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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6월 3일


1965년,

미국의 우주비행사 에드워드 화이트가 미국 최초의 우주유영에 성공합니다.

이날 발사된 것은 제미니 4호로 이것은 미국 항공 우주국에 의해 이뤄진 미국의 유인 우주 비행 계획의 일환 이었습니다.

화이트는 이날 제미니 4호가 세 번째 지구 궤도비행을 하는 도중 우주선 밖으로 나가 우주비행을 한 것입니다.

회이트는 이 전율할만큼 경이로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초 그에게 예정된 우주 유영시간은 12분이었지만 화이트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20여분간 유영을 합니다. 결국 지구에 있는 휴스턴 사령탑은 화이트에게 우주선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해야만 했습니다.

제미니는 지구 궤도를 총 62차례 선회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합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화이트는 2년뒤로 예정된 최초의 아폴로 3인승 우주선의 승무원으로 지명됐습니다.

하지만 1967년,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아폴로 1호에 타고 있던 화이트는 발사대에서 발생한 불의의 폭발사고로 2명의 동료 우주인과 함께 순직합니다. 이들은 미국 우주계획의 최초의 희생자였습니다.

1964년,

한국에서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절정을 이룬 가운데 대대적인 시위진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일회담은 한국과 일본간의 기본관계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당초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자유우방과 공산진영과의 대결에서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공산권에 대항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에 제1차 한일회담은 1951년, 6.25 전쟁중 연합군 최고사령부 중재 하에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강점 등으로 점철되는 긴 역사와 함께 양국간의 골은 너무 깊었고. 결국회담은 결렬됩니다.

이후 3차 회의를 끝으로 오랫동안 중단됐던 한일 회담은 박정희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급속히 진전됐고, 이에 한국의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과 학생들은 한일 협정을 매국외교라 부르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시내에는 만5천여 명의 시위 군중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에 한국 박정희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4개 사단 병력을 투입해 시위를 무력 진압했습니다.

시위의 주동인물과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학생과 정치인과 언론인만도 350여명에 달했습니다. 이명박 현 한국 대통령도 6.3사태의 주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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