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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한국 입국 전 약물 과다복용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상당수가 북한과 제3국에 머물며 약물을 과다복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북한이나 중국 등지에서 아편 성분이 함유된 진통제를 복용한 사례도 있어 입국 이후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가 진단을 통해 약물을 복용해 왔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원이 올해 입소한 탈북자 1백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8%가 한국에 오기 전 정확한 정보 없이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가운데 양약을 복용한 이들은 전체의 86%, 한약은 14%로, 주로 소화 장애나 불면증, 두통, 순환기 계통의 질환 때문에 약을 복용했다고 응답했습니다.

하나원 산하 하나의원에서 탈북자들을 진료하는 김철한 공중보건의는 "북한의 의료체계가 제 기능을 못해 장마당에서 약을 사먹어야 하는 관계로, 상당수 탈북자들이 의사의 처방을 받지 않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원 관계자는 "입소한 탈북자들 상당수가 약물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의사가 진료를 하기 전에 약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 의료진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탈북자들의 경우 항생제를 진통제로 알고 다량 복용하거나 스테로이드 약을 살찌는 약으로 잘못 알고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김철한 공중보건의입니다.

"부인과 계통의 질환을 가진 환자분의 경우 생식기에서 분비물이 나오는 질염을 앓고 계셨는데 약 4년 동안 소염진통제를 계속 드셨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런 경우 부인과에서 전문적인 진단을 받고 거기에 해당되는 약을 먹었을 경우에는 간단하게 치료를 할 수 있는데 치료가 안 되니까 몇 년에 걸쳐서 약을 복용하는 폐해가 나타났었습니다."

또 탈북자들이 입국 전 가장 많이 복용한 약은 마약성 진통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결과 마약성 진통제로 알려진 '정통편'을 5명에 1명꼴로 복용해 단일 약품으론 가장 많이 복용했습니다.

또 남성의 11%, 여성의 2.5%가 필로폰의 일종인 빙두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김 공중보건의는 "정통편은 중국에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약으로 조선족 약사에게 확인한 결과 아편 성분이 포함된 소염진통제"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 좋은벗들 이승용 국장은 "북한에선 기초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두통이나 장염 증세에 빙두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북한에서 빙두는 마약이라기보단 일종의 기초의약품으로 여긴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국장은 "북한 당국의 강력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아편 밀매를 통해 생활고를 해결하거나 의약품이 부족한 탓에 빙두를 복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철한 공중보건의는 "마약성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할 경우 소화장애를 일으키거나 심할 경우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약을 먹어도 약효가 떨어져 약물 남용의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일반적인 진통제를 남용한 경우에도 나중에 용량을 늘리거나 강한 진통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마약성 진통제의 경우 그 폐해가 훨씬 더 심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정통편과 같은 약재는 소화장애를 유발하므로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소화기 계통의 질환이 혹시 정통편 등 이런 약인성으로 유발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의심이 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탈북자들을 치료해 온 한국의 의료 전문가들은 이 약들이 아편 성분이 들어간 약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일반 마약류와는 다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의대 박상민 교수는 "탈북자들의 자가 진단이나 약물 남용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선 현재 하나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약품 사용법 교육 등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탈북자들을 배려한 의료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교수는 "특히 탈북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료진들을 구축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북한 출신의 의료진을 재교육해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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