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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비, 개혁적 인물인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이란의 시위가 사상 최대 규모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시위대는 대선 야당 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며 격렬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데요. 이란 저항세력의 중심인물로 갑작스럽게 부상한 무사비 전 총리, 어떤 인물인지 알아 보겠습니다.

문) 이란의 대선 후폭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네요.

답) 그렇죠? 어제는 특히 대선 야당 후보였던 무사비 전 총리가 시위 도중 숨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집회를 강행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목요일이 주말이어서 집회에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려들었는데요. 무사비 전 총리 지지자들의 함성을 들어보시죠.

문) 공식적으로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된 것으로 발표됐지만 무사비 전 총리 지지자들은 대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무사비, 어떤 인물입니까?

답)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언급하셨는데 최근 무사비의 지지자들은 그를 '이란의 간디'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반정부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부상한 겁니다. 무사비는 이란 북서부의 하메네흐에서 차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란의 현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는 고향도 같고 친척지간입니다.

문) 지금은 개혁세력의 간판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원래는 강경파였다면서요?

답) 그렇습니다. 1979년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의 추종자였으니까요. 그만큼 강경파로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 이란으로서는 어려운 시기에 총리를 지냈더군요.

답) 예. 무사비는 이슬람혁명 후에 외무장관을 거쳐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는데요. 이란 -이라크 전쟁 기간과 일치하죠? 무사비는 전쟁 중에도 이란 경제를 비교적 잘 지탱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총리 재임 당시 핵무기 암시장에서 원심분리기의 구입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서방 국가들로부터 의혹을 사고 있구요.

문) 무사비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점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호메이니를 추종했던 이슬람 근본주의 강경파였던 무사비가 어떻게 개혁파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는가?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요?

답) 그런 변신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서방 국가들은 그 의도를 의심하고 있구요. 18일자 뉴욕타임스 신문이 무사비의 최근 행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서구 기준에서의 진보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그런 무사비가 왜 야당서력으로 돌아섰는지, 또 그가 광범위한 민주주의적 요구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문) 단순한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 그런 의문인가요?

답) 그런 의혹이 분명히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신문도 무사비의 투쟁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강경 정책에 반대하는 진정한 국민적 저항운동인지, 아니면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인지 확실치 않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최근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무사비 전 총리 사이에 정책 차이가 거의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구요.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무사비에게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습니다.

문) 하지만 무사비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 해석도 있죠?

답) 그렇습니다.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다른 이들처럼 무사비 역시 혁명 초기의 선동적인 급진주의가 평화와 국가 건설의 시기에는 완화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평가입니다. 또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이란 연구자인 샤흐람 홀디는 무사비를 "혁명의 혼혈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원칙에 헌신적이지만, 진보적인 열망을 갖고 있는 그런 인물로 보는 겁니다.

문) 무사비에 대한 어떤 평가가 옳은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이번 대선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대중의 폭넓은 관심을 받던 인물이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죠?

답) 예. 무사비의 성향 자체도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호소력 있는 연설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20년이나 정치 일선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의 보수적 집권층에 맞서는 개혁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히 강한 면을 내제하고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1980년대 총리로서 어려운 대내외 환경을 거치면서 위험한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호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진행자) 예. 이란 사태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 향방을 가름할 인물 중 하나로 무사비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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