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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역사] 인류의 역사를 바꾼 전염병 – 흑사병 편


안녕하세요? 화제가 되는 뉴스를 중심으로 그에 얽힌 역사를 돌아보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 부지영입니다.

최근 신종독감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전염병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지난 시간에는 천연두가 16세기 유럽인들에 의해 신대륙으로 전파되면서 중남미 아스텍 제국과 잉카 제국의 멸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2백여 년 앞서, 유럽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죠. 아시아에서 전파된 전염병의 창궐로 유럽 전역이 초토화가 됐던 건데요. 바로 블랙 데스 (The Black Death), 즉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전염병 때문이었습니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의 붕괴를 가져온 동시에, 인본주의와 르네상스, 자본주의를 낳는 산파 역할을 했는데요. 과연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가능했는지,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 시간에는 흑사병이 중세 유럽에 전파된 과정과 유럽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도움 말씀에 한국의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미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의 흑사병 전문학자 조 히네부쉬 박사입니다.

서양 어린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 ‘Ring Around the Rosie’…….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돕니다. 그리다가 노래 마지막에는 모두 주저앉는데요. 요즘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부르는 이 노래는 사실 중세 유럽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첫 소절은 흑사병 환자의 몸에 나타나는 둥근 모양의 붉은 멍울을 의미하고요. 두번째 소절은 향기 나는 꽃을 몸에 지니고 다녔던 당시 풍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흑사병이 돌던 당시 중세인들은 병균을 멀리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또 병자와 시신에서 나는 악취를 견디기 위해 꽃과 향초를 주머니에 넣어 다녔던 거죠. 그리고 에취, 에취하며 재채기를 하다가 모두 쓰러져 죽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 노래 ‘Ring Around the Rosie’의 가사인데요. 이 노래는 결국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흑사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병이 블랙 데스, 즉 흑사병이란 별명을 갖게 된 것은 환자의 몸에 나타나는 증상 때문이라고 한국의 홍혜걸 의학전문기자는 설명합니다.

//홍혜걸 박사//
“페스트 흑사병은요. 여시니아 페시티스라고 하는 세균이 일으키는 감염질환입니다. 말 그대로 까맣게 죽는다 해서 이름이 흑사병 이렇게 붙여져 있는데요. 처음에는 열이 나고, 그 다음에 다리 쪽이나 목 쪽 겨드랑이 쪽, 가래톳이라고 부르죠. 림프종이 붓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고요. 조금 지나면 피부의 조직이 괴사가 돼서 손끝, 발끝, 다리 쪽으로부터 해서 피부가 까맣게 썩는 그런 증세를 보이죠. 그래서 흑사병이라고 하는 병명이 붙여졌고요.”

피부가 까맣게 썩어 들어가는 무서운 전염병인 흑사병…… 이 병은 원래 들쥐나 다람쥐 등 야생 설치류 사이에서 도는 병으로, 쥐벼룩이 병균을 옮깁니다. 중세 유럽에서 창궐했던 흑사병은 1331년에 중앙아시아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저 멀리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흑사병이 어떻게 해서 유럽으로 전파됐고, 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을까요?

//홍혜걸 박사//
“원래는 이게 중국 서남부 운남 지방의 풍토병이었죠. 그 지역의 쥐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병인데요. 14세기 무렵에 몽골 군이 유럽을 침략하는 경로를 따라서, 아시아에 있던 페스트 균이 유럽으로 옮겨온 것으로 그렇게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몽골 군 가운데 킵차크 한국의 자니베크 칸이란 황제는요. 흑사병에 걸려 죽은 군인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서, 유럽을 방어하던 페도시아란 도시의 성벽 안으로 던져 넣어서 일부러 흑사병을 퍼뜨리는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죠.”

그런가 하면 실크로드, 즉 비단길을 통한 상인들의 이동도 흑사병 전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 국립보건원 산하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의 조 히네부쉬 박사입니다.

//히네부쉬 박사//
“중세 유럽과 중앙 아시아 사이에 흑사병이 전파될 수 있을 정도로 무역이 성행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역로를 통해 흑사병이 유럽으로 퍼질 수 있었던 거죠.”

흑사병은 뱃길을 통해서도 유럽으로 퍼졌는데요. 1347년, 흑해에서 출발한 상선들의 첫 기항지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이었습니다.

“갑판 아래 선실은 시신으로 가득 했다. 그나마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간신히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다. 위험을 느낀 주민들이 섬에서 떠나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들은 쥐벼룩이 흑사병을 옮긴다는 사실을 몰랐다. 배 안의 쥐들은 부두에 묶인 밧줄을 타고 육지로 올라와, 곳곳에 병을 퍼뜨리고 다녔다.”

흑사병은 지중해 연안에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이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됐습니다. 쥐가 들끓는 더러운 도시 환경,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당시 유럽인들의 생활 습관은 흑사병이 퍼지는데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1347년 이탈리아 피사에서 하루 5백 명,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루 6백 명, 프랑스 파리에서 하루 8백 명씩이 죽어나갔고요. 시신을 매장할 토지와 일손이 부족해, 미처 매장되지 못한 시신들이 강과 거리에 넘쳐났습니다.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공포에 빠졌다. 독일에서는 회개해야 한다며, 쇠붙이가 달린 채찍으로 자신의 등을 때리며 고행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일부는 유태인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유태인들이 유럽의 우물을 오염시켜 전염병이 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수천 명의 유태인들이 고문을 당했고 화형에 처해졌다.”

이 같은 혼란 속에 돈 많은 귀족이나 성직자들은 도시를 떠나 시골로 피신했는데요. 그러나 흑사병은 상대가 왕족이건, 성직자건, 공격 대상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1348년 흑사병이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이르렀을 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딸 존 공주가 보르도에 도착했다. 카스티야 공국의 페드로 왕자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하던 존 공주는 당시 영국령이던 보르도의 성에서 잠시 쉬어갈 생각이었다. 보르도 항구는 병에 걸린 쥐들로 들끓고 있었지만 공주 일행은 이를 눈치 채지 못했고…… 전염병이 돌고 있으니 주의하란 보르도 시장의 조언은 무시됐다. 얼마 가지 않아 공주 일행이 머물고 있던 보르도 성은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존 공주는 15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만약 당시 존 공주가 보르도에 들리지 않았더라면, 흑사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아 카스티야의 페드로 왕자와 무사히 결혼식을 올렸더라면, 영국은 스페인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이후의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고, 지금 유럽의 지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처럼 흑사병은 당시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뿐 아니라, 몽골 군의 유럽원정 등 많은 전쟁의 시작과 결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홍혜걸 박사//
“몽골 군의 침략으로 유럽 쪽으로 흑사병이 퍼지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피해가 몽골 군에게도 나타난 거에요. 당연히 전염병이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잖아요. 그래서 몽골도 피해를 많이 입고, 다시 돌아가는 그런 일이 생겼고요.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도 마찬가지고요. 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전쟁도 처음에 잉글랜드에서 흑사병이 유행을 해서 인구의 절반 가까이 죽는 상황이 생기니까, 그 동안 항상 열세에 있던 스코틀랜드가 이 때가 기회다 하고 잉글랜드를 침략을 했죠. 처음에는 좋았는데 결국은 스코틀랜드 군도 페스트 균이 유행하면서, 다 같이 죽고, 서로 철수하는, 전쟁이 중단되는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의 공포는 1351년에 이르러 마침내 수그러드는데요. 교황 클레멘트 6세는 흑사병으로 인해 무려 2천4백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줄어든 것인데요. 당연히 이에 따라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홍혜걸 박사//
“아주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전염병 한 개가요. 예컨대 종교만 하더라도 성당에 가서 열심히 신자들이 기도를 했는데 속수무책이었다는 거죠. 이런 일이 생기면서 교회 권위가 흔들리고, 인간 위주의 인문주의가 싹 트고요. 르네상스가 꽃피는 계기가 됐죠. 그러면서 프로테스탄트 교가 나타나게 된, 그런 결정적인 단서를 흑사병이 제시했다 이렇게 알려져 있고요.”

그렇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하기 전까지 유럽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봉건귀족 사회가 장악하고 있었는데요. 이들 지배층은 영토와 부를 장악했을 뿐이라, 심지어 지식까지 통제했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수많은 성직자들이 숨지면서 라틴 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줄어들었고요. 이에 따라,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 자국어 기록이 늘면서 민족주의가 싹트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인건비가 상승하고,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숨진 친척들의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재력을 가진 중산층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입니다.

//홍혜걸 박사//
“또 인구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하고 노동자의 권리가 올라가면서 농노제도가 붕괴를 한다 라든지, 상업주의가 팽배한다 라든지, 이런 현상들…… 길게 보면 이게 결국은 유럽식 자본주의로도 연결이 되는 그런 단초로 작용을 했습니다.”

이처럼 유럽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흑사병…… 그러나 흑사병이 인류를 위협한 것은 이 때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습니다. 미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의 조 히네부쉬 박사입니다.

//히네부쉬 박사//
“그 동안 세 차례 흑사병이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세 흑사병이고요. 그보다 앞서 로마 시대에 지중해 지역에서 한 차례 유행했고, 근래 들어 1백여 년 전 아시아에서도 창궐한 사례가 있습니다. 1800년대 말에 중국에서 이 병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했죠.”

흑사병은 아직까지 인류가 완전히 퇴치하지 못한 질병의 하나입니다. 현재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매년 1천 건 이상 흑사병 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있고요. 올 여름에도 중국 청해 성에서 흑사병으로 3명이 숨졌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다행히 흑사병은 세균성 질환이기 때문에 항생제로 치료가 잘 되는 편입니다. 또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각국 정부가 쥐를 비롯한 설치류의 흑사병 감염 여부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는 또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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