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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6월 9일


1934년,

금세기의 살아있는 전설, 어린이 만화 영화의 선구자인 월트 디즈니의 만화 캐릭터, 도널드 덕이 세상에 첫 선을 보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사의 주연 만화 캐릭터인 온건한 성격의 미키 마우스에 맞설 상대로 성격 급한 도널드 덕을 창조해냅니다.

이후 무려 20여 년, 백 여 편의 에피소드에 출연할 동안 자기 맹신에 화 잘 내는 단점과 결점을 모두 겸비한 도널드 덕의 개성은 성우 클러런스 내시의 '오리 소리'와 결합돼서 더욱 빛나게 됩니다.

월트 디즈니는 자신이 창조해낸 캐릭터들을 인간과 가까운 친구, 친척들로 사람들이 받아주기를 바랬습니다.

월트 디즈니. 그는 만화영화에 있어서 탁월한 직관력과 풍부한 상상력, 사업적 수완으로 '디즈니 신화'를 이룩해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출발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1928년 미키 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증기선 윌리'라는 만화영화를 개봉하기 전까지 디즈니는 수많은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디즈니는 한 광고대행사에 취직 했지만 한 달 만에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은 디즈니는 형 로이와 함께. '디즈니 브라더스'란 간판을 내걸었고 '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인 '증기선 윌리'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1934년 오늘 디즈니가 도널드 덕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깜찍한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이 소리를 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혁명에 가까운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1987년,

한국 연세대학교 학생 천여 명이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입니다.

학생들은 대통령직선제를 위한 개헌과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했고 그러다가 전경들과 충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세대 재학중인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집니다. 이 군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상태에 빠졌고 한달 만에 심폐기능이 정지돼 사망하고 맙니다.

이에 한국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하루 100만여 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시민 항쟁의 불길이 거세게 일어납니다. 이는 하루 뒤인 6월 10일 6월 항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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