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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화제의 도서 ‘흐루시초프 길길이 화내다’


(진행자) 이번에는 미국 내 문화계 소식을 전해 드리는 ‘문화의 향기’ 시간입니다. 부지영 기자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또 어떤 얘기를 갖고 오셨나요?

(기자) 요즘 북한의 핵 실험,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시끄러운데요.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서로 만나서 얘기합시다. 미국에 한번 오시오”라고 초청한다면 어떨까요?

(진행자) 글쎄요. 아주 획기적인 발상이네요.

(기자)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이를 덥석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미국에 오는 김에 한 열흘동안 미국 곳곳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진행자) 저희 기자들이 무척 바빠질 것 같은데요? 하지만 요즘 분위기로 볼 때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모르겠네요?

(기자) 그렇죠? 하지만 이미 50년 전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1959년 당시 소련의 흐루시초프 총리 겸 공산당 총서기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건데요. 당시 흐루시초프 총서기는 장장2주일 동안 미국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숱한 화제를 뿌렸습니다. 이 별난 여행의 뒷얘기를 담은 책이 최근 발간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피터 칼슨 (Peter Carlson) 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쓴 ‘K Blows Top’입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흐루시초프 길길이 화내다’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오늘은 이 책 내용을 살펴볼까 합니다.

(진행자) 상당한 고심 끝에 미국까지 왔을텐데 왜 길길이 화냈을까 궁금한데요. 들어볼까요?

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 9월, 당대를 주름잡던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프랭크 시나트라, 메릴린 몬로…… 늘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다니는 유명배우들이지만 이날만큼은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요. 온 방안의 시선이 앞에서 연설하는 한 남자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방금 디즈니랜드에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왜 안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내 신변안전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휘두르는 이 사람, 바로 소련 공산당 총서기 니키타 흐루시초프였습니다.

“신변안전 때문이라니, 디즈니랜드에 전염병이라도 돌고 있습니까? 폭력배들이 점거라도 하고 있습니까? …..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다고요. 그런데 안전 때문에 못 간다니,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자살이라도 해야 합니까?”

//칼슨 씨//
“당시 흐루시초프는20세기 폭스 영화사에 초청 받아 할리우드 배우들과 오찬중이었죠. 거기서 연설하다가 폭발한 겁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얘기하더니 나중에는 불같이 화를 낸 거에요. 65살이나 된 사람이 놀이공원에 못 가게 됐다고 그렇게 화를 내다니,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죠. 우스꽝스러우면서 동시에 두려운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오찬에 모인 사람들은 미국과 소련 간에 전쟁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인 피터 칼슨 씨는 최근에 발간한 책 ‘K Blows Top (흐루시초프 길길이 화내다)’에서 50년 전 흐루시초프 총서기의 미국 방문에 얽힌 여러 가지 숨겨진 얘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칼슨 씨//
“당시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이었는데, 흐루시초프가 서베를린을 위협하고 있었어요. 사태 해결을 위해 제네바에서 외무장관 회의가 열렸는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죠. 그래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흐루시초프를 미국으로 초청했는데요. 여행을 좋아하는 흐루시초프가 이를 덥석 받아들인 거죠”

사실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흐루시초프 소련 총리 겸 공산당 총서기를 아무런 조건 없이 초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네바 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경우’란 조건이 달려 있었는데요. 초청장을 전달한 미 정부 관리가 실수로 이 대목을 빠뜨린 것입니다.

//칼슨 씨//
“흐루시초프가 아주 기뻐했죠. 전부터 미국에 오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비치고 있었거든요. 아이젠하워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었죠. 제네바 회담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조건을 빠뜨리고 초청장을 전달한 관리를 불러 호되게 야단쳤지만 엎질러진 물이었죠. 이미 초청해놓고 번복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흐루시초프 소련 총서기의 별난 미국 관광이 시작됐는데요.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흐루시초프 총서기는 뉴욕과 로스 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피츠버그 등을 거쳐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것으로 2주 간의 미국 방문을 마무리했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흐루시초프의 방문을 대부분 찬성했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거셌습니다.

//칼슨 씨//
“여론조사 결과로는 미국인들의 3분의 2가 찬성하고 3분의 1이 반대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흐루시초프의 방문에 관심을 보였는데요. 여러 시 정부나 기업, 학교, 개인 등이 흐루시초프를 초대하고 싶다고 나섰죠. 흐루시초프가 와서 보면 미국인들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깨닫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디즈니랜드 방문 계획이 취소된 것도 어떤 사람이 흐루시초프 일행의 자동차 행렬에 토마토를 던졌기 때문이었습니다.”

2주일 동안 미국 곳곳을 누빈 흐루시초프……. 뉴욕의 고층 건물이나 출퇴근 시간에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 할리우드의 아름다운 여배우들도 대단하지 않다는 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는데요.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미국의 풍요로움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칼슨 씨는 말했습니다.

//칼슨 씨//
“미국에 관해서는 평생 공산당 선전물만 읽으면서 자랐을 테고, 그걸 믿었을 텐데요. 하지만 미국에 와서 수많은 자동차랑 미국 중산층이 사는 모습을 보고, 미국인들이 생각보다 훨씬 잘 산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사실 흐루시초프는 미국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을테고 미국에 대해서도 좀 더 호감을 갖고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칼슨 씨는 흐루시초프의 미국 방문이 냉전을 종식시키진 못했지만 긍정적인 일이었다고 평가했는데요. 미국 방문 후 흐루시초프가 소련 군 병력과 예산을 일부 삭감했다는 것입니다. 칼슨 씨는 50년 전 상황과 현재 북한을 둘러싼 상황에 유사한 점이 많다며,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칼슨 씨//
“흐루시초프의 미국 방문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적대자나 경쟁 상대를 초청해도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대화하는 게 뭐가 잘못입니까? 물론 적대국 지도자가 미국에 한번 왔다고 해서 금방 친구로 돌변하진 않겠죠. 하지만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칼슨 씨는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농구와 영화를 좋아한다고 알려진 사실을 지적하며, 김 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해 미국 프로 농구 경기를 관람하게 하고, 할리우드 영화사도 방문하게 하자고 제안했는데요. 만약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놀이공원인 디즈니랜드를 구경하고 싶어하면 기꺼이 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흐루시초프처럼 디즈니랜드에 못 가 길길이 화를 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거죠.

(진행자) 부지영 기자, 재미있게 들었는데요. 지난 2001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 씨가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검거된 일이 언뜻 떠오르는군요. 당시 김정남 씨는 도쿄 디즈니랜드에 구경가려고 했다고 말해서 화제가 됐었는데요. 항상 디즈니랜드 때문에 일이 엮이는 것 같네요.

(기자) 네, 그런 일이 있었죠? 본래 김정남 씨의 일본 입국 목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지만 디즈니랜드는 워낙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어서 관심을 모았죠.

(진행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하자, 성사 여부를 떠나서 어쨌든 흥미로운 제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수고하셨고요. 다음 시간에도 재미있는 소식 부탁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진행자) 이번에는 새 영화 소개 순서입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우디 알렌 감독의 새 영화가 나왔습니다. 뉴욕 출신인 우디 알렌 감독은 뉴욕을 무대로 한 희극 영화를 주로 발표해 왔는데요. 새 영화 역시 배경이 뉴욕입니다. 영화 제목이 ‘왓에버 웍스 (Whatever Works)’, ‘무엇이든 되는대로’란 뜻인데요. 어떤 영화인지, 김현진 기자, 소개 부탁합니다.

은퇴한 물리학 교수인 보리스 옐니코프……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인데요. 자살하려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요. 하루 종일 뉴욕 공원에 앉아 장기를 두며, 남에게 자기 자랑을 하거나 다른 사람 험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 처녀 멜로디를 만나면서 보리스의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미국 남부 시골 출신인 멜로디는 돈과 명성을 꿈꾸며 뉴욕에 왔지만, 성공은커녕 집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신세입니다. 겉으로는 퉁명스럽지만 원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보리스…… 멜로디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합니다.

양자역학이 전공인 물리학자와 21살 시골 처녀 멜로디……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통할 리 없는데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40년이 넘는 나이 차이를 초월해 서로에게 애정을 느낍니다.

멜로디 역은 에반 레이첼 우드 씨가 맡았는데요. 바보스런 역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 짜증스럽게 보이거나 반대로 너무 사랑스럽게 보일까 봐 걱정했다는 건데요. 적정한 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은퇴한 물리학자 보리스 옐니코프 역은 희극 배우 래리 데이비드 씨가 맡았는데요. 상대역인 우드 씨는 자기 자신보다 훨씬 아둔한 사람을 연기해야 했지만, 자신은 훨씬 더 똑똑한 사람을 연기해야 했다며, 서로 힘든 역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주인공 보리스의 대사 중에는 우디 알렌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가 많은데요. 하지만 데이비드 씨는 알렌 감독을 연기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디 알렌 감독은 자신이 맡을 만한 역이 아니었다고 말했는데요. 보리스 역은 수십 년 전 제로 모스텔이란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쓴 역이라며, 1977년에 모스텔 씨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번에 영화를 만들게 됐다는 것입니다.

알렌 씨는 나이가 젊었어도 보리스 역을 하진 못했을 거라고 말했는데요. 래리 데이비드 씨는 아무리 냉소적이고 신랄한 대사를 해도 그다지 밉다는 생각이 안 들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잘난 척을 해도 결코 싫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래리 데이비드 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알렌 씨는 설명했습니다.

영화에서 데이비드 씨는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기도 하는데요. 이는 우디 알렌 영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알렌 감독은 스스로 연출가라기 보다는 극작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요. 자신의 작품이 처음 생각과는 다른 영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감독을 할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알렌 감독은 또 자신이 관객을 앞에 두고 혼자 말로 떠들며 웃기는 스탠드 업 코메디 전문 배우 출신이란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 같은 배경 때문에 자신의 영화에는 해설자가 관객에게 설명하거나, 등장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얘기하는 장면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화 ‘왓에버 웍스’는 우디 알렌 감독이 연출한 마흔 번째 영화인데요. 우디 알렌 감독은 40년 전 ‘돈을 갖고 튀어라’란 제목의 영화로 처음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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