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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동교동 사람들


“민족을 위해서 많이 노력하셨지요. “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한 분 밖에 안 계신 것 같아요. 최고 영웅인 것 같아요 세계적으로도“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번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와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도서관인 김대중도서관,, 김대중평화센터가 자리한 동교동 일대에는 상(喪) 중의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대통령 하셨지만 완전히 서민이었어. 서민! 이 동네 분들이 다 좋아했어요. 권위의식이나 그런 게 하나도 없고 굉장히 사람이 선천적으로 착하신 분이더라고. 동네 분들 보면 다들 좋아했지 나쁘다는 사람 하나 없었어.”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국가의 원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어찌 생각하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지체 높은 신분이지만 동교동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김 전 대통령은 그저 편안하고 다정한 오랜 이웃이었습니다.

“젊으셨을 때는 그야말로 젠틀맨 아니에요. 너무 멋쟁이였죠. 잘 생긴데다 덩치 좋고… 연세 드시고 나서는 인자하신 모습 그대로, 어떻게 보면 큰 아버지 같고, 그런 분이셨어요.”

그런 김 전대통령과 이웃하고 지낸다는 것이 이웃사람들의 자부심이 되기도 했고

“대통령님께서 해외 가실 때나 자리 비우실 때에는 동교동이 다 썰렁해요. 집에 딱 들어와 계시면 무게 있고 따뜻한 훈기가 나고 그런 곳이었거든요.”

“저는 평소에 대통령님을 진짜 세계적인 분이라서 마음속으로 많이 응원했죠. 모임에 가서는 동교동 산다고 하면 자랑스러웠죠. 모임 친구들 모임가면.. 어디가서도 어디사세요 그러면 동교동이에요 그럼 좋은데 사시네요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골목을 지나다 만나는 이웃들에게도 다정한 인사와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이웃어르신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제가 밖에 들어갔다가, 저는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대통령님은 밖에 들어오시더라고요. 그래서 한쪽으로 피해 이렇게 있었더니 아이고 수고 많으십니다 하시면서 악수를 청하시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눈물이 좀 났어요.

항상 저희 직원들을 만나면 항상 웃으시면서 춥지 않느냐 식사는 했느냐 물어보시고 관람객들이 많이 들어 오느냐도 여쭤보시고. 항상 따뜻하신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자신의 인생역정을 이겨내신 것처럼 훌훌털고 다시 동교동으로 돌아올 꺼라 기대도 했었습니다..

“그럼요. 병원에 계실 때 비서진들이 가끔 들어 다니면서 연락을 주고 그래서 소식을 자꾸 접했는데 조금 안 좋다, 좋아지셨다 하니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어요. 쾌차되셔서 나오셔서 또 활동 하시겠지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점심 먹고 잠깐 쉬고 있는데 서거하셨단 소릴 듣고 너무나 충격 받았죠.”

역경속 에서도, 많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살아오신 대통령 아니십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불편하시더라도 털털 털고 나오실 것이다 그런 느낌을 갖고,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시니 진짜 얼마나 슬픈 감정을 말할 수 없죠”

하지만 사저를 나선지 37일만에 들려온 김 전대통령의 부고(訃告). 김 전 대통령과 30년 넘는 인연을 맺고 있다는 인근 세탁소 주인 박병선씨는 미처 돌려보내지 못한 분홍색 침대보와 수선한 몇 가지의 옷에 마음에 쓰입니다.

“저것만 보면 지금도 참 마음이 찡해요. 두고 보고 있는데 마음이 찡하죠 봄부터 몇 개를 가지고 교대로 하세요. 두 개인가 세 개인가 되는데 다려 드리면 또 빨아가지고 보내고 그런데 이번 들어가시기 전에 갖다 놓은 건데 병원에 가시는 바람에 갖다 달란 말 안 하니까 다려서 오래 두면 안 좋으니까 가져오라 할 때 다려서 가져가거든요. 그런데 여태 못 가고 있는 거죠. “

김대중 전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과 민주주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집대성해 놓은 김대중 도서관에는 이제 조문을 위해 이웃들을 위해 분향소가 마련되었습니다.

“대통령님이 서거하셔서 우리나라에 있어서 많은 공로를 하셨는데.. 그분을 추모하려고.”

“그렇죠. 고생 많이 하셨죠. 납치된 시절에… 심문에… 고생 많이 하셨죠 민주화를 위해서.”

많은 역경 속에도, 나이가 많이 드셨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에 임하셔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든지 많은 남북문제를 추진하셨는데 그때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장면들이나.. 음 떠오르는데. “

”이 시대에서는 말로 최고라고 할 수 없고 뭐 어떻게 그런 분 없죠. 제일 저거한 어른이시죠.

그리고 이웃들은 조문을 마친 뒤 김 전대통령의 일대기를 전시한 사료를 둘러보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내가 좋은 말 만하고 뒷짐 짓고 있고 그러면 모든 사람이 나한테 칭찬해주고 내가 듣기 싫은 소리도 안 듣고 그게 좋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느냐. 그런데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지금 국면에서 민주화를 위해서 쓰러져간 분들, 또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또 그걸 갈구하는 많은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들을 누가 해주겠냐, 그래서 나라도 해야 한다. 숙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그 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와 세계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 죽음으로서도 평화가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편히 쉬셨으면 좋겠어요 “

“이승에서 살아계실 때 너무나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충격도 많이 받으셨는데 이왕 고인 되셨으니 하늘나라에서 적 없는 나라에서 편히 쉬셨으면 하는 생각이죠”

“.좋은데 가셔서 평안하게 계시다가 천당으로 가시면 좋겠어요.

나라를 위해서 많이 애쓰신 분 같아요.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앞장서시고 서민을 위해서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그게 다 만족할 수는 없죠. 개개인이. 그러니까 좋은 대로 잘 가셔서 편안하게 쉬십쇼 그런 말 하고 싶어요”

“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시길 간절히 비는 마음입니다. “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도성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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