원 오 파이브), 전투기 12대를 한국 오산 기지에 급파한다.

(해설) 이렇게 미국 해군이 함정과 항공기를 한반도에 급파하는 동안, 한국 방위의 큰 축이었던 주한미군도 경계태세에 들어갑니다.

(낭독2) 주한미군 사령관 본 스틸 장군이다. 예하 지휘관들은 고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주요 지휘관들은 지휘소에서 대기하라. 경계태세는 데프콘 4로 유지하고, 상황에 따라 데프콘 3로 올릴 것이다.


(로스토우 국가안보보좌관) 대통령 각하, 어떤 식으로든 북한에 본 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행동을 하지 않으면 미국의 체면이 크게 깍일 것이 분명합니다. 한국 정부도 지금 우리측에 보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헬름즈 중앙정보국 국장) 그렇습니다. 각하! 우리가 군대를 동원해도 북한은 전쟁을 벌이지는 못할 겁니다.

(효과) 논쟁하는 소리

(클리포드 차기 국방장관 내정자 – 단호한 어조로) 하지만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 함정과 승무원들이 북한 측에 잡혀있는 상태에요.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대대적인 군사적 대결을 할 필요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스토우) 만일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줄어들 것입니다.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만일 정말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아주 골치 아프게 됩니다. 빨리 군사행동을 취해서, 북한이 승무원들을 풀어주게 만들어야 합니다.

(맥나마라) 일단 우리가 군을 동원하긴 해야겠지만, 북한을 정말로 공격한다기 보다는 무력시위를 벌여야 할 것 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무력시위라도 벌이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들이 우리 미국을 얕볼 것이 틀림이 없어요. 만일 그렇게 될 경우, 베트남 전쟁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해설) 방금 들으신 바 대로 백악관은 무력대응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데요, 존슨 행정부는 일단 막대한 규모의 군사력을 한반도에 배치하기로 합니다.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는 미국이 여러가지 부담이 되는 선택이었던 군사력 동원에 나서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Act 2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 /// " 사실 당시 월남전 문제도 있고 해서, 미국 국민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는 공감이 있었고요, 한국에는 김신조 사건 등이 생겨서 안보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강력한 안보대응 액션을 취해 주는 게 당연한 순리였고요, 또 소련이나 중국 베트남 북한, 이런 나라들이 오판을 못하도록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월남하고 한반도, 양쪽에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죠."

(해설)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는 푸에블로호 사건 초기에 미국이 취한 군사행동의 규모는 외형상으로 보면 엄청난 것이었고, 이어 다양한 형태의 군사대응 방안이 제시된다고 말합니다.

/// Act 3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 /// "사실 엄청난 무력을 동원합니다. 엔터프라이즈호를 포함한 구축함 5척, B52 폭격기가 26대가 동원이 되거든요? 요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사실 처음에 검토할 때는 원산항에 기괴를 부설한다든가 또 북한 선박을 나포한다든가, 항만 봉쇄, 간첩선 대체 투입이라든가, 특정 지역을 폭격한다든가 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실행되지는 않았습니다."

(해설) 김정배 교수의 말처럼 격앙된 미국 정부와 군은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무력대응 방식을 놓고 고심하게 됩니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후 워싱턴과 미국 군부가 고려했던 군사적 대응방안은 대략 다름과 같은 6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낭독3) 적당한 목표를 정해 육군이나 해군 전투기를 동원해서 공격한다. 정찰기를 동해에 파견해 주변의 북한 도시들을 공중 정찰한다.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나포한다. 또 다른 정보수집함을 동해상에 고정 배치한다. 해군 함정을 원산항 인근에 배치한다. 그리고 기뢰를 부설하거나 해군 함정을 이용해 원산항을 봉쇄한다.

(해설) 푸에블로호 나포로 인하여 미국이 대규모 군사력을 동해상에 이동시킴으로써, 1968년 1월 23일 이후 한반도는 전쟁 발발을 목전에 둔 것과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사건 초기 미국 정부가 이렇게 해군 함정과 전투기들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에 들어가지만, 이런 엄청난 규모의 군사력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격앙된 분위기와는 달리 미국 정부는 무력으로 북한을 응징하거나, 또 이를 통해 나포된 배와 승무원들을 찾아오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김정배 교수의 말을 들어봅니다.

/// Act 4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 /// " 이거는 뭐 응징이라고 보기 보다는 무력시위라고 하는 것이 명확합니다. 군사력을 동원할 때, 미국은 북한에 힘을 과시하는 것이지,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이런 것은 애초에 배제되어 있는 그런 상황에서 군사력을 동원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해설) 김정배 교수는 이런 무력시위 또한 상당한 부담이자 큰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무력시위가 부담스러웠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북한이 크게 반발해서 승무원과 선박의 송환을 지연시킬 수 있었고, 또 이에 대해 중국과 소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대문입니다.

(해설) 미국 정부는 외교적 접근과 무력대응에서 고심하다 일단, 동해상에 막강한 군사력을 배치해, 무력시위에 들어갑니다. 자, 이렇게 미국이 무력 시위에 나서는 동안 한국을 비롯한 소련은 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었을까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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