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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한국연속극을 사랑하는 미국인들 모임 ‘한국무리’


한국무리 회원들

(진행자) 미국문화계 소식을 전해드리는 '문화의향기' 시간입니다. 부지영 기자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오세요. 오늘 아주 빨간 티셔츠를 입고 나오셨네요. 영어의 T 모양으로 생긴 반소매 셔츠라해서 티셔츠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티샤쯔라고 하죠. 그런데 티샤쯔 도안이 특이한데요?

(기자) 예쁘죠? 한국의 인기 연속극에 나오는 장면들을 모아놓은 겁니다.

(진행자) 그렇네요. 한류 열풍의 시발점이 됐던 '겨울연가'에서부터 '가을동화', '여름향기', '봄의왈츠'까지 있군요. 저도 유명한 '겨울연가'아주 재미있게 봤던 같은데요?

(기자) 그러고 보니 저는 하나만 빼고 다 봤더라고요. 연속극 되도록이면 안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진행자) 그래서 흔히들 중독 된다고 하죠? 그런데 어디서 이런 티셔츠를 얻으셨나요? 저도 탐나는데요.

(기자) 이 티셔츠, 아무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티셔츠가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사람들한테 선물 받은 특별한 티셔츠거든요.

(진행자)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라니,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한데요?

(기자) 그러시죠? 특별한 사람들이 모이는 특별한 만남의 현장, 함께 가보시죠.

햇볕 따스한 어느 봄날 오후…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 주의 한 중국 식당에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모여듭니다.

펜실베니아 주는 물론, 멀리 델라웨어 주와 뉴저지 주 북부에서까지 모여든 사람들...10대에서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한 이들은 한국 드라마 동호회 '한국 무리' 회원들, 바로 한국 연속극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모임은 '한국무리' 회원들의 9번째 정기모임… '한국무리' 대표이자 인터넷 웹사이트 'Koreandramas.net'의 관리자인 테레사 랜디스 씨, 오랜만에 만나는 회원들의 인사를 받으랴, 마지막 행사 점검을 하랴, 정신 없이 분주합니다.

//랜디스 씨//

"1년에 두 번씩 모임을 갖고 있는데요. 처음에 누군가 우리 한번 모여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서 시작됐어요. 그런데 그냥 몇 사람이 모여 점심을 먹을 게 아니라, 좀 더 정식으로 하자고 해서 처음 모임에 25명이 모였는데요. 그 뒤 계속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요즘에는 매 번 65명에서 70명 정도가 모입니다. 참석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대기자 명단이 있을 정도죠."

이날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한국 연속극에 푹 빠져 있다는 것, 한국 연속극을 보지 않으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부터 간호사, 공무원, 사회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 미국인들. 어떻게 해서 한국 연속극에 빠지게 됐을까요?

"어느 날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보게 됐어요. 다른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보게 됐는데 그 뒤로 완전히 사로잡혔죠."

"처음에는 일본 연속극을 봤었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한국 연속극을 보게 됐죠. 이젠 한국 연속극만 본답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불멸의 이순신' 하는 걸 보고 중간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랑 같이 왔어요. 엄마가 한국 연속극 보고, 저도 같이 봐요."

텔레비전 채널, 즉 떼레비 통로를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됐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요. 인터넷을 통해, 또는 가족이나 친구의 소개로 보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국무리' 회원들의 거의 절반 이상이 매일 한국 연속극을 본다고 답했는데요. 한국 연속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용이 건전하면서도 재미 있어서라고 합니다.

"얘기가 재미있으니까요. 줄거리가 굉장히 좋아요."

"미국 연속극보다 훨씬 깨끗하고 건전해요. 전 더 이상 미국 방송은 안 본답니다."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 왜 그렇게 다들 인물이 좋은지 놀라게 된답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문화와 역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가족을 소중히 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문화가 마음에 들어서, 또 배경음악이 마음에 들어서란 대답도 많았습니다.

"연장자를 공경하는 태도 등 한국 문화를 보여줘서 좋아요."

"역사를 좋아하거든요. 역사 공부를 하는데요. 한국 역사가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돼요. 한국의 1천년 역사, 다른 나라 역사와는 많이 다르죠."

"한국 사람들한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해요. 가족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알 수 있는데, 참 좋은 일이고요. 미국 사람들이 더 많이 봤으면 해요."

이제 막 한국 연속극을 보기 시작했다는 새내기에서부터 10년 넘게 한국 연속극을 봐왔다는 사람까지 경력도 다양했는데요. 한국 연속극을 보면서 생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또는 방금 본 연속극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 다들 인터넷을 뒤지게 됐고요. 그런 과정에서 인터넷 상의 한국 연속극 동호회 '한국무리', 즉 koreandramas.net이 탄생했습니다.

//랜디스 씨//

"2003년에 시작했고요. 처음에는 야후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2005년에 별도의 웹사이트로 독립해 나왔죠. 현재 회원 수가 6백22명이에요. 뉴욕과 필라델피아 인근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캘리포니아 주나 중국, 호주 출신 회원도 있습니다."

랜디스 씨는 '한국무리'가 일종의 서포트 그룹 (support group), 즉 같은 병이나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정신적으로 보듬어주는 모임의 일종이라고 설명합니다.

//랜디스 씨//

"저희는 한국 연속극에 중독된 사람들의 모임이죠. 여기 모인 사람들, 다 가지각색이거든요. 한국 연속극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아마 서로 친구가 되기 어려웠을, 그런 사람들이죠."

김치를 곁들인 점심을 나누며 한국 연속극 얘기에 열을 올리는 회원들. 식사가 끝난 뒤에는 한국 문화 소개 시간도 있었는데요. 뉴욕 이영희 박물관의 성종숙 관장이 모델과 함께 내려와 작은 한복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 날 모임은 회원들 간의 친목을 다지기 위한 놀이로 절정에 달했는데요. '한국무리' 발전과정에 관한 퀴즈, 한국 배우나 연속극 내용을 이용한 빙고 놀이 등으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놀이에서 이긴 사람들에게 주는 상품도 푸짐했는데요. 연속극 포스터, 즉 선전화와 디비디, 티셔츠, 찻잔 등, 아무데서나 구하기 힘든 귀한 물건들입니다.

한국 연속극에 대한 이들 미국인들의 관심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 호기심으로 발전하는 듯 한데요. 한국 연속극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는 사람,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한국 역사책을 구해서 읽었다는 사람, 심지어 한국에 가서 연속극 촬영지 등을 둘러보고 왔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국 연속극 좋아하니까요. 꼭 서울에 가보고 싶었어요. 2주 동안 머물면서 겨울연가 촬영지랑 대장금 촬영지도 구경갔고요. 남산타워에도 올라가 보고, 시장에도 가고 어디든지 걸어 다녔죠."

"너무 좋았어요. 집에 오고 싶지 않을 정도였어요. 벚꽃 축전도 구경하고 절에도 가고, 국립묘지, 고궁, 한국 민속 박물관, 이태원, 판문점, 안 간 데가 없네요. 연속극 촬영지 관광도 하고 갈비도 먹었죠."

"한국 너무 좋았어요. 거기서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시 가고 싶거든요. 모든 것이 낯설지 않고 편안했어요. 이제는 영어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도로 표지판도 영어로 돼 있고요. 식당도 그렇고, 생각 보다 돌아다니기 쉬웠어요."

한국 연속극을 사랑하는 '한국무리' 회원들, 사랑하는 마음이 큰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하는데요. 뻔한 줄거리, 공식처럼 등장하는 장면들에 식상함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연속극 마다 자전거 타는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연인들이 함께 자전거 타는 장면 말이에요. 그런 장면이 나오면 '또 시작이네' 하고 눈을 굴리게 되죠. 그리고 남자 친구 어머니가 아들의 여자를 불러내 찻집에서 만나는 장면도 많이 나오거든요. 화가 난 어머니가 여자 주인공 얼굴에 물을 끼얹곤 하는데요. 뭐, 좀 다른 참신한 장면은 없을까요?"

그런가 하면 외국어 자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외국어 자막을 신속하게 제공해야 해요. 그래야 인터넷에 해적판이 나도는 걸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이 네 가지 언어로만 자막을 만들어도 전 세계 인구의 90 퍼센트에게 다가갈 수 있거든요."

오후 1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한국무리' 회원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 7시까지 유쾌한 시간들을 보냈는데요. 오는 10월에 있을 다음 정기모임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들을 나눴습니다.

(진행자) , 부지영 기자, 특이한 모임이군요. 그나저나 펜실베니아주까지 다녀오느라 수고가 많았네요.

(기자)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요.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전 한국 연속극 동호회라고 해서 대부분이 아시아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시아에서 인기가 많으니까요. 70여명 중에 아시아계는 저 말고 딱 한 사람뿐이더라고요. 다들 한국 연속극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한국 문화, 한국 음식, 김치까지 너무들 좋아하고 잘 먹는데 제 어깨가 다 으쓱해 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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