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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6월 7일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에 있던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아 유대인 희생자들을 추모한 최초의 교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입었던 복장으로 교황을 맞이했습니다.

폴란드 출신으로 처음 교황이 된 요한 바오로 2세는 한해전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아우슈비츠에서 가까운 크라코우에서 대주교로 사역했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탄생은 냉전 체제에서 교회가 세계에 던진 화해와 평화의 전조였으며 교황 자신도 동서 냉전의 빙하를 녹이는 데 큰 힘을 보탰습니다. 그는 교황 이 된 후 바티칸 재단 앞에서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종교간 대화, 인종간 화해의 행보에 나섭니다.

교황은 1979년 모국 폴란드를 방문해 당시 자유노조에 대한 지지를 밝혀 폴란드는 물론이고 동유럽 민주화의 초석을 놓기도 했습니다.

또 1993년에는 가톨릭과 2000여 년간 적대적이었던 유대교와 화해를 모색해 바티칸과 이스라엘의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등과도 지속적으로 화해를 모색합니다.

2001년에는 또 역대 교황 가운데 최초로 이슬람 사원을 찾았습니다.

역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1996년,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음반에 관한 사전심의와 사후제재가 철폐됩니다. 한 해 전 정기국회에서 개정된 '음반과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의 시행에 따라 모든 가요 음반 제작과 수입 때 의무적으로 받던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 것입니다.

한국의 사전 심의제도는 일제의 잔재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시민들을 압제로 통치하기 위해 우선 언론을 통제해야했고, 이 수단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이 바로 사전 심의였던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이후에도 이 사전심의제도는 통치 세력의 입맛에 맞춰지며 그 모습을 달리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7-80년대 아침이슬과 작은 연못 등 이른바 운동권 노래들과 동백아가씨등 수많은 가요들이 심의에 걸려 금지곡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가수 정태춘은 사전 심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하며, 국가 제도에 맞서 심의를 거부하고 불법 테입을 자체 제작 배포합니다.

이 일로 정태춘은 기소됐고 이런 와중에 위헌 소송을 제기해 마침내 1996년 오늘, 사전 심의 철폐라는 성과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이날 정태춘와 윤도현, 장사익 등 대중음악인들은 서울대 문화관에 모여 '자유'라는 제목의 자축공연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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