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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기념일 특집 I] 미국 독립의 태동지, 보스턴을 찾아서


7월 4일은 미국 최대의 축제일인 독립기념일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는 독립 기념일을 맞아, 세계 역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광대한 미국이 어떤 경로를 거쳐 탄생하게 됐는지 그 역사와, 오늘의 미국을 만들어 온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는, 특별 기획 방송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부터 7월 4일까지, 3부작으로 방송 되는 '미국 독립기념일 특별 기획- 미국 독립의 발자취, 그 어제와 오늘'. 세계 최고의 거대 국가로 성장한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그 현장들을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 기자들이 직접 찾아가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오늘 보내드릴 제 1부, '독립운동의 태동지, 보스톤을 찾아서'에서는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던, 그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엠씨: 미국의 초기 역사,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 동부지역에 자리 잡은 초기 13개 주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처음 미국에 온 정착민들도 영국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었고, 오랜 세월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는데, 이들 13개 식민지들이 18세기 중반, 왜 보스턴을 시작으로 독립혁명의 의지를 불태우게 됐는지, 먼저, 그 배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620년. 102명의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 북동부 땅, 지금의 메사츄세츠 주 플리머스에 첫 발을 내디뎠다.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목숨을 건 항해 끝에 대서양을 건너 온 이들은, 미국의 첫 선조들로 불리는 종교적인 순례자- 필그림 파더스-, 종교의 자유를 갈망하던 영국 청교도 들이었다.

머나먼 고향은 기억 속에 묻어 둔 채, 험난한 북아메리카 땅- 낯선 신대륙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정착민들은 펄떡 펄떡 뛰어 오르는 생생한 날 것들- 야생의 자연과 대면하며 하루 하루 버텨나갔다. 북동부 끝자락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 내야 했고, 거친 땅을 다루지 못해 배고픔에 떨었고, 그래도 절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때로는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들과, 죽고 죽이는,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며 땅을 차지 했다.

이들은 이렇게-, 척박한 땅을 개척하고, 물길을 트고, 씨를 뿌리며, 삶의 터전을 일궈나갔고, 북동부 보스톤을 중심으로 한 뉴 잉글랜드에서 더 아래로 아래로,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 더 넓은 곳으로 정착지를 넓혀 갔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더 많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찾아왔다. 종교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유럽인들은 신대륙 행 배에 몸을 실었고, 그렇게, 영국의 13개 식민지가 건설됐다.

영국은 강했다. 대영제국이란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영국의 깃발을 꽂아가며 전쟁을 벌였고, 북아메리카 지역 넓은 땅 역시 영국이 차지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뚝 떨어져 있는 광활한 신대륙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다. 영국은 여러 차례 치른 전쟁으로 이미 큰 빚을 지고 있었고, 자금 줄을 트기 위해, 식민지를 압박했다.

식민지인들은 반발했다. 이 시기 식민지인들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쳤던 100여 년 전 초기 정착민들과는 달랐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과 영국 의회제도, 세금을 내는 국민의 권리가 뭔지 이미 알고 있는 후세대들이었다.

하지만 영국에게 있어, 식민지는 언제나 모국인 영국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영국이 필요하면 언제든, 어떤 이름으로든 각종 특별 세금을 부과했고, 영국 군인들이 식민지인들의 집을 마음대로 이용하게 했다. 영국의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정책들은 독립에 대한 희망의 싹을 서서히 돋아나게 했다.

식민지인들은 온몸으로 저항했다. 상인들이 앞장서서 영국 상품 수입을 금지했다. 저항의 중심은, 초기 정착민들이 첫 발을 내디뎠던 메사츄세츠 주였다. 영국은 4천명의 병력을 메사츄세츠 주의 최대 도시인 보스톤에 파견해 위협을 가했지만, 보스톤 사람들의 영국에 대한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질 뿐이었다. 분쟁이 잇따르던 1770년 3월. 긴장 상태는 극에 달했고, 결국 폭력적인 충돌로 이어졌다. 식민지인들이 영국 군인에게 돌과 얼음을 던졌다. 위기 의식을 느낀 영국 군인들은 총을 발사했고, 식민지인 5명이 숨졌다. 이 사건이 '보스톤 학살 사건'이다. 총을 쏜 영국 군인들은 대부분 무죄로 풀려났고, 식민지인들은 더욱 흥분했다.

1773년, 식민지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였던 보스톤은 영국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고조돼 있었고, 누군가 불씨 하나만 당겨도 크게 터져버릴 것 같은, 성난 화약고와도 같았다.

엠씨: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온 미국의 선조들이 첫 발을 내디뎠던 메사츄세츠 주가, 미국 독립 운동의 태동지가 된 직접적인 사건은 Boston Tea Party, 즉 보스턴 차 사건 부터 입니다. 영국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Boston Tea Party가 일어났고, 독립 전쟁의 첫 번 째 전투였던 렉싱턴 전투와 콩코드 전투가 벌어졌는데요, 김현숙 기자가 미국 독립운동의 불씨를 당긴, 보스톤 현지로 떠났습니다. 김현숙 기자 어디 있나요?

저는 지금 미국 독립의 태동지 보스턴에 와 있습니다.두근, 두근, 미국 독립을 위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요, 이곳 보스톤에서는 미국 독립의 역사적인 현장들이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고 합니다. 특히 제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은 The Freedom Trail 이라고 하는 자유의 길 인데요, 2.4 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무려 16개의 역사적인 장소를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자 제가 지금 찾아갈 곳은 보스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미국전체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공공건물인 Old Sate House 입니다. 옛 주 의사당 인데요, 미국 독립의 첫 움직임을 확인하러 저와 함께 가 보시죠.

네, 한참 걷다 보니까 저기 빨간 벽돌 건물이 보이는데요, 고층건물,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도시 한 가운데 기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 저 곳, 네 맞습니다! 올드 스테이트 하우스에 도착을 했습니다. 건물앞 표지판에는 이렇게 설명이 돼 있네요. 보스턴 주민들에게 처음으로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던 곳, 수많은 미국의 독립 지사들이 영국에 대한 자유와 독립을 소리높여 외쳤던 곳, 그리고 미국 독립 전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건, 보스턴 대 학살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이 옛 주 의사당이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도심 한 가운데서 200년 넘는 미국 독립의 역사를 담고 있는 옛주의사당 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미국 독립 운동가 존 아담스 같은 분이 저를 맞아줄 것 같은데요 문을 열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박물관으로 들어왔습니다. 들어와보니까 역사의 흔적들,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전시물들도 전시가 돼 있구요, 아 그리고 여기 보니까 보스턴 차 사건때 바닷물에 던져졌던 차 잎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병 속에 조금 들어있는데, 200년이 지난 차 잎이 아직도 이렇게 보존돼 있으니까 마치 그 당시 현장에 와있는 기분이네요. 오늘 이 곳에서 아주 특별한 분을 만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1700년대의 독립 운동가는 아니지만, 미국 독립에 관해서 책도 많이 썼고, 보스턴 역사학자로 유명한 미국 Suffolk 대학의 Robert Allison 교수를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 ) 질문: 교수님! 보스턴을 미합중국의 탄생지 또는 미국 독립운동의 태동지 라고 하는데요, 그 첫번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보스턴 차 사건이란 과연 어떤 사건인가요?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 독립 역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1700년대 영국은 미대륙뿐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고 인도까지 점령을 한 상태였죠. 동인도지역 무역 독점권을 따낸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세우게 되고 중국에서 구입한 차를 인도를 통해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로 유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773년에 들어 동인도회사의 경영이 어려워 지면서 영국 의회는 차조례를 통과시켜 동인도회사가 아메리카 식민지에 직접 차를 수출하도록 허락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에는 계속 세금을 부과하죠. 한 특정 회사로부터만 차를 사도록 강요당하고, 의회 대표가 없는 식민지임에도 세금을 내야 했던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에 강한 불만을 느끼게 됩니다.

1773년 가을, 마시는 차를 실은 영국 선박이 보스턴 항에 들어오게 되는데요, 식민지 주민들은 이 차 상자들을 보스턴 항에 하역하면 영국의 부당한 세금을 수용한다는 뜻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영국 선박의 하역을 거부했지요. 그리고 1773년 12월 16일 밤, 차 상자가 실려있는 영국 배에 올라 차 상자를 모두 바다에 다 던집니다. 다른 기물을 파손하거나, 인명 피해도 전혀 입히지 않고 순전히 차상자만 바다에 던지지요. 이 때 던진 차 상자가 총 342개로 지금으로 치면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를 보스턴 항구의 바닷물에 던진 사건을 보스턴 티 파티 즉 보스턴 차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김 ) 질문: 그럼 누가 보스턴 차 사건을 주도했던거죠?

흥미로운 점은요, 누가 보스턴 차 사건을 주도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50명에서 100명 가량되는 이들이 모두 아메리칸 인디언 복장으로 변장을 하고 있었거든요.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되면 나중에 징계와 처벌을 받을게 뻔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눈치챘습니다. 이들이 미국의 독립을 위해 결사된 비밀조직인 '자유의 아들들'이란 것을요. 영국정부가 임명한 총독은 범인들을 잡아내어 처벌하려고 했지만 그 누구도 누가 이 사건을 주도했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스턴 차 사건이 있은 지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이 보스턴 차 사건에 관해 다시금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노라고, 또 그들은 자유의 아들들 이었다구요.)

김 ) 질문: 그럼, 보스턴 차 사건이 미국 독립 운동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합니다.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신들의 소유가 아닌 수백 개의 차 상자를 파괴하고 바다에 던진 것은 중대한 범죄였죠. 분노한 영국 의회는 보스턴 주민 전체에 책임을 물어서 바다에 던진 차 값을 지불 할 때 까지 보스턴 항을 폐쇄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총독의 권한을 강화하고 군대를 파견하죠. 1774년 메사추세츠는 영국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 하기 위해 다른 식민지들에 모임을 제안하게 되는데 이 회의가 '제1차 대륙 회의'입니다. 식민지 대표들은 보스턴 항을 폐쇄한 영국 정부가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등 다른 항도 폐쇄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영국의 부당한 조치를 규탄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구요, 보스턴 항을 다시 열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영국은 1775년 토머스 게이지 장군을 메사추세츠 주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저항세력에 대해 무력으로 맞서기로 결정합니다. 이에 대비해 메사추세츠 주민들도 지방 의회를 구성하고 전쟁에 나갈 남자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하죠. 그리고 1775년 렉싱턴에서 첫 총성이 울리게됩니다.)

김) 현장 리포트: 네 이렇게 해서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로버트 앨리슨 교수로부터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 들었는데요, 그럼 보스턴 차건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그 현장에 가봐야 겠죠? 보스턴 차사건을 일으키기로 결의를 하고 미국 원주민 인디언 복장으로 변장하고, 보스턴 항에 정박해 있던 영국배로 달려간 보스턴 사람들처럼 저도 지금 달려가 보겠습니다.

엠씨)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 정부에 대한 보스턴 주민들의 불만을 표출한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식민지의 대륙회의가 열리고 또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간 전투가 시작됐다니 그야말로 미국 독립의 태동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236년전 보스턴 주민들이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진 사건이 발생한 보스턴 항과 그 당시의 영국 선박은 과연 어떤 모습일 지 무척 궁금한데요, 김현숙 기자, 보스턴 항에 도착을 했나요?

김) 현장 리포트: 네,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이 곳은 보스턴 항의 유람선 선착장 입니다. 여기서 역사적인 현장을 도는 유람선을 타면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현장과 배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보스턴 차 사건의 그 현장, 어떤 모습일까요? 유람선을 타고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자. 이제 배가 출발합니다. 그런데 주위에 보니까요 1700년대 세워졌다는 세관도 그대로 있구요,… 바로 이 곳을 통해서 영국의 배들이 들어왔던 거죠. 그리고 배의 안내방송에서 지금 보스턴 차 사건 현장을 지나고 있다고 설명을 한는데요, 아 바로 저기군요! 생각보다 그렇게 크진 않네요. 1700년대 배니까요, 목조선인데,,,그런데 마치 인디언 복장을 한 보스턴 주민들이 저 배에 올라타서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자 그런데 보스턴 차 사건에 이어서 미국 독립의 불을 붙인 사건이 렉싱턴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을 이끌어낸 미국인들.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대륙회의를 갖게 되구요, 한편으로 전쟁에 나갈 남자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합니다. 훈련된 민병대가 영국군과의 전투를 준비하며 렉싱턴으로 달려간 것 처럼 저도 렉싱턴으로 달려가 보겠습니다.

엠씨)그런데 보스턴 항에1700년대의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니 놀랍군요. 보스턴은 미합중국의 탄생지라는 별명에 걸맞게 역사적인 현장들이 잘 보관돼 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로도 유명한데요, 김현숙 기자가 다음으로 찾아갈 렉싱턴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앞서 로버트 앨리슨 교수가 언급했듯이 렉싱턴에서 미국 독립전쟁의 신호탄이 되는 전투가 발생하는데요, 김현숙 기자, 렉싱턴 모습 어떤가요?

김) First Shot! 민병대와 영국군과의 첫 번째 총성이 울렸던 곳! 렉싱턴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에는 곳곳마다 독립운동가들을 기념하는 곳이 있고, 전투 현장도 있다고 하네요. 제가 지금 있는 이 곳은 Hancock Clark House Museum이라는 곳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하고 아주 전원적입니다. 시골과 같은 이 곳에서 독립을 위한 첫번째 총성이 울렸다고 하니까 기분이 새롭네요. 이 곳에는 또 Lexington Historical Society 라고 하는 학회가 있는데요 거기 직원을 만나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집에 들어와 보니까 1700년대 그대로예요. 가구며, 모든 것들을 보존해 놨는데요, 계단을 올라갈때도 조심조심 올라가야 하구요, 이 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제인 모스 선생님, 이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거죠?

우리가 지금 있는 이 곳, 핸콕 클락크 하우스는 보스턴 지역에서 유명했던 두 목사들이 살던 생가입니다. 메사추세츠 주지사였고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존 핸콕의 할아버지인 존 핸콕(John Hancock) 목사가 살았었구요 핸콕 목사가 죽고 나서는 핸콕가와 결혼을 한 조나스 클라크(Jonas Clark) 목사가 거주했죠. 그래서 이 집의 이름이 핸콕 클락크 하우스 이고 200년이 넘는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폴 리비어(Paul Revere) 장군이 밤새 말을 타고 달려온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당시 이 집에는 보스턴 지역의 유명한 애국 지사인 사무엘 아담스와 존 핸콕이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폴 리비어는 대규모의 영국군이 렉싱턴으로 향한다는 첩보를 접하고는 밤새 달려 이 집으로 옵니다. 두 독립운동가를 피신시키기 위해서요. 사무엘 아담스와 존 핸콕은 당시 보스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독립 운동가로 그 어떤 전투 보다 이들의 안전이 먼저였지요. 그럼, 그 독립 운동가들이 묵었던 방으로 직접 한번 가 보실까요?

여기가 바로 그들이 묵었던 사랑방 입니다. 1700년대 모습 그대로 보존이 돼 있죠? 바로 이 방에 사무엘 아담스와 존핸콕이 묵었었고 밤새 달려온 폴리비어가 문을 두드리며 이들을 깨웠을 겁니다! "다들 일어나세요! 영국군이 오고 있습니다!" 이 말에 이 집에 묵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놀라서 깼겠죠? "

김) 그럼 어떻게 렉싱턴에서 첫 번째 전투가 일어났나요?

1775년 4월, 영국군과 보스턴 민병대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보스턴을 포함한 모든 식민지에서는 각각 민병대를 조직해 훈련을 하고 있었죠. 특히 보스턴 지역 민병대는 만약을 대비해 보스턴 외곽에 군사 물자기지와 보급품 기지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보스턴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콩코드 지역에 있었습니다. 영국군은 이 콩코드의 보급기지를 습격해 무기를 압수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콩코드로 진군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비밀리에 내려진 명령이지만 민병대는 이들의 작전을 입수하게 되고 콩코드로 진군하는 길목인 렉싱턴에서 영국 군인들을 맞을 대비를 합니다. 1775년 4월 19일 새벽 0시, 폴 리비어 장군이 핸콕 클라크 하우스에 도착해 영국군이 오고 있음을 알리게 되자 렉싱턴의 존 파커 장군은 렉싱턴지역 민병대를 '렉싱턴그린'이라는 초장지에 모읍니다. 그리고 4월 19일 새벽 5시 30분 렉싱턴 그린에서는 총격전이 시작되는데요,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첫 총성이야 말로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지요.

김) 그럼 렉싱턴 전투 이후엔 어떻게 진행이 됐습니까?

당시 렉싱턴에서는 순식간에 민병대원 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영국군은 콩코드 지역까지 계속 진군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콩코드 북쪽 다리 전투에서 영국군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콩코드에서 영군군 병력과 비슷한 수의 민병대가 영국군을 공격한 것입니다. 영국군이 보스톤으로 후퇴하는 내내 민병대의 공격을 받게 되죠. 이렇게 해서 콩코드에서 영국군과 민병대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가운데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이는 양측간 대규모 전쟁의 양상을 띄는 첫 번째 군사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렉싱턴에서의 첫 총성이 실수였는지 의도된 것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렉싱턴에서의 첫 교전 소식은 미국 식민지 주민들의 독립 의지를 자극하게 되고 독립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됩니다.

김) 자 이렇게 해서, 미국 독립운동의 첫번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는 보스턴 차사건과 첫 번째 전투라고 할 수 있는 렉싱턴 전투를 그 현장에 와서 확인해 봤습니다. 보스턴과 렉싱턴이 속해있는 메사추세츠 주. 메사추세츠 주의 의미는 다른 그 어던 지역보다 크다고 하겠는데요, 이 지역이 미국 독립에 있어서 갖는 의미를 로버트 앨리슨 교수로 부터 들어보구요 저는 현장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직도 미국 독립의 태동이 느껴지는 곳, 첫 번째 총성이 들리는 것만 같은 보스턴에서 김현숙이었습니다!

메사추세츠주는 긴 자치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보스턴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은 바로 보스턴 주민 자신들이었죠. 영국의 그 누구도, 영국에서 보낸 그 누구도 보스턴 인들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메사추세츠주는 이미 자신들의 헌장도 있었고, 지역사회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회도 구성이 돼 있었니까요. 메사추세츠는 자신들이 직접 선출하고 자신들을 대변하는 지도자들만이 통치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런 정신이 바로 독립 운동의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긴 자치의 역사 속에서 발달한 의회와 독립 의지. 보스턴이 독립운동의 태동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엠씨) 보스턴을 왜 미합중국의 탄생지라고 할까 궁금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네요. 보스턴에서 시작된 이 독립운동을 통해서 미국 독립의 태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현숙 기자 보스턴 소식 잘 들었습니다.

미국 독립기념일 특별 기획 방송, 내일 이시간에는 제 2부로 미국의 독립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또 어떻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에 이르게 되는지 '미국 독립 정신의 표상지 필라델피아를 가다' 편이 방송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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