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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9 월 17일


1988년9 월 17일 오늘,

한국 서울에서 제24회 하계 올림픽 개막을 알리는 팡파레가 울려 퍼집니다. 160개 나라, 1 만3천3백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은 유치부터 개막까지 순탄치 많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1979년 10월 8일 제 24회 올림픽 대회를 서울에 유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그로부터 18일 뒤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올림픽 유치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취임한 전두환 대통령은 올림픽 유치 의사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서울은 짧은 유치 운동에도 불구하고 후보 경쟁 도시인 나고야를 물리치면서 기적 같은 압승을 거두어냅니다.

서울 올림픽은 이념과 인종의 벽을 넘어서 16년 만에 오륜이 모두 참여함으로써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실현한 지구촌의 대축제였습니다.

1980년 9월 17일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가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좌파 게릴라 무장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아나스타시오 데바일레는 1925년 니카라과의 장기 독재 가문을 연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데바일레의 아버지 가르시아는 1937년 쿠데타를 일으켜 니카라과 정권을 장악한 이후 20년 동안 니카라과를 철권 통치했습니다.

이후1956년 가르시아가 피살되자, 그의 큰아들이었던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가 대통령직을 물려받아 7년에 걸쳐 니카라과를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1963년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가 대통령 재출마에 거부하자, 4년 후인 1967년 그의 동생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가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는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계와 재계, 군부를 한 손에 쥐고 폭압 정치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데바일레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항해 곳곳에서 저항 운동이 일어났고, 전 세계에서도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에 데바일레는 1979년 사임을 발표했고, 한해 뒤인 1980년 오늘, 파라과이로 망명하던 중 좌파 게릴라들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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