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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러시아 고등학교 교과서에


옛 소련 시절 정치범 수용소의 잔혹한 실상을 그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문학작품 '수용소 군도'가 러시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립니다. 옛 소련이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한 지 36년 만의 일입니다.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 한 때 불온서적으로 지목됐던 작품이 이제는 교과서에 실리게 됐다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답) 네, '수용소 군도'는 옛 소련 당국이 공산주의 사상을 파괴하는 불온서적이라며 출판을 금지했던 책입니다. 솔제니친이 미국 망명길에 오르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책이기도 한데요. 러시아 교육부는 지난 9일 발표한 성명에서 '수용소 군도'의 일부를 발췌해 고등학교 정규 교과서에 실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솔제니친의 작품들이 학생들의 추천 도서목록에 올라간 적은 있지만, 교과서에 실려서 모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읽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문) 그럼 먼저 '수용소 군도'가 어떤 책인지 살펴볼까요?

답) '수용소 군도'는 모두 3권으로 된 책인데요, 1973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됐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출판금지령이 내려졌지만 비밀리에 번역본이 만들어져서 해외에서 널리 읽혀졌습니다. 이 책은 옛 소련 수용소의 잔혹한 실상을 폭로하고 있는데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솔제니친이 직접 겪었던 수용소 생활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이 바탕이 됐습니다.

) 옛 소련 당국이 솔제니친을 수용소에 가뒀던 이유는 뭡니까?

답) 솔제니친은 1945년에 포병 대위로 근무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스탈린을 비판한 내용이 있다는 사실이 발각돼 체포됐습니다. 그 뒤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8년이나 수감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 8년 동안의 수감생활이 작품에 그대로 반영됐겠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작품에 담겨있습니까?

답) '수용소 군도'는 모두 7부로 이뤄져 있는데요, 옛 소련의 수용소 체제가 레닌 시대에 시작된 뒤 스탈린 시대에 더욱 확대됐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련 당국이 조직적으로 반체제인사들을 수용소에 가둔 뒤 수십만 명을 살해했다고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수용소 체제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소련 공산주의 사회의 병적인 정신 상태 역시 수용소 체제를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 당시 이 책 출간으로 전세계가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옛 소련의 잔혹한 인권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죠. 더군다나 이미 1970년에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그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와 `암병동'등의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이 폭로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전세계가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수용소 군도'의 러시아말 제목에 굴라그라는 말이 쓰였는데요, 원래 수용소관리본부의 약칭이었지만 강제수용소를 의미하는 말로 전세계에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 '수용소 군도'출간이 전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솔제니친은 이 책 때문에 옛 소련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지 않았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국가반역죄로 1974년에 추방돼서 94년까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20년 동안 객지생활을 하다 옛 소련의 붕괴 덕분에 고국으로 돌아왔는데요, 지난 해8월 89살을 일기로 숨졌습니다.

) 사실 러시아로서는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은 역사일 텐데, 러시아 정부가 '수용소 군도'를 이번에 교과서에 싣기로 한 이유는 뭡니까?

답)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그동안 옛 소련의 영광과 자부심을 회복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 몇 년 간 러시아 정부가 역사 교육의 내용을 간섭했는데요, 심지어 정부지침과 맞지 않는 역사 교과서, 예를 들면 스탈린을 비판적으로 기술한 교과서를 쓰지 못하게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가 '수용소 군도'를 교과서에 싣기로 한 데는 솔제니친의 부인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솔제니친 추모식에서 푸틴 총리에게 '수용소 군도'를 교과서에 실어달라고 직접 요구를 했고 푸틴 총리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 러시아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 어떤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까?

답) 러시아 교육부는20세기 러시아 역사의 생생한 문화, 역사적 유산이 솔제니친의 작품에 담겨 있다며 이번 결정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옛 소련의 자부심을 회복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바꾸려는 것 아니겠냐며 환영하고 있습니다. 일부 인권단체들은 경제 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을 느낀 젊은층이 공산주의를 선호하게 되자 정부가 급하게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옛 소련 시절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그린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러시아 교과서에 실리게 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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