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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사망한 베트남 전쟁의 설계자,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


미국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소식과 화제를 전해드리는 미국은 지금 시간입니다. 오늘도 김정우 기자, 함께 하겠습니다.

(문) 지난 7월 6일, 베트남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 사망했죠?

(답) 그렇습니다. ‘architect of Vietnam war’, 즉 베트남 전쟁의 설계자로 불리던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이 향년 93살로 사망했습니다.

(문) 미국 현대사에서 이 국방장관 자리를 거쳐간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 로버트 맥나마라 장관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답) 네, 맥나마라 전 장관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서 국방장관에 발탁됐는데요, 이후 린든 존슨 대통령 시기인 1968년까지 국방장관직에 머물러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국방장관직에 머문 사람입니다.

(문) 맥나마라 장관이 재직하던 시기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던 기간이죠?

(답) 그렇습니다. 먼저 1961년 4월, 쿠바 출신 난민들이 미 중앙정보국, CIA의 지원을 받아 쿠바 피그만을 침공했다가 실패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피그만 침공이 일어난지 18개월 후에,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합니다.

(문) 이 쿠바 미사일 위기는 당시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다 미국과 충돌했던 사건이죠?

(답) 그렇습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이 쿠바의 미사일 기지 철수 문제를 두고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서,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는데요, 바로 당시 국방장관이 이 맥나마라 씨였죠.

(문) 그렇지만 역시 이 맥나마라 전 장관은 1965년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으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죠?

(답) 그렇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1965년부터 전쟁이 최고조에 이른 1968년까지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베트남 전쟁을 실질적으로 진두 지휘했기 때문입니다.

(문) 약 10년 남짓 계속된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전쟁입니다. 전쟁에 대한 정당성 문제를 두고 미국 국민들이 패가 갈려 크게 다퉈서, 후유증이 컸던 전쟁이었고요, 인명 손실도 커서 미군이 5만 8천명이나 목숨을 잃은 전쟁입니다. 그런데요, 이 맥나마라 전 장관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맥나마라 전 장관이 재직 기간 중에 베트남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죠?

(답) 그렇습니다. 그런데 맥나마라 전 장관은 베트남 전쟁을 시작할 때는 승리를 확신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전쟁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 맥나마라 장관은 원래 계량관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맥나마라 전 장관은 2차대전 중에 육군 항공대에 근무했는데, 여기서 이런 일을 했습니다. 가령 일본 도쿄를 폭격하는데, 폭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한번에 폭격기를 몇 대를 보내야 하고, 또 몇 톤의 폭탄을 쏟아 부어야 하는가, 뭐 이런 분석입니다. 이렇게 계량관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맥나마라 씨는 전후에 자동차 회사인 포드 사에 들어가 이 기법으로 포드 사에 큰 이익을 안겨다 주고요 나중엔 포드 사 사장직에 오르게 되죠.

(문) 어떤 사람들은 이 맥나마라 전 장관을 걸어다니는 전자계산기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비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말이겠죠? 바로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곰곰히 따져보니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서, 전쟁을 시작했다는 그런 얘기군요?

(답) 물론 승전 가능성 외에도 미국의 전략적인 이해도 고려가 됐겠습니다만, 어찌됐든, 1968년 경이면 종료될 것이란 예상됐던 베트남 전쟁은 예상과는 달리 1975년까지 계속됩니다. 맥나마라 장관은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신에 대한 논란에 대해 일체 말을 하지 않았는데요, 전쟁이 종료된 지 21년 후인 1996년에 드디어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그동안 담아놨던 말을 풀어냅니다.

(문) 지난 1995년에 방송에 나와 한 말을 들어 보니까, 맥나마라 장관은 전쟁이 한창이던 67년경에 두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답) 맥나마라 전 장관, 당시 자신은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졌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길 수 없는 상태였다면, 왜 미군을 철수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문) 이길 수는 없었지만, 만일 미군이 베트남을 포기하고 공산화가 되면, 주변 지역도 모두 공산화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얘기군요?

(답)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길 가능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끝낼 수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문) 당시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어떻게 들으면 변명으로도 들리는데, 여하튼 맥나마라 전 장관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끗하게 인정했죠?

(답) 그렇습니다. 맥나마라 전 장관은 자서전과 2003년 제작된 다큐멘타리 영화, ‘fog of war’ 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맥나마라 전 장관은 미국이 과거에 베트남에서 저지른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서전을 펴내고 영화에 출연했다고 밝혔습니다.

(문) 맥나마라 전 장관 책과 영화를 통해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얻은 11가지 교훈을 제시했죠? 군사력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국제 사회의 협력도 필요하다. 또 적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적이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를 과소 평가했다 등이죠?

(답) 그렇습니다. 이런 교훈을 제시한 맥나마라 장관은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은 전쟁이라고 해서 이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맥나마라 전 장관은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세계 은행 총재로 있으면서,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 체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고 맥나마라 장관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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