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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원폭 희생자, 히로시마 원폭 투하 기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미군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 어제 (8월6일)로 꼭 64년이 됐습니다. 원폭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전쟁이 끝나고 한국도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났지만 당시 원폭으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사망했고, 생존자들은 지금까지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진희 기자가 원폭 투하 64주년을 맞아 어제 서울에서 열린 행사에 대해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64주년인 6일, 서울에서는 당시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7만 여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일본 식민정부에 의해 강제 징집돼 방위산업 관련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당시 10살의 초등학생이었던 변연옥 씨는, 74살이 된 지금도 8월 6일 아침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느날 학교를 갔는 데 학교 마당에서 하늘이 번쩍 하고 노랗게 사진 찍으로 많이 왔어요. 삐라를 만드느라고. 그래서 사진을 찍나 했는나, 매일 연습했어요. 번쩍 해서 놀라서 나무 밑에 왔는데 순간에 떨어졌어요. 굉장한 굉음을 내면서 천지가 뒤 흔들리는데 세상이 끝난 줄 알았어요. 무슨일인가 나가보니까..”

사흘 뒤인 1945년 8월 9일, 미군은 나가사키에 두 번 째 원자폭탄을 투여했습니다. 며칠 후 일본군이 항복하면서, 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당시 원폭 투하로 4만 명의 한국인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자들은 방사능 노출로 인해 오랫동안 건강 문제에 시달렸습니다. 변연옥 씨의 말입니다.

“변연옥 씨는 자신의 가족들이 원폭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 해 10월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에 도착한 직후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으며, 온 몸에 멍이 들었고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 내 원폭 생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은 수십 년 간 방사능 노출로 인한 암이나 불임 같은 질환과 관련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이며, 원폭 희생자 옹호 단체 대표인 김 영길 씨는, 1974년 일본 정부가 다른 국가에 살고 있는 원폭피해자에 대한 의료.재정 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한국인 피해자들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3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현재 이들에게 매달 4백 달러 가량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희생자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30년 간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데 대한 소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도쿄 템플대학에서 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는 제프 킹스턴 교수는 한국인들이 소송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킹스턴 씨는, 2007년 일본 대법원이 원폭 생존자들의 수당을 박탈하는 74개의 내각 명령을 불법으로 판정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번 소송에서도 한국인들이 승리할 좋은 법적 근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원폭 피해자 단체 대표인 김영길 씨는, 배상금이 너무 늦게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원폭 희생자의 평균 연령이 75세라며, 20년 정도면 이미 세상을 다 뜨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또한,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한 데 대한 책임감을 좀 더 보여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1951년 제정된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약은, 미국이 전쟁 희생자들에게 배상을 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영길 씨는, 한국인 희생자들에 대한 조그만 의사 표시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씨와 다른 원폭 생존자들은 내년에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인 핵무기 감축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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