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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7.1조치 7년, 사실상 유명무실’


북한이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에 착수한 지 오늘 (1일)로 7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북한은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기 위한 사상 유례없는 경제개혁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북한 당국은 오히려 경제개혁과는 정반대되는 조치들을 잇따라 취하는 등 현재 ‘7.1 조치’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연철 기자가 자세한 소식 전해 드립니다.

2002년 7월1일 북한이 취한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의 핵심은 임금과 물가의 대폭 인상, 배급권 축소, 기업의 자율권 강화 등 1990년대에 붕괴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북한은 금강산관광특구와 개성공업지구를 지정하고, 종합시장 개설과 국영상점의 임대, 개인 상업 허용 등 유통 분야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농업과 기업 분야 개혁 조치를 단행했고, 과거보다 더 나은 외자유치 여건을 조성하는 등 관련 조치들을 취해 나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경제는 2002년 이후 몇 년 동안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등 ‘7.1 조치’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7.1조치’는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한국 정부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정영태 선임 연구위원은 ‘7.1 조치’가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영태] “ 7.1 경제개선 관리 조치는 처음과는 달리 실질적인 결과가 별로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장마당이 확산되는 등 체제 위협이 나타나자 개혁개방보다는 움츠러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연구원은 북한이 이미 지난 2005년부터 개혁개방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놀랜드 연구원은 북한 정권은 경제적 변화가 국내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항상 불편하게 생각했다면서, 풍작과 한국, 중국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경제 사정이 나아진 2005년부터는 오히려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등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시장의 급속한 확산과 주민의 의식 변화에 놀라 2005년에 국가배급제 복귀를 선언했고, 2007년 하반기에는 49살 이상 여성에게만 장사를 허용했습니다. 이어 지난 해 말에는 공산품 시장 판매 금지, 상설시장을 10일장으로 전환하는 등의 시장통제 조치를 추가로 내놨습니다.

특히, 북한은 올해 들어 경제개혁 보다는 계획경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년사를 통해 주민들에게 대대적인 노력 동원 운동인 혁명적 대고조를 촉구한 데 이어, 4월에는 새로운 속도전인 ‘1백50일 전투’에 돌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국 삼성경제연구소의 동용승 경제안보팀장은 북한의 ‘7.1조치’가 당초부터 개혁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무너졌던 계획경제를 살리기 위한 차선의 방법이었을 뿐이라면서,‘1백50일 전투’는 계획경제를 살리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동용승 “7.1조치 이후 7년이 지난 결과 변화가 생긴 것에 대해서 또 다른 방법론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 목표는 역시 자력갱생, 그리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다시 정상화시키는….”

이처럼 북한의 ‘7.1조치’가 7주년을 맞은 지금 사실상 폐기된 듯한 모습을 보인 것과는 달리, 지난 해 북한경제가 비교적 견실한 성장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는 발표가 최근 나왔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28일 발표한 ‘2008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를 통해, 지난 해 북한의 국내총생산 GDP 증가율이 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3.7%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국평화연구소의 존 박 연구원은 그같은 수치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의 GDP 통계자료는 잘못 해석될 여지가 많다면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워낙 초보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GDP 증가율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통계를 발표한 한국은행 측도 북한의 지난 해 경제성장은 양호한 기상 여건으로 곡물 생산이 늘었고 북 핵 6자회담 결과 중유와 원자재 지원이 이뤄지는 등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처럼 7•1 조치는 시행 7년이 지난 지금 실망스러운 경제적 결과를 낳았다는 비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북한사회 전반에 전에 없던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그 중에서도 북한 정부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확산되면서 주민들의 의식이 변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삼성 경제연구소의 동용승 팀장은 말했습니다.

[동용승] “ 국가로부터 바라는 마음이 줄어들었죠. 대신 시장이 확산되면서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아울러, ‘7.1조치’ 이후 북한에서는 시장화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권력기관과의 결탁 등 부정부패가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흥부자들의 출현으로 인한 빈부 격차의 확대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당분간 새로운 경제 개혁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피커슨국제경제연구소의 놀랜드 연구원은 북한이 최근 취한 가장 큰 경제적 조치는 1950년대의 천리마 운동을 부활한 것이라며, 이같은 움직임은 김정일 위원장의 불안한 건강 상태와 이에 따른 후계 문제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의 경제정책이 개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평화연구소의 존 박 연구원은 현 상황에서는 북한의 경제 계획과 경제 활동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7.1조치’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전국적인 차원에서 자원의 효율적 분배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후계 문제로 군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제한된 자원이 특정 분야로 전용되는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한국 삼성경제연구소의 동영승 팀장과 통일연구원의 정영태 연구위원도 당분간 북한 정권이 다른 경제 개혁과 개방 정책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체제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외부로부터 많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 입장에서 개혁보다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차단하는 행동들이 더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다만, 정 위원은 음성적으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 (주민들이 스스로) 부족한 수요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음성적 형태로 시장경제와 같은 개혁 움직임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을 더욱 통제할 경우 주민들은 다시 암시장으로 모여들 것이며, 더욱 조직화된 지하경제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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