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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펜실베니아 주, 중세 유럽 전장으로 변모 ‘펜식전쟁’


이번에는 미국 내 문화계 소식을 전해 드리는 ‘문화의 향기’ 시간입니다. 오늘도 부지영 기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기자) 요즘 신문이나 잡지를 보니 할로윈 의상 광고가 많이 눈에 띄던데요. 상점에도 할로윈 의상이랑 장식이 즐비하고요. 아무래도 할로윈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진행자) 그렇죠. 10월 31일이 할로윈이니까 한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잖아요? 양력 11월 1일이 만성절로 불리는 ‘모든 성인의 날’이고, 그 전날인 10월 31일이 할로윈이까요.

(기자) 네, 이 날 미국에서는 어린이들이 유령이나 공주, 또는 영화나 만화 주인공 의상을 입고, 집집 마다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데요. 할로윈은 미국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명절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여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할로윈 복장이 뭔지 아세요?

(진행자) 아무래도 공주나 요정 복장이 아닐까 싶은데요? 집에 사탕을 얻으러 오는 여자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예쁜 공주 옷을 입고 있더라고요.

(기자) 네, 여자 아이들이 다들 공주 옷을 입고 싶어한다면, 남자 아이들은 중세 기사나 왕자의 옷을 한번쯤 입고 싶어하는데요. 그건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고요. 어른도 마찬가지지 않나 싶습니다.

(진행자) 당연하죠. 저도 가끔 역사물을 보다 보면 영화 속에 나오는 여왕이나 공주의 화려한 의상을 한번쯤 입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 저도 그렇습니다. 미국 사람들 중에는 어른들도 그렇게 차려 입고 모여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할로윈에 즈음해서 열리는 가장 무도회도 그렇지만,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미국 전역에서 열리는 르네상스 축전도 그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진행자) 르네상스 축전이라면 중세 시대 마을을 재현하는 축전 말이군요. 왕과 왕비가 등장하고, 기사들의 마상 시합이 열리는 등 마치 중세 유럽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데요.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 주에서도 매년 이 맘 때 열리죠? 그런 걸 보면 미국 사람들은 중세 유럽 문화에 대한 일종의 향수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자) 그렇죠? 이 르네상스 축전은 미국에서 시작된 독특한 축전이라고 하는데요. 1960년대에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에서 처음 시작된 뒤 미국과 캐나다, 북미 지역 전역으로 퍼졌고요. 최근에는 유럽으로 역수입돼서 독일에서도 열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상업적인 목적이 대부분이지만 참가자들이 2주 동안 실제로 야영을 하며 전투를 벌이는 재연 행사도 있는데요. 오늘은 그 가운데서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 주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펜식 전쟁 (The Pennsic War)에 관해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진행자) 함께 들어볼까요?

매년 2주 동안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 주의 벌판은 중세 유럽의 전장으로 변모합니다.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기사들이 개인과 왕국의 명예를 걸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데요. 비록 쇠가 아니라 등나무로 만든 칼을 사용하고,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멀쩡하게 걸어나가긴 하지만 기사들이 전투에 임하는 태도나 승리에 대한 투지는 실제 전투에 못지 않습니다.

창조적 시대착오협회 (SAC)가 주관하는 펜식 전쟁은 1972년에 처음 시작됐는데요. 창조적 시대착오협회는 17세기 서부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일종의 동호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와 네바다, 알래스카 등을 포함하는 서쪽 왕국과 뉴욕과 펜실베니아, 캐나다를 포함하는 동쪽 왕국,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일리노이 등을 포함하는 중앙 왕국 등 여러 왕국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펜식 전쟁은 그 가운데서도 동쪽 왕국과 중앙 왕국 사이에 매년 열리는 열리는 모의 전쟁인데요. 펜식이란 행사가 열리는 주의 이름인 펜실베니아와 고대 카르타고를 의미하는 퓨닉 (punic)의 합성어입니다. 2주일 동안 열리는 펜식 전쟁의 참가자 수는 매 년 1만 명이 넘는데요. 한 번 참가한 사람들은 그 매력에 흠뻑 빠져서, 매 년 펜식을 찾는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멋진 경험이죠. 모험이기도 하고요. 두고 두고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줍니다.”

전투는 기사도에 따라 진행되는데요. 부상 정도나 사망 여부는 순전히 개인의 양심에 맡기게 됩니다. 심판이 있긴 하지만 참가자들의 안전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인데요. 올해 펜식 전쟁에서 심판을 맡은 패드레이그 씨는 참가자들의 안전이 제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안전을 위해 굉장히 신경 쓰고 있어요. 거의 40년 동안 펜식 전쟁이 벌어졌는데, 참가자가 실제로 사망한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중세 기사의 복장과 무기 등을 정식으로 모두 갖추려면 약 1만 달러 정도 비용이 드는데요. 하지만 무거운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나서는 건 남자들 만이 아닙니다. 카에실리아 데쿠리온 씨와 같은 여성들도 많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전투에 나가면 정말로 도전을 받게 되요. 투구를 쓰고 있으면 아무도 여자란 걸 모르거든요. 남녀 구별 없이 정정당당하게 겨루기 때문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펜식 전쟁터에 모인 1만2천여 명이 모두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폭력과는 상관없는 일들에 더 관심을 보이는데요. 시장에 가서 중세 시대 사람들이 사용했던 물건을 구경하기도 하고, 중세 식으로 요리한 음식을 맛보거나, 음유 시인들의 노래를 듣습니다.

“펜식은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의 의미를 배우게 합니다.”

펜식이 열리는 2주 동안 매일 신문이 발간되는데요. 기사들의 마상 시합에서 누가 승리하고 패했는지 등 경기 결과에서부터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까지 여러 가지 소식이 실려 있습니다.

“오늘 신문의 주제는 귀부인들의 즐거움에 관한 거에요. 사실 지금 울타리 안에서 싸우고 있는 기사들은 귀부인들의 지시를 받고 출전했거든요. 기사들은 귀부인들의 명예를 위해, 또 귀부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시합에 나가죠.”

올해 펜식 전쟁에서는 캐나다와 미국 동부 출신 전사들로 구성된 동쪽 왕국이 승리를 거뒀는데요. 상징적이긴 하지만 1년 동안 피츠버그 시를 점령할 권리를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패했다고 해서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내년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입니다.

(진행자)부지영 기자, 펜식 전쟁에 관한 얘기, 잘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문화의 향기’ 마지막 시간이죠?

(기자) 네, 다음 주부터 시행되는 프로그램 개편에 따라서, ‘문화의 향기’가 ‘문화가 산책’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이제까지는 미국 문화계 소식만 전해드렸는데요. 앞으로 ‘문화가 산책’에서는 세계 각국의 문화계 소식,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 또 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아프리카, 미주 대륙으로까지 불고 있는 한류 바람에 관해서도 전해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진행자) 네, 시간대도 매주 금요일 밤과 토요일 아침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청취자 여러분께 더욱 재미있고 풍성한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부지영 기자, 오늘 수고하셨고요. 다음 주에는 금요일에 뵙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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