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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2006년 10월 핵실험부터 25일 추가 핵실험까지


지난 2006년 10월9일, 북한이 첫 핵실험을 실시한 뒤 25일 추가 핵실험을 단행하기까지 2년 6개월여 간의 과정을 서지현 기자와 정리해 봅니다.

) 서지현 기자. 시계를 지난 2006년 10월로 되돌려보죠. 북한의 첫 핵실험 상황부터 돌이켜 볼까요.

답) 2006년 10월9일, 북한은 국제사회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9일 오전 11시55분 방송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주체 95, 2006년 10월9일 지하 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이에 앞서 한국 대전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오전 10시35분께 함경북도 화대군 지역에서 진도 3.58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했고, 미국 지질조사국 역시 4.2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 북한의 핵실험을 확인했습니다.

앞서7월5일,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당시 북한의 핵실험 단행은 국제사회의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 이후 유엔이 발빠르게 북한의 핵실험에 강력히 대응하고 나섰는데요.

답) 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핵실험 엿새 뒤인 15일, 안보리 헌장 7조에 의거해 대북 제재결의 1718호를 채택했습니다. 그밖에 각국의 강력한 규탄 성명이 잇따라 발표되는 가운데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2차 핵실험 계획을 중국에 통보했다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당시 지금은 총리가 된 일본의 아소 다로 외상은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북한이 두 번째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아소 다로 당시 외상은 일본 정부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 해 12월18일, 제5차 6자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됐습니다.

) 이어 2007년에는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양자회담을 가졌지요.

답) 그렇습니다. 미-북 양자회담은 2007년 1월16일부터 사흘 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습니다. 그 결과 다음 달 열린 6자회담에서 2.13 합의문이 채택됩니다. 이어 6월, 국제원자력기구, IAEA 실무단이 방북해 2.13 합의에 따른 북 핵 시설의 폐쇄와 검증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2주 뒤인 7월15일, 북한 외무성은 영변 핵 시설 가동중단을 발표하고, 11월, 미국 측의 북 핵 불능화 팀이 방북해 불능화 조치에 착수했습니다.

) 그리고 2008년에 들어서면서 북 핵 신고 문제가 논의되는 등 북 핵 문제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는데요.

답) 네, 2008년 4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싱가포르에서 북 핵 신고 문제에 대해 잠정합의를 이뤘습니다. 다음 달, 북한은 방북한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에게 영변 원자로 가동일지를 전달했습니다. 북한은 이어 6월26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 시설 목록이 담긴 60쪽 분량의 핵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 곧이어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에 착수했죠?

답) 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45일 내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계획을 의회에 통보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핵 신고를 제출한 다음 날인 6월27일, 영변 핵 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했고, 이후 7월10일, 열 달 만에 6자회담이 재개됐습니다.

) 그러나 검증 문제가 제기되면서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연기되지 않았습니까?

답) 네, 북한이 제출한 핵 신고서에 핵무기 제조 숫자와 시리아에 대한 핵 확산 의혹 등에 대한 답변 등 핵심 내용이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는데요, 미국 정부는 철저한 검증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이후 부시 대통령의 의회 통보 후 45일이 지난 8월11일을 맞았지만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연기됐습니다.

북한은 8월26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 신고서를 제출하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로 한 약속을 미국이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핵 시설 불능화를 이미 중단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9월19일, 핵 시설 원상복구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들어보시죠.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의 효력 발생을 무기한 연기한 데 대응해 핵 시설 무력화 작업을 중단했으며 얼마 전부터 영변 핵 시설들을 원상복구하고 있다."

)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12월에 열린 북 핵 6자 수석대표 회동은 성과 없이 끝이 났죠?

답) 네, 당시 6자 수석대표 회동에서는 검증의정서 채택에 실패했습니다. 북한은 올 들어 1월17일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명의로 대남 전면대결 태세 진입 성명을 발표하고, 1월30일에는 정치군사 합의 전면 무효화 성명을 내는 등 남북관계의 긴장은 급속도로 고조됐습니다. 4월5일,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14일 유엔 안보리는 의장 성명을 공식 채택했습니다.

4월29일, 북한 외무성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며 직접적으로 핵실험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 내용, 들어보시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즉시 사죄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추가적인 자위적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가 자국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해 의장성명을 채택한 것에 대해 이를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즉 ICBM을 시험 발사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2006년에 이은 2차 핵실험을 북한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 언급한 것입니다. 이후 25일,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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