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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증가하는 캐나다 북한 난민


올 들어 캐나다에서 난민 지위를 부여 받는 탈북자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주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토론토에서 생활하고 있는데요, 캐나다를 자유가 넘쳐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진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올해 29살인 김영수(가명)씨와 39살인 이선희(가명) 씨는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 지난 2007년 캐나다에 왔습니다. 김 씨는 올해 3월, 이선희 씨는 올해 1월 각각 캐나다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 받았습니다.

김영수 씨는 단신으로, 이선희 씨는 아들 둘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갔습니다. 김 씨는 중국인 할머니의 간병인 노릇을 하며 건 3년 간 중국에 머물렀습니다. 이 씨의 경우 중국에 체류한 지 1년이 채 안 됐을 때 캐나다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김영수 씨의 말입니다.

김영수: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한국에 못 간 것은 북한에 가족들이 있어 영향을 미칠까 봐. 캐나다 오게 된 것은 중국에 계신 목사님이 이 쪽으로 갈 수 있으면 가라 해서…”

이선희 씨도 `미국의 소리’ 방송에 교회 관계자들을 따라 무작정 캐나다로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선희: “(저는) 어떤 나라가 좋은지 몰라요. 먹고 살기 힘드니까 탈출은 했는데. 캐나다가 좋아서 이 길을 희망해서 온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다 보니 그 분들이 선택해준 길을 따라 일단 왔습니다.”

두 사람의 캐나다에 대한 첫 인상은 크게 달랐습니다. 김영수 씨의 말입니다.

김영수: “자유. 이젠 자유롭다, 뭐 이런 생각. 눈물까지는 아니구요, 희열이 넘친다고 할까요? 어쨌든 좋더라구요.”

이선희 씨는 그러나 공항에 내리자 마자 들리는 낯선 영어에 위축됐습니다.

이선희: “겁이 났죠. 누가 잡아가는 게 아닐까? 항상 그런 공포감을 많이 갖고 살기 때문에. 어딘지 모르고 왔으니까 잡아가는 데 없는가 하는 불안감을 많이 가졌고. 애들하고 석 달 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선희 씨는 캐나다 생활 2년이 다 돼 가는 지금도 약간의 경계심은 남아 있지만,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음이 크게 안정됐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수 씨와 이선희 씨는 현재 캐나다 영주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김영수 씨는 다양한 시간제 일을 하고 있고, 이선희 씨는 한국식당에서 일합니다. 둘 다 캐나다 정부로부터 약간의 정착지원금을 받아, 넉넉하지는 않아도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이선희 씨의 경우 한 달에 약 9백 캐나다 달러, 미국 돈으로 8백30달러의 지원금을 받습니다. 이선희 씨는 정부 보조금이 생활에 큰 보탬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수 씨는 캐나다에 와서 가정도 꾸렸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한국인과 2년 연애 끝에 지난 8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김영수 씨는 부인의 예쁜 외모 뿐아니라 따뜻한 마음씨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수: “(저를) 많이 이해해주는 것.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한국 분들은 대부분 쳐다보는 각도가 좀 이상해요. 같은 한국 사람 대할 때랑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많이 이해를 해 줍니다. 많이 생각도 해주구요.”

이선희 씨는 식당일로 많이 챙겨주지 못하는 데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며, 친구도 곧잘 사귀는 아들 둘을 대견해 했습니다.

이선희: “여기 와서 2년 넘게 공부하니까 여기를 너무 좋아하구요. 너무 열심히 학교도 다니고. 모든 일을 다 열심히 합니다. 캐나다 학교, 아이들과의 친분을 참 좋아합니다. 북한에서는 조금만 못하고 하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막 때리고 하는데, 여기는 그게 없습니다. 아이들이 잘 하거나 못하거나 선생님들이 욕하거나 매질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낯선 이국땅에서의 삶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캐나다 생활 2년이 다 되어도 영어는 여전히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김영수 & 이선희 in order) 김영수: “언어 문제죠. 언어의 장벽이 힘든 거죠. (북한에서는) 기본적인 abc 정도나 배워주죠./ 이선희: “답답하다면 여기는 다 영어를 쓰는 데. 애들은 영어를 하는데, 저는 영어가 아직 힘듭니다.”

그래도 현재의 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김영수 씨 입니다.

김영수: “다 기대 이상이죠. (중국서) 숨어 살다 이런데 왔으니까 자유롭게 정부에서 다 보조해주고 하니까 참 좋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없습니다.”

이선희 씨는 캐나다를 아예 천국이라고 묘사합니다.

이선희: “제가 이 좋은 나라에 와서 후회를 어떻게 하겠습니다. 북한하고 어떻게 상대가 안됩니다. 한 마디로 천국과 다름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두 사람은 캐나다에서 나름대로 꿈을 갖고 있습니다. 김영수 씨는 짧게는 정규직을 구해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게 목표라며, 후에는 전기공이 돼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서둘러 자녀도 낳고 싶다며 가족계획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선희 씨는 재물 욕심 보다는 자신이 받은 만큼 다른 사람, 특히 같은 북한주민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올 들어 캐나다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 받는 탈북자 수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1월부터 3월 사이 16명에 이어 3월부터 6월 사이에는 21명이 난민 지위를 부여 받았습니다. 2008년 한 해를 통틀어 모두 7명, 2007년에는 단 한 명 만이 난민 지위를 받은 것과는 크게 대비됩니다.

토론토에 있는 북한인권포럼의 이경복 회장은 캐나다 정부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탈북자들을 다른 국적의 난민 신청자들과 다르게 분류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경복: “북한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멕시코, 체코에서 와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니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난민이다라고 생각하게 됐는데, 민간 차원에서 (벌인)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서, 상황을 인식하게 된 것이죠. 북한에서 온 것이 틀림 없으면 따질 필요도 없다는 것이죠. 실제 인터뷰 한 내용을 들어보면 초등학교 다닐 적 부르던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거나 하면서 재미나게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경복 회장은 캐나다 정부가 탈북자 개개인의 재정착을 모두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탈북자들이 고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경복: “(캐나다 정부서) 언어교육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부에서 도와주는 일이 있긴 하지만 우선 문화와 언어가 다르니 적응하기 쉽겠어요? 한국에서 온 사람도 적응하기 힘든데, 북한에서 왔으면 더하죠. 얼마 동안은 고생해야죠. 북한이나 중국에서처럼 생명이 위험했던 데서 살던 사람들이 뭘 뭣하겠어요? 마음만 먹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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