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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입주기업, 북측 요구에 낙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오늘 열린 실무회담에서 북한 측이 제시한 요구 안에 대해 크게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의 요구가 사실상 개성공단에서의 기업 경영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도 남북 당국 간 추가 협상에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이 11일 남북 실무회담에서 북측 근로자의 임금을 월 3백 달러 수준으로 올려달라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예상보다 훨씬 높은 액수'라며 크게 당황해 하는 분위기입니다.

가뜩이나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북측이 이 같은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함에 따라 개성공단을 아예 닫으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사실상 개성공단에서 나가라는 얘기"라며 "이번 요구는 협상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는 조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대표는 "생산성까지 따질 경우 북측의 이 같은 요구는 중국과 베트남은 물론 중남미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며 "한국 임금과도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이번 요구를) 돈의 가치로 따지면 6백 불 정도 인상해달라는 것인데 이는 국내 최저임금보다 더 달라는 얘기입니다. 국내에 비해 개성공단 생산성은 3분의 1도 못 미칩니다. 중남미 국가와도 임금 효율성을 비교해보면 2 배로 달라는 얘기입니다. 사실상 개성공단 폐쇄를 전제로 해서 던진 카드로 보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임금에 비해서도 과도한 요구"라며 "기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5백%에 달하는 인상률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예상 밖의 조건을 내세운 데 대해 개성공단 폐쇄의 책임을 남측으로 떠넘기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중앙대 이조원 교수는 "북한이 임금 인상을 핑계로 남한 기업들이 스스로 공단에서 철수하도록 한 뒤 공단 폐쇄에 대한 책임을 남한 당국으로 떠넘기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우선 북한의 내부 사정, 국내 파워 구조 차원에서 나온 조치로 보여지고요, 또 협상을 어렵게 만들어서 남측의 의도도 떠보면서 개성공단을 닫을 수 있는 궁리를 모색해보고자 하는 측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공을 남측으로 넘겨 일단 책임을 면하고 남측과 협상을 해나간다는 다목적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섬유업체를 운영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이미 한계상황에 몰린 기업들에게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제시한 것은 개성공단 문을 닫으려는 수순이 아니냐"고 우려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지난 달 15일 통지문에서 '나갈 테면 나가라'고 통보한 그 때 이미 개성공단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우려했습니다.

정부의 협상 방식과 태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북한이 억류 근로자 문제와 개성공단을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억류 문제를 회담 의제로 내세운 것은 처음부터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오는 19일 열릴 후속 회담에서 이번 요구를 계속 고집할 경우 입주업체들의 본격적인 철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추가 협상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터무니 없는 금액"이라며 "북측이 이를 계속 고집할 경우 기업들의 철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측은 오는 12일 대책회의를 열고 2차 남북 실무회담 결과에 대한 공식 견해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성공단 1단계 토지임대료 인상 요구와 관련해 기존 계약에 따라 이미 1천 6백만 달러를 지급한 현대아산과 토지공사도 북측의 이번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단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관계자는 "이미 지급한 것을 다시 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해당 기업의 의견을 수렴해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오는 19일 있을 남북 당국 간 추가 협상에 대해 일말의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자는 "일단 높은 가격을 제시한 뒤 앞으로 회담에서 요구 수준을 협상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할지에 대해 현재로선 예단할 수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북한이 다시 만나자고 한 것은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며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비관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북 당국이 다시 만나더라도 유 씨 문제에 진전이 없을 경우 실질적 협상의 여지는 거의 없다는 게 정부 안팎의 관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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