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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5월 21일


196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앨라배마 대학에 흑인학생 2명의 입학을 허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같은 판결은 인종차별주의자인 조지 월러스 앨라배마 주지사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월러스 주지사는 이들 흑인학생들의 학교 등록을 개인적으로 막을 것이라고 발표합니다.

다음날 연방 대법원은 이 판결에 대한 주민들의 감정이 악화돼 긴장이 고조돼고 있다며 명령을 연기해달라는 학교측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입학할 경우 폭력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앨라배마 주민들에게 법원의 명령을 평화적으로 준수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마침내 등록일인 6월 11 일 아침, 두 흑인 학생들이 학교에 도착하자 주지사 죠지 월러스가 학교 문 앞에 서서 이들을 막아섭니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고, 월러스 주지사는 할 수 없이 이들의 등록을 허용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입학 후에도 강의실을 옮길 때나 귀가 때 군인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두 학생들 가운데 한명인 제임스 후드는 등록 후 2달 만에 결국 다른 학교로 갔고, 비비안 말론 존스만 남아 1965 년 마침내 이 대학 첫 흑인 졸업생이 됩니다.

1991년,

인도의 전 수상이었던 라지브 간디가 선거 유세 중 자살 폭탄 테러를 받아 사망했습니다.

라지브 간디는 인도 초대 수상인 와하자왈 네루의 외손자이자, 인디라 간디 전 수상의 장남이었습니다.

인디라 간디는 자신의 후계자로 권력 지향성이 강했던 자신의 둘째 아들, 산자이 간디를 지목했지만 그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습니다.

이에 라지브 간디가 후계자로 지목됐고, 7년 전인 1984년 인디라 간디가 시크교도 경호원에 의해 암살당하자, 인도의 수상이 된 것이었습니다.

인도는 1991년 오늘, 라지브 간디가 목숨을 잃자, 정치적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국가 비상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인도 국민 의회당은 라지브 간디의 아내, 소니아 간디에게 당 총재직을 제안했고, 소니아 간디는 인도 집권 연정 의장직을 맡게 됩니다.

1871년,

미국 아시아함대 소속 군함 5척이 한국의 풍도에 들어와서 정박합니다. 미국은 대 아시아팽창주의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조선 측에 해협 수로 측량을 일방적으로 통고했고 이에 강력한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은 즉시 철수를 요구하면서 경고용 포격을 가합니다. 바로 신미양요의 서막이었습니다.

미군은 닷새 후 인천 월미도 근처에 있는, 물치도 앞바다로 이동해 조선에 통상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달 후 미국은 흥선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에 부딪혀 조선 개항을 단념하고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조선에서 철수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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