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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건 다시 보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


(함장) 함장이다. 전속력으로 이곳을 빠져 나간다. 모든 승조원은 전투배치 상태에 들어가라!

(선원) 함장님, 북한 어뢰정 네 척과 구축함 두 척이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투기가 상공에 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함장) 동요하지 말아라, 우리는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있어!

(해설) 1968년 1월 23일, 북한 원산항 인근, 동해상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던 미국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북한 어뢰정 네 척과 구축함 두 척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푸에블로호를 쫓는 북한 함정들은 함포로 위협사격을 하며, 푸에블로호에게 멈출 것을 명령했다.

(선원) 함장님, 우리 수병 한 명이 총에 맞았습니다. 이젠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함장) 음…..어쩔 수 없구만. 부함장, 기관을 정지하시요. 자 빨리 배 안에 있는 비밀문서들을 없애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서두르시요!

(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에서는 가을 개편을 맞아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내용과 이 사건들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를 탐구해보는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를 제작해 방송합니다. 오늘 첫 시간은 한반도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냉전이 한창일 때 발생했던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으로 시작합니다.

(해설) 최첨단 장비를 갖춘 고성능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1968년 1월 23일, 동해상에서 북한 해군에게 나포됩니다. 이후 같은 해 12월, 사망자를 포함한 승무원 전원이 송환되기까지,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승무원 석방 협상이 긴박하게 전개되면서, 이 푸에블로호는 세계 냉전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일어났던 1968년은 과연 어떤 해였을까요?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는 1968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ACT 1 김정배 교수 /// 1968년 전후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전환기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국 체제가 균열이 커지면서 양 진영 내부에서 국가간에 갈등이 표면화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고 유럽에서는 68혁명이라는 변혁운동이 일어난다.

(해설) 김정배 교수의 말처럼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극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또 제3세계 민족운동과 서구 세계의 진보적 혁명운동이 분출된 시기가 바로 1968년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원산항 근해상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던 푸에블로호를 나포해, 파란을 몰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 푸에블로호는 도대체 어떤 배였고, 또 어떤 임무를 가지고 동해에 파견되었을까요?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의 말입니다.

/// ACT 2 정성윤 교수 /// 미국 해군이 운용한 정보수집함이었다. 냉전 초기 소련이 비전투 선박을 정보함으로 이용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특히 1966년 이후부터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북한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파견된 배로, 1968년에 북한 측에 나포되는 비운의 배다.


(해설) 여기에서 푸에블로호 나포사건과 관련해 반드시 짚고 가야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나포 당시 푸에블로호가 어디에 있었느냐는 점입니다. 북한은 나포 당시부터 줄곧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에 있었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반대로 푸에블로호는 공해상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 말이 진실일까요?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는, 진실은 장막에 가려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 ACT 3 김정배 교수 /// 영해 침범 문제는 아직까지 결론이 나질 않았다. 영해 침범 여부를 가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아주 복잡한 문제다. 나포 당시 미국 측도 푸에블로호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었고, 그 이후에 벌어진 조사에서도, 공식적으로 확인이 안되니까, 미국 정부는 푸에블로호가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해설)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지 8일 뒤인 1968년 1월 31일 고 김일성 북한 주석은 알렉세이 코시긴 수상에게 비밀리에 친서를 보냅니다.

(김일성 주석- 낭독)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벌이려 하고 있습니다. 만일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공격해 오면 조선-소련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 의거해 소련이 지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해설) 김일성 주석의 친서에도 나타나 있듯이, 푸에블로호 나포 이후 북한은 미국이 군사행동에 나설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왜 푸에블로호를 나포했을까요? 신라대학교 김정배 교수는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목적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 ACT 4 김정배 교수 /// “ 이 사건을 통해서 대외적으로 북한의 운신의 폭을 넓히고, 북한 체제를 선전하고자 하는 의도,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미국 배를 나포함으로써 김일성 체제의 위대함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북한 박청국 장군- 낭독)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만일 미국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우리 공화국과 협상을 하고 토론할 생각이 있다면, 이 문제는 잘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는 승무원 귀환 문제를 미국 측과 협상할 용의가 있습니다. 단 협상은 판문점에서만 가능합니다.

(해설) 영해를 침범했기 때문에 나포에 나섰건, 아니면 전세계에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시도였던 간에 북한은 푸에블로호 나포 4일 후인 1월 27일, 군사정전위를 통해 박청국 장군 명의로 미국 측에 이같은 비공개 전갈을 보내옵니다. 바로 만나서 협상을 하자는 전갈입니다. 이 전갈이 미국 측에 전달된 후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다큐멘터리-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이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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