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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후 15년, ‘이밥에 고깃국’ 약속 여전히 요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오늘 (8일)로 15주년이 됩니다. 김 주석은 1994년 7월8일 새벽 2시 갑자기 사망해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살게 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후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북한은 이밥에 고깃국은 커녕, 외부세계의 지원 없이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연철 기자가 자세한 소식 전해드립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3년 뒤인 1956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전후 복구와 경제 살리기를 위해 ‘천리마운동’을 제안했습니다. 자본과 물자,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집단적 증산운동에 나선 것입니다.

이 때 북한식 사회주의의 미래를 표현하는 말로 등장한 것이 ‘이밥에 고깃국’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북한경제가 1960년대 말까지 유례 없는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실제로 지켜질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북한경제는 1970년대 들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어려움이 가중됐습니다. 이어 1989년부터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몰락하고, 1991년에는 소련의 공산정권마저 무너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이밥에 고깃국’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워싱턴 소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마커스 놀란드 연구원은 김 주석 집권 말기를 경제 사정 악화와 사회주의 경제체제 붕괴 시기로 규정하고, 김 주석 사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말했습니다.

놀란드 연구원은 북한경제 악화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가 1995년께부터 시작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고 지적합니다.

당시 북한 전역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주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 밖에 없게 됐고, 다수는 탈북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던 북한의 식량 사정은 2000년 대 들어 조금씩 회생의 기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외부세계의 지원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탈북자 출신으로 워싱턴에 있는 미국북한인권위원회 방문연구원인 김광진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말했습니다.

[김광진]
“식량 환경이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외부적인 요인이예요. 국제사회의 지원, 특히 대한민국에서 북한에 쌀을 갖다 주지 않았어요? 그런 외부적인 요인으로 경제 상황이, 식량 상황이 좋아진 거죠.”

결국, 김 주석이 사망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이밥에 고깃국은 고사하고 여전히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최근 한국 정부는 북한이 올해도 84만t의 식량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세계식량계획 WFP도 북한의 식량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거듭 호소했습니다.

북한 정부도 외부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식량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해 5월 함경북도 길주 농장을 현지 지도하는 자리에서, “현 시기 인민들의 식량 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또 다시 이밥에 고깃국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신년사를 통해 김 주석 탄생 1백 주년인 2012년을 강성대국 실현의 해로 선언한 데 이어, 올해 초에 열린 간부 강연회와 기관장 회의에서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은 이밥에 고깃국 먹는 세상’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북한의 이 같은 약속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광진]
“지금 혼자서 자립갱생을 자꾸 떠들고 있지만, (북한경제는) 혼자서 회생하기 어려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김 연구원은 북한경제가 회생하고 주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개혁개방 노력과 외부의 지원, 자본의 유입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현재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란드 연구원은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목표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핵무기 같은 군사 분야에 제한된 자원을 지나치게 많이 배분할 경우, 건강하고 번영하는 경제 건설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드로 윌슨 센터의 퍼슨 연구원은 북한 정부가 앞으로도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개혁개방 조치만 취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워싱턴 소재 우드로 윌슨 센터의 북한 역사 전문가인 제임스 퍼슨 연구원은 북한이 경제를 유지하는 수준, 외부세계의 지원을 받고 외부세계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개혁 개방에 나설 뿐 전면적인 개혁이나 개방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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