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특별기획: 위기의 북한 정권]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북한 정권이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과 대규모 식량난 때와 비슷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오늘부터 불확실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취약한 후계 구도, 유엔의 제재로 극도로 제약된 대외관계, 갈수록 통제가 어려운 주민들, 계속되는 경제.식량난 등 북한 정권이 현재 직면한 상황을 다섯 차례로 나눠 점검하는 특집방송을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유미정 기자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에 대해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진 것은 지난 해 늦여름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 9.9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관측이 일파만파로 증폭됐습니다.

김 위원장은 과거 9.9절 행사에 10여 차례 참석한데다, 노동적위대 열병식을 참관하지 않은 것은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1991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러자 미국과 한국, 일본의 언론들은 일제히 익명의 정보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뇌졸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뇌졸중이나 뇌일혈로 보이는 순환기 계통 질환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한국 정부 고위 정보당국자가 이를 확인하면서 사실상 공식화 됐습니다.

당시 미국과 북한은 핵 검증 협상의 와중에 있었고,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핵 시설 불시사찰과 시료 채취 등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핵 문제와 연결돼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후 북한의 관영매체는 증폭되는 김 위원장의 와병설을 잠재우고 건재를 과시하려는 듯 연일 그의 왕성한 대외 활동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초기 보도에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가 이뤄진 시기와 장소 등에 대한 언급이 없어 그의 건강을 둘러싼 의구심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한국의 한 언론은 최근 김 위원장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마저 내보냈습니다.

김 위원장의 정확한 병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또 미국과 한국, 중국 정부는 이 문제가 아주 민감한 사안이라며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꺼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지난 8일 김일성 주석 15주기 추모대회 참석 등 최근 언론에 공개된 김 위원장의 모습에 병색이 완연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데이비드 강 남캘리포니아대학 (USC) 한국학연구소 소장의 말입니다.

강 소장은 사진으로 본 김 위원장의 얼굴은 창백하고 체중도 준 것 같다며, 그가 과거 보다 크게 쇠약해진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하룻밤 사이에 20년은 늙은 것처럼 보이며, 그의 건강에 뭔가 이상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 최고 지도자의 건강 문제는 대내외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특히 북한의 경우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건강에 대한 불확실성은 정권과 체제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일본 도시샤대학교 국제안보학과의 무라타 코지 교수는 그 이유로 김정일 위원장 한 개인에게 정책 비준 등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북한체제의 취약성을 지적합니다.

북한은 김정일 일가에 의해 통치, 운영되는 아주 사적인 국가 (private state)라고 무라타 교수는 말했습니다. 가령 중국은 같은 공산체제여도 당이 조직으로 운영돼 최고 지도자의 유고 시에도 체제에 변화가 없지만 북한의 경우는 당이 김 씨 일가에 의해 소유된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와병은 북한 체제 전반에 급격한 동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전문가들은 최고 지도자 한 명에게 철저히 집중된 권력과 권위에 의존하는 북한의 ‘수령체제’가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정권 유지에 도움이 돼 왔지만, 권력 교체기에는 오히려 큰 취약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캘리포니아대학 한국학연구소의 데이비드 강 소장입니다.

강 소장은 북한의 안정에 김 위원장은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그의 건강 이상이나 사망은 여러 파당이 권력투쟁을 벌이는 정치적 분쟁 상황을 초래해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는 북한에 급변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없지 않습니다. 워싱턴의 민간 연구소인 우드로 윌슨 센터의 방문 연구원인 신종대 박사의 말입니다.

“김정일 이후 체제라고 하더라도 일종의 북한의 혁명 전통에 따라서 김정일 체제를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고, 당장에 동구 사회주의와 같은 체제 붕괴를 예상하기도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김정일 이후 체제가 직면하거나 선택하게 되는 개혁개방의 향방이라든지 속도에 의해서 앞으로 북한 체제가 어떻게 진화할 것이냐 변화될 것이냐 전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는 김 위원장이 설사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급격한 체제 불안 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 의회 산하 의회조사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쉬 박사도 김 위원장의 사망이 북한 체제에 단기적인 큰 이변(convulsion)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이미 집단지도체제가 정책결정 과정의 중심에 들어서 있고, 김 위원장이 정책의 최종 승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닉쉬 박사는 김 위원장의 유고에도 불구하고 집단지도체제에는 큰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보면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파당 간 권력투쟁으로 불안정이 야기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계기로 북한의 후계 구도 문제가 본격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아직까지 후계 구도와 관련해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후계 체제 문제가 북한 정권의 안정과 위기에 또 다른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