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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 생존 위해 미국의 적대 정책 주장’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5일 평양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미국과 북한 간 양자회담을 통해 양측의 적대 관계가 반드시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적대 관계 개선을 사실상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주장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지적합니다. 윤국한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한국전쟁은 지난 1950년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돼 3년 만인 1953년 휴전협정으로 일단락 됐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북한과 전쟁 상태에 있으며, 현재 한국에는 2만8천 여 미군병력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바로 이 주한미군의 존재와 미-한 두 나라 군의 연례 합동군사훈련을 자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 정책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자신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적대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미국의 적대 정책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국제위기감시그룹 서울사무소의 다니엘 핑크스톤 연구원은 지적합니다.

북한의 주장은 때로는 뭔가 구체적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추상적이라면서, 북한 측의 주장은 감정적인 느낌과 관련한 것이어서 해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한국전쟁이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군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선군정치의 깃발 아래 미국의 공격을 빌미로 주민들을 항상 전시체제로 내몰고 있습니다.

북한은 또 최근에는 바락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인권 특사를 지명한 것을 비난하면서, 이 것 역시 자국에 대한 적대시 정책의 증거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북한대학원대학교의 양무진 교수입니다.

<양무진>“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을 계속 강조함으로써 주민들의 대미 경각심을 일깨우는 측면, 그리고 남남 분열과 한-미 분열을 일으키는 측면, 그런 의도를 갖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미국은 특히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했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기간 중 인도주의적 구호 차원에서 10억 달러어치가 넘는 식량과 에너지를 북한에 지원했습니다.

미국은 또 지난 2003년부터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북한이 참여하는 6자회담을 통해 식량과 관계 정상화, 안전보장 등을 대가로 북한이 핵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스탠포드대학의 연구원인 피터 벡 씨는 적대 정책을 구실로 한 북한 정권의 대미 비난은 6자회담에 제동을 걸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피터 벡 연구원은 그러면서 북한이 적대 정책 철회를 요구하면서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나 한국 내 미군의 핵우산 제거 등은 미국의 어느 행정부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피터 벡 연구원 등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피그미’ 또는 `폭군’ 등으로 비하하고, 북한 정권을 `악의 축’으로 지정해 북한에 미국이 적대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도록 하는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 정권은 이유가 어떻든 미국이 자국에 적대적이라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같은 주장이 정권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동서대학교의 북한 전문가인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는 미국의 적대 정책을 강조하는 것이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극심한 국제적 고립과 빈곤 속에서도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대한 구실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군사력과 핵무기, 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로서는 주민들에게 계속 미국의 적대 정책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것은 마치 나치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가 끊임없이 주변국들을 침공했던 것과 같은 논리라고 마이어스 교수는 말합니다.

마이어스 교수는 또 미국이 적대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을 포기하고 미국 등 국제사회와 대화에 나설 경우 북한으로서는 한국과 별도의 국가로 남기 위한 주된 논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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