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역사속 오늘] 5월 27일


1985년,

제8차 남북 적십자회담이 나흘 일정으로 서울에서 시작됩니다. 1973년 7월 제7차 회담이 있은 지 12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남측 수석대표는 이영덕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그리고 북한 측 대표는 이동률 단장이었습니다.

8차 회담의 주요 안건은 이산 가족 상봉으로 양측은 회담에서 한국전으로 남북한에 각각 헤어져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고향 방문과 서울 예술단과 평양예술단의 쌍방 교환 공연에 합의였습니다.

북한측 방문단들은 이 방문 기간 동안 경기도에 있는 용인 민속촌을 돌아보고 남한의 텔레비전 방송사도 돌아 봤습니다.

그리고 석달 뒤인 8월 26, 제9차 남북 적십자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고 마침내 9월 20일부터 나흘 간 한반도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집니다.

1994년,

러시아의 살아있는 양심,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미국 망명생활을 접고,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1974년, 공산주의 소련에서 강제 추방돼 이제는 자본주의로 바뀐 러시아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20여 년만의 고국 행이었습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솔제니친을 러시아인들은 열렬히 환영합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인들에게 '민족의 양심'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세상에 나오자 세계인은 충격에 빠집니다. 이 소설이 스탈린 시대의 폭정과 사회주의 소련의 실상을 고발한 첫 작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후 솔제니친은 1970년, 소련 강제 노동 수용소의 내막을 폭로한 책, '수용소 군도'로 노벨 문학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해외에서 출간된 것이 문제가 돼 1974년 솔제니친은 소련으로부터 추방당하고 맙니다.

1994년 오늘, 솔제니친의 귀국은 소련의 기존의 정치인들을 긴장시키게 만듭니다. 심지어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돌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로 변한 낯선 조국은 솔제니친에게 괴리감을 안겨줬습니다.

이후 일각에서는 솔제니친이 정권에 대한 모호한 태도와, 현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이후 2003년 2월 3일, 솔제니친은 89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관련뉴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