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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까레이들의 삶과 꿈] 얼룩진 러시안 드림


멀리서도 북한 노동자들은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체구가 작았다. 중국이나 베트남 노동자들과 섞여 있을 때에도 한 눈에 구별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작고 깡마른 체구의 북한 노동자들은 밀려드는 중앙아시아 지역 출신의 노동자들과 경쟁을 해야 했고 다른 나라 출신 노동자들에게는 없는 회사에 매달 700~800 달러를 상납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취재팀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을 맡아서 공사를 하고 있다는 북한 노동자가 있다고 해서 어렵사리 그를 찾아갔다. 북한 노동자는 한국인과 직접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한다. 나중에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부분 러시아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위장을 한다고 했다.

식당 주인인 한국인은 그 북한 노동자를 한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한 선생은 취재팀이 봐 왔던 여느 북한 노동자와는 달리 얼굴도 훤했고, 옷차림도 아주 세련됐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러시아 바로브스크에서 5년 건설 일을 하고 고향인 평양에 돌아갔다가 다시 블라디보스톡에 나와서 또 5년째를 맞고 있는… 그러니까 러시아 생활이 10년이나 되는 고참 중의 고참이었다. 그는 바로 반장동지였던 거다.

- 근데 하바에 잇다가 왜 다시 또 나왔어요? 5년 있었으면 됐지…(1년 조국에 살면 또 여기 생각이 나고.. 그래서 또 나왔죠)
- 하바에서 들어갈 때 가져간 8천 달러는 뭐했어요? (다 그저 뭐 이렇게 생활하는 데 썼죠. 가서 옛날대로 살지는 못하니까…내 생활 수준에 도달하는 돈이.. 따로 못 쓴단 말입니다. 암만 벌래야 벌 수 없고… 여기는 내가 한 달만 잘 움직이면 내 조국에서 버는 돈의 몇 십 배를 버니까.. 여기 도착해서 소련 사람에 전화만 하면 와서 일하라..내가 하루 먹고 살 돈은 내 정도의 돈 단가라는 게 내 혼자의 돈 단가라는 게 있으니까.. 내가 그 아래로는 일을 안 하니까.. 나는 회사에서 주는 밥만 가지고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여기 나오면 세상 구경도 할 수 있고.. 우리 북한은 세상 구경 하기 힘드니까….)

그는 첫 번 러시아 생활 5년 동안 8천 달러를 모아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북한에서 버는 돈으로는 이 곳 러시아에서 누리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다시 러시아를 찾은 거다.
그는 러시아에 와서 세상 구경만 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배웠던 거다. 경력 10년차 반장인 그에게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보통 많이 돌 때와 작게 벌 때를 합하면 … 소련 돈으로 한 4만5천 루블은 벌지..난 한 달에 30일을 힘들게 가동할 때는 2천 달러 정도는 벌지..천 달러는 다 날아가야 되니까..바치고 뭐하고 하면 다 없어지니까…나머지 돈은 건사했다가…근데 한 선생님 밑에 있는 사람은 천 달러는 벌어요?
(그러죠.. 천 달러는 해 줘야죠.. 바치고 나면 바치는 돈 내 놓고 200달러 정도는 건사해줘야….한단 말입니다.
200달러면 일년이면 고저 2천 달러 정도 있으면.. 그 돈 집에 간다고..)
- 그럼 회사마다 내는 돈이 달라요? (다르죠)
- 그럼 지금 계신 능라는? 2만5천? (2만인데 내달에는 또 올라갑니다. 달달이 좀 달라요…_
- 그렇게 지금 러시아에 많이 나와 있는 사람이..그게 돈이 어마어마하잖아요…그것도 일년 모으면….그 돈 어디에 쓰는 거 같아요? (모르지…우리는 그거 간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 지 몰라.. 아이들에게 가는 혜택이 무상이 많아요..아이들이 우리는 탁아소부터 산원에서 여성들이 아이 낳는 거, 돈 안냅니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거, 버스 이제 내가 일했던 버스, 그것도 공짜나 다름없어요…공짜로 그 숱한 학생들을 국가는 공짜로 아마 그 돈이겠죠)

경력이 좀 있는 사람들은 사정이 좀 나았지만..요즘 같은 불경기에 처음 온 노동자들이나 수완이 좋지 않은 노동자들은 다달이 회사에 바치는 돈을 벌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취재팀이 만난 대부분의 북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상납하는 돈이 회사의 경영자금으로 사용될 거라며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회사나 기업소가 국가 소유인 북한에서 곧 그 돈은 국가로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러시아산 대게로 저녁 식사를 겸해 취재팀과 보드카를 한 잔 마신…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2살 되던 해 평양을 떠났는데 이제는 10대 청소년이 돼버린 아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 안 갈 거에요? 평양에… 5년 더 있다가 갈 거에요?
(5년 있다 가야죠)
- 5년 더 있다가? (고저 여권만 끝나면.. 가라고 그러면 가고
가지 말라면…)
- 마음은? (마음이야 가고 싶지.. 난 아새끼 보고 싶어서…)
- -근데 왜 5년 더 있으려고 해요? (가더라도 돈이 있어야..)

한 여름.. 블라디보스톡의 여름 하루는 길었다. 저녁 9시나 돼야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긴 하루가 고단할 법도 한데 북한에서 온 건설 노동자들은 이 여름 긴 해를 이용해, 바짝 일을 해야 춥고 어두운 겨울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톡이 오는 2012년 APEC 회의를 개최하려면 아직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 듯 보였다. 비가 내려 그렇지 않아도 울퉁불퉁한 시내 도로들 곳곳에 패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흙탕물을 튕겼다. 취재팀은 이 곳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북한 노동자들을 연구해 온 블라디보스톡 극동문제연구소 라리사 자브롭스카야 교수를 만나러 갔다. 자브롭스카야 교수에게 북한의 건설 노동자들이 최근에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 2000년 이후 러시아에 나온 북한 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즉 돈을 벌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하기는 하지만 북한 노동자들에게는 러시아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회적 혜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4,5인 가족의 1년간 평균 생활비가 400~500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북한 노동자들이 3년, 혹은 5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그 몇 배에 달하는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벌어 북한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북한 정권 입장에서 본다면 러시아에 나와 있는 북한 노동자들은 북한에 경제적 이득을 안겨줍니다. 무엇보다 북한에 부족한 외화를 공급해 주고요… 두 번째는 북한 집권층에 우호적 성향을 지닌 중산층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북한 정권에 이득이 됩니다.

그동안 취재를 하면서 러시아에 나와 있는 북한 건설 노동자들을 둘러싼 대, 내외적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라리사 자브롭스카야 교수에게 물었다.

- 앞으로 러시아에 진출한 북한의 건설 노동자들은 점점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우선 러시아 연해주내 이른바 3D 업종이라고 할 수 있는 힘들고 위험한 일자리는 7만개 정도가 되는데요..최근에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이나 베트남 출신들이 많이 진출해서 북한 노동자들이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점이고요..둘째는 러시아에서의 외국 노동자 도입이 점점 줄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러시아 내부의 실업률 증가와 외국인 노동자 도입에 따른 여러 부작용 때문인데요… 러시아는 기존 중앙아시아 국가의 노동자 유입에 최우선권을 두고 있고, 다음이 북한, 중국, 베트남 같은 국가들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북한 노동자들은 점점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고요..
마지막으로는 최근 러시아의 경제 상황을 들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러시아 역시 경제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업종이 대부분 건설업인데 이 업종은 경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어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죠.

라리사 자브롭스카야 교수가 지적한 여러 문제 들 중 상당수는 현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라리사 자브롭스카야 교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비가 와서 모두들 내부 공사만 하는지 건설 현장 밖에 나와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퇴근 길, 비 때문에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차창 밖으로 북한 노동자들의 숙소가 보였고, 마침 그 숙소 입구 초소 앞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무리의 북한 노동자들 모습이 보였다. 취재팀은 차에서 내려 인근의 간이 상점에서 맥주와 안주를 준비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 많이 온다..비가..아이구 여기 비 안오네 (통역).. 뭐하세요?
(어구…우리 경빕니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비 안 맞으세요? (네. 여기는 없어요)
- 나는 여기 현지인이요. 러시아 (통역) 러시아 말

러시아 현지 통역이 자신을 러시아 현지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면서 러시아 말로 맥주나 한 잔 같이 하자고 권하자.. 초소 앞에 모여 있던 북한 노동자들은 마음이 놓이는 듯.. 초소 안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자고 권하기까지 했다.

(들어가서 맥주 마십시오.)
- 네.. 들어들 오세요..(거 앉아서 맥주 하시죠)
- 같이 하세요…들어오세요..
- 그런데 경비를 이렇게 여러 명이 함께 서세요? (아니 한 명이 서는데, 한 명이 가고 지금 우리가 대신 서 주죠 뭐. 우리 반장 동지랑 같이 하시죠)
- 아.. 반장 동지세요? 그럼 원래 경비는 아니시잖아요..
( 어..근데 내가 잠깐 경비도 서 주면서 이렇게 합니다…)
- 아… 원래 반장 동지는 무슨 일 하세요? (고저 아주머니 집에 이거 뭐 할 게 있으면 내가 해 주기도 하고…)
- 그래서 안 그래도 우리 뭐 필요하면 전화하면… (웃음)
- 솜씨가 좋으세요? (어.. 솜씨, 마스터에요)
- 반장 동지니까 솜씨도 좋은 거에요? (그래서 반장 하지..)
- 러시아 오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6년 됐어요)
- 어..6년이나 되셨어요? 돈 좀 많이 모았겠어요..(웃음. 돈 그저 조금 모았어요)
- 에이 얼마..모았어요? (반장 사업 할려면 다른 사람한테 계속 써줘야 하니까니 많이 못 모아요…마지막에 다른 사람들이
이제.. )
- 반장 동지, 조국 들어갈 때? (고럼요..) 다 해줍니까? (네)
- 반장 동지, 고향이 어딥니까? (나, 원산이에요)
- 아… 원산이세요..(원산 알아요. 가봤어요?)
- 아뇨.. 못 가봤어요. 그럼 반장동지는 여기 오시기 전에 뭐하셨어요? (조국에서요? 네.. 조국에서 반장도 하댔고)
- 무슨 반장이요? (차 수리 반장 했어요. 여기 와서 솔직히 차 수리한다고 산소 용접, 전기 용접 하는데도 단가가 안 맞아요. 루스끼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 그런 거 안 시켜요)
- 그런데 여기 한 3년씩 4년씩 있으면 조국 돌아갈 때 얼마큼씩 돈 모아가지고 가세요? (그건 다 달라요. 서로 사람마다 달라요..)
- 그럼 한 몇 만 불 모아가나? (우리가 한 달에 일해서 버는 돈이 천 달러는 되요)
- 근데 거기서 회사에 내고.. (회사에 내는 건 또 어케 잘 알아요? ) 알죠.
- 천 달러 벌어서 회사에 요즘 많이 내야 된다면서요….
(얼마라고는 요거이 말을 못하갔는데, 좌우간 많이 내긴 내는데..)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일하는 거 어렵죠. 다 건설 그거는.. (네 )
- 그래서 오늘은 일 안 나갔어요? (아니요 나갔더랬어요.
지금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이죠. 지금 또
금융위기라....대간하죠)
- 반장동지는 조국에 있을 때도 차 수리도 하고 돈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 뭐하러 나왔어요? (외국도 한 번 볼 겸)
- 외국에 나와보니까 어떠세요? (조국보다 못하지요 뭐)
- 그런데 조국에 있으면 돈을 그만큼 못 벌잖아요..달러를..
(글쎄… 딸라 뭐 이런 계통 이런 지불 쪽은 그래도.. 사람
호상간에 한 집 안 식구들 같이 사니까 무슨 조금
외로와도 그렇고 서로 형제처럼 도와주고 이런 게
없으니까.. 마음이 한결 낫죠. 여기는 그런 게 없으니까..
자기 일한 것 만큼 돈 벌어서 고저 요렇게 또 바쳐야 되고, 집에도 또 보내야 하고..그니까 사람이 고저 마음 쓸 데가 많아요)
- 그럼 그 동안에 조국에 다녀오셨어요? 고향에 (한 번도 안갔댔어요.. )
- 진짜로요? (고저 여기서 돈 보내주면 되죠. 또 집에 뭐 걱정이 없으니까

반장 동지라는 사람은..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북한에서보다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6년째 러시아에 머물고 있지만… 그 역시 북한에 있는 가족 생각, 고향 생각이 간절한 듯 보였다. 맥주 두 어 잔이 돌자 농담도 곧잘 했다. 농담을 하다가도, 그들은 조국의 융성 번영을 위해 새로운 건설 공법을 배우러 왔다면서 자존심을 세웠다.

- 인물이 아주 좋으세요.. 반장 동지는…(여기 나오는 것도 다 인물도 보고..)
- 인물도 봐요? (조선을 대표해서 나가는 사람들인데, 아 뭐 그저 키도… 다 합격돼야..)
- 그럼 나올 때 뭐 어떤 거 검사해요? 신체검사? (건강 상태, 00상태, 가정 형편, 가계…)
- 근데 나오고자 하는 사람들 많다고 들었는데… (세상 구경 해 보고 싶으니까..)
- 왜 나왔어요? 세상 구경 해 보고 싶어서? 돈 벌러?
(조국 공법은 배웠는 거고 이제 세계적인 것도 봐야 합니다.
이제 우리 조국도 융성 번영할 시기가 돼 오고 그러는 거니까,
외국에 나가서 배우고 이제 조국에 돌아가서 건설도 많이 하고…뭐 우리도 번영 시기를 해 봐야죠 지금 집에 먹을 거 없고 돈이 없어서 나왔나 뭐..조국의 구국을 위해서 이렇게 배우러 나왔는데.. 여기 현실도 체험하고 또 조국에 가서 배운 거 만큼 써 먹고.. 우린 돈이 없어서 나온 건 아니에요..)
- 반장 동지가 생활총화도 세계 합니까? (뭘 세게 합니까.. 다들 힘들게 일하는데….)
- 가야 돼요.. 달러 많이 벌어서 가시라요..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비 오는 날 오후, 이렇게 취재팀은 뜻하지 않게 북한 노동자 숙소 건물 앞 초소에서 서너 명의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비 때문에 작업을 일찍 마치고 들어온 듯 했다. 돈이 없어서 러시아에 온 게 아니라고 애써 강조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블라디보스톡을 떠나는 날 아침.. 취재팀은 한 조선족의 안내로 북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불라디보스톡 변두리 어느 허름한 작업장을 찾았다. 비포장 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창고 건설 현장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는 북한 노동자 두 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북한 노동자들은, 어디서 일을 하든 혼자 하는 법이 없었다. 거기에도 어떤 의미가 분명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 안녕하세요? 뭐 하시는 거에요? (창고 만들어요)
- 그럼 지금 하시는 작업은 무슨 작업? (용접)
- 바쁘시네요… (가지가지 하지요)
- 몇 시에 나오셨어요? (여덟 시 반)
- 보통 그 시간에 나오세요? 몇 시까지 일하세요?
(열 시, 열 시까지)
조선족 : 이 분은 한 5년 있었고 나호츠카에 와 계시다가 작년에 다시 들어왔고 이 분은 1년 됐고…
- 다 평양이세요? (예)
- 그러면 나오츠카에서는 뭐 하셨어요? (건설)
- 거기도 건설 있어요? (예)
- 그럼 원래 용접 이런 거 전문이셨어요? (전문은 아니에요)
- 그럼 북한에 있을 때는 뭐하셨어요? (닥치는대로 하죠 뭐.건설했어요.)
- 똑 같은 거 하셨네요…(건설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야지 건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여기선 다 러시아 대방에선 구부러져 나가죠)
- 선생님 나오츠카에 5년이나 있다가 들어갔는데 왜 또 나오셨어요.. 그냥 계시지..(조국이 제 조국이지 뭐)
- 근데 왜 또 나오셨어요? (돈 조금 벌라고)
- 돈 좀 벌려고… 그럼 나오츠카에 5년 동안 있으면서 돈 얼마나 가지고 들어가셨어요? 조선에 들어갈 때?
(1년에 그저 5천 달러)
- 그거는 회사에 낼 돈 내고 내가 쓸 거 쓰고…(예, 제가 내 주머니에)
- 그럼 5년 있었으면 2만 달러 너머게 가져갔겠네요. 2만 달러 넘게 가지고 들어가면 조선에서는 큰 돈이잖아요…
(거 , 뭐 형제들 좀 주고)
- 형제들 주고 또 뭐하셨어요? (거 이럭저럭 다 쓰죠 뭐..)
- 그럼 조선에 가서는 몇 년 있다 다시 나온 거에요? (3년)
- 조선에서 3년 동안 번 돈 다 쓰고 다시 나온 거네요..(웃음)

취재 기간 동안, 취재팀은 러시아에서 일을 하고 북한에 돌아갔다가 다시 러시아에 나온 사람을 또 만난 거다. 40대 후반의 이 남성은 러시아에서5년 동안 일해서 번 돈을 평양에 돌아가 3년 만에 다 쓰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서 나왔다고 했다.

- 그러면 회사에서 주는 일만 하는 사람보다 자기가 개별적으로 알아서 일을 찾는 사람이 더 많겠어요… (그거는 말하자면 여기서 계속 3년이면 3년, 2년이면 2년 계속 있던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걸 쑤셔서 할 수 있지만 우리같이 갓 들어온 사람은 아예 모른단 말입니다. 그럼 회사에서 하는 것보다 못하단 말입니다. 여기 나가도 모르고 저기 나가도 모르고..그럼 못하지)
-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요? (그런 사람들은 다 원래 기술있는 사람하고 배합해서 이렇게..)
- 요즘에는 이렇게 회사 일보다 밖에서 하는 일이 많으시겠어요. 이게 훨씬 좋죠? (좋죠)
- 돈도 많이 벌고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마음적으로도 자유롭지 않나요? (어땔 땐 나와서 같이 성격 나쁜 루스키들하고 같이 있으면 머리 아프고 좋은 사람하고 같이 일하면….)
- 제가 얼핏 들었는데 들어갈 때 돈을 검사해서 3천 달러 넘으면 뺐는다고 하던데… (아니에요. 그런 일은 일체 없습니다. 루스끼 세관에서 자기 한계가 있고 우리는 갖고 들어올 수 있으면 다 갖고 들어오라고..)
- 그럼 마음대로 바꿔서 쓸 수 있나요? (예, 자기 맘대로)
- 북조선 평양에서도 달러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나요?(예, 교환 다 해 줍니다)
- 외화 바꾼 돈인가..그거요?
(외화 바꾼 돈은 없어지고….)
그러면 화폐 거래소에 가져가면 어디서 달러 그렇게 많이 생겼냐고 안 물어봐요? (절대 안 물어봅니다. 많이만 가져와라 그러죠. 그래야 국내에서 외화가 돌아가니까..)
- 그런데 선생님처럼 2만 불 넘게 가져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돈도 꽤 많겠어요.. (그 돈이 다 유통된단 말입니다)
- 어떻게 오게 됐어요? 돈많이 번다는 얘기 듣고 오신 거에요? 소문이 났나요? 러시아에 가면 달러 많이 벌어 온다고?
(글쎄 소문이 났죠. 그 때)
- 뭐라고? (1년에 만오천 달러 쥐고 온 사람도 있고 일 못해서 300달러 쥐고 들어온 사람도 잇고.. 차이가 많단 말입니다. 기술과 자기 능력에 관한 거니까.. 차이가 있단 말입니다. 자기 상태를 보고 나가서 얼마 정도 할 수 있겠다… 결심하고 들어왔죠)
- 그럼 얼마 벌려고 결심하고 왔어요? (1년에 만 달러)
- 그게 목표에요? (목표는 아니지)
- 그렇게 결심하고… (그렇지 그것보다 더 하면 좋고 덜하면 싫고..그렇지)
- 5년 있나요? (예, 5년)
- 5만 달러나 가지고 들어가서 뭐하려고요? (한국사람이나 여기 사람이나 제 주머니에 돈 많으면 좋지 뭐)
- 좋긴 한데… 나올 때… 나, 몇 만 달러 벌어서 뭐하겠다.. 이런 결심 세우고온 거 있잖아요…(집은 다 있고 뭐 먹고 사는데 그저 편안하게, 남이 승용차 타면 그것보다 좋은 거 타고 그런 식으로…)
- 개인들이 차 못가지잖아…. (가진 경우도 있지. 기름이 없다 보니까 회사 이름으로 차를 사서 내가 가지고 다니는 거지)
- 기름이 없어요? (봉쇄돼서)
- 지금 봉쇄 들어간 건 여기 와서 뉴스 보고 알았어요?
(예, 봉쇄 들어갔다는 건 우리가 모르고 러시아 사람들이 말해줘서 알았지, 자기네 라디오 듣고 7개국 순회회담인가 손 들어서 우리 봉쇄하겠다.. 이 소리 들었다고 하는… 우리는 봉쇄해도 살고 안해도 산단 말입니다. 그 옛날에 우리 수령님께서 그러지 않았습니까… 언제는 봉쇄 안 했냐고…우리 북조선 사람들 대단해요.. 살아가요)

러시아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은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북한이 유엔의 대북제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이곳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러시아 언론은 물론이고 마음만 먹으면 한국의 모든 텔레비전 방송을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북한 노동자들은 한국 방송을 시청한 적이 있다고 했다. 취재팀이 이곳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여기서 돈을 벌어 북한에 돌아가 남들보다 좀 더 윤택한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주머니 돈을 챙길 수 있는 러시아에서의 생활과 그 돈으로 누릴 수 있는 북한에서의 여유로운 생활…그들은 이렇게 자본주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 입이 다르고 저 사람 입이 다른데 늘상 똑 같은 음식을 먹을 수는 없잖아요. 나는 고기가 먹고 싶고 이 사람은 김치 먹고 싶은데… 그러니까 수준 차이가 다 있다..그러니까 그 간격에 대해서는 돈이 지배된다… 돈이 있어야 된다는 이 소리지….

이들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에서 자기 능력껏 일을 해서 돈을 버는..기본적인 시장 경제의 원리를 배우는 것뿐 아니라…그 돈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 부족한 것들을 채우고 싶어했다…너무나 당연한 거였다. 특히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녀의 장래를 위해 참고 견딘다고 했다.

잘 입히고 잘 먹이고 또 뭐 있을까… 좋은 공부 시키고 대학 가려면…무상이지만 돈이 좀 든다는데… 대학가기 위해서는 지적 능력을 높여야 하는데 높여주기가 간단치가 않습니다. 근데 거기 뭐가 있나… 우리는 순 잘하는 거로 한단 말야..잘하는 걸로 보내는데 거기서 한 두점 차이가 있단 말야..영점 몇 프로 차이 거기서 조금 관계가 있단 말이지..

그러면 그 차이로 안될 수도 있으니까..그걸 하기 위해서..지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뭐 시키나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노동자들 수준에서 컴퓨터 놓기가 힘들죠. 컴퓨터도 수리 같은 거는 안 되는 거니까..그 정도 놔야지만 동화상, 동화상 그런 걸로 해서 아이들 지적 능력을 그런 걸로 키워줘야 하는데 큰 돈이 갑작스레 없단 말야.. 나 같은 경우에는.. 조국에서 갑작스레 큰 돈이 있나..내가 여기 나왔다 들어가면 그래도 큰 돈을 가지고 들어 가잖아요..그럼 그걸 하나 뭉텅이로 산단 말입니다.

취재팀이 블라디보스톡에 머무는 동안 만난 북한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북한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사는.. 그런 지극히 인간적인 소망을 가진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뽀얀 먼지가 쉴 새 없이 날리고..철근 구조물들이 위험하게 오가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누인 북한 노동자들… 이들이 고달픈 생활을 견디는 건, 바로 고향에 돌아가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희망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 갈 조국, 북한에서 이들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블라디보스톡 바닷가 석양 아래, 이들의 고단한 어깨가 더욱 처져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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