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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7월 31일


1790년 7월31일,

신생 미 합중국이 최초로 특허 등록증을 발급합니다. 사업가 사무엘 홉킨스의 탄산칼륨의 제조과정에 관해서 연방 정부가 특허를 인정한 것입니다.

당시 각주는 저마다 자치권을 내세워 개별적으로 특허를 발급해,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일원화된 특허제도는 경제통합의 첫걸음인 셈이었습니다.

미국의 특허제도는 과학자들의 발명의욕을 북돋아주는 동시에 연방정부의 경제정책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사학자들은 미국이 라이트 형제와 에디슨 등 발명가들을 배출하고 기술 강국이 된 이유가운데 하나가 효율적인 특허제도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허제도가 확립된 것은 1623년 영국의회가 전매조례라는 법률을 제정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그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매우 비쌌습니다. 신생 미국이 선보인 특허제도의 특징은 저렴한 비용과 간편한 절차였습니다. 당시 홉킨스가 부담했던 특허등록비는 3달러. 같은시기 영국에서는 회사원의 연봉에 해당하는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나날이 커가는 미국 경제의 숨은 힘이 특허제도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영국은 1852년 특허제도를 고치고 서둘러 추격에 나서지만 미국의 우위를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1995년 7월 31일 오늘

북한의 원자로 동결을 댓가로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기 위해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첫 총회가 뉴욕 유엔주재 미 대표부에서 개막됩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을 비롯해서 30개여 회원국이 참여합니다.

참가국들은 이 총회에서 프랑스 등 8개 나라를 추가 회원국으로 확보하는데 성공합니다. 이어 1997년, 함경남도 신포 금호지구에 경수로 부지공사 착공 식에 이어, 2001년 경수로 건설공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2차 북핵 위기가 터지고, 2003년 케도는 경수로 사업의 한시적 중단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2006년 1월, 케도는 그때까지 북한에 잔류해있던 인원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5월 31일 대북 경수로 사업의 공식 중단을 선언합니다. 케도와 북한이 경수로 공급 협정을 체결한지 10여년만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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