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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6월 5일


1947년,

미국의 조지 마샬 국무장관이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마셜 플랜, 즉 유럽 부흥 계획을 제창합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자립을 위해 미국이 원조를 하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제 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확보한 자본과 생산 능력의 대 축으로서 유럽 부흥 계획을 짜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셜플랜은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는 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국이 된 소련은 기존의 독일과 맺은 조약에 따라 이미 동유럽 국가들을 위성 국가들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일의 영향권에 있었던 다른 나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코자 하고 있었습니다.

전후 국력이 소진되고 황폐해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승전국이 된 소련의 무자비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련의 위성국, 식민지로 흡수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작된 마셜플랜은 2차 세계 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의 경제를 재건해 민주주의 국가들이 소련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위협으로부터 살아 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그 취지였습니다.

소련은 미국의 이 같은 계획에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미국의 의도를 간파한 소련은 1947년 6월 파리에서 열린 영국과 프랑스, 소련 외무 장관 회담에서 이 계획에 반대하고 이후 집요하게 방해했습니다.

더욱이 마셜플랜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은 국가들과 미국간의 우호적 관계를 우려한 소련은 위성 국가 들을 모아서 미국에 대항하는 이른바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만듭니다.

이에 미국은 194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완성시켜 소련에 맞서게 됩니다.

결국 2차 대전에서 이루어졌던 미-소 간의 협조, 동맹관계는 완전히 붕괴됐고, 이른바 완전한 의미의 냉전이 시작됩니다.

1967년,

이스라엘이 주변의 아랍 국가들을 기습 공격합니다. 제 3차 중동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에는 1956년 수에즈 전쟁 이후에 별다른 평화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국경선은 강이나 협곡 등을 이용한 자연 국경선이 아니기 때문에 늘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시나이반도에 주둔중인 유엔군을 위협하고 일방적으로 티란 해협의 봉쇄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바다를 통해 홍해와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사실상 막혀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전군에 동원령을 내리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아랍국가들은 결국 전쟁 시작 엿새 만에 요충지를 점령당하고 결국 유엔이 제안한 정전협정 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6일 만에 끝나 '6일 전쟁'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제 3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과 속전속결의 결정판으로 전쟁사의 신화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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