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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5월 19일


1925년,

미국 네브라스카에서 훗날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로 그 이름을 떨치게 될 말콤 X가 태어납니다. 그의 원래의 이름은 말콤 리틀이었습니다.

말콤의 아버지는 아프리카 귀향운동을 주도한 흑인 민족주의자로서 백인들에 의해 살해됐고, 정신이상 증상을 일으킨 어머니와 힘겹게 살던 말콤은 당시 하류층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범죄의 길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강도죄로 투옥된 말콤은 옥중에서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때부터 말콤은 리틀이라는 성을 버리고, 알수 없다는 의미로 영어 알파벳 X를 자신의 성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출옥 후 말콤은 본격적인 흑인 인권운동을 전개합니다.

같은 시대, 비폭력적 흑인 인권을 주장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달리 흑인들의 현실과 분노를 그대로 뱉어낸 연설로 말콤은 흑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습니다.

특히 말콤은 마틴 루터 킹을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며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프로-아메리카 연합 기구를 설립,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던 말콤은 기구 설립 1년도 채 못돼, 1965년, 뉴욕에서암살됩니다.

1890년,

베트남의 민족운동가이며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호치민이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호앙쭈에서 태어납니다.

가난한 학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호치민은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21살 되던 해 프랑스 증기선의 요리사 일을 얻어 프랑스로 건너갑니다.

증기선을 타고 영국과 미국 등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호치민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민족주의적 가치관을 키우게 됩니다.

이후 세계 1차 대전이 종식된 1919년,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민족 자결주의를 선언하자, 호치민은 연합국 지도자들에게8개 항목의 탄원서를 보내, 베트남 민족의 자결권을 주장합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피폐한 삶의 노동자들이 있고, 또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있음을 발견한 호치민은 점차,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게 됩니다.

이 후 1924년, 호치민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 5차 코민테른 대회에 프랑스 공산당 대표로 참가해, 아시아의 식민지 문제와 농민의 역할에 대해 강조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9월 2일, 베트남은 독립을 성취합니다.

같은 날, 호치민은 바딘 광장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합니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9년 뒤, 베트남은 둘로 갈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1969년, 호치민은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합니다.

1957년,

한국에서 제 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립니다.

여성들이 수영복차림으로 무대 위를 걷는 장면만으로도 큰 화제가 된 대회였습니다.

대회장 좌석은 물론이고, 복도까지 관중이 들어차는 대성황을 이뤘던 이날, 결선에는 모두 일곱 명 후보 가운데 스물 세 살의 박현옥씨가 지, 덕, 체를 고루 갖춘, 한국 최고의 미녀, 미스코리아 진으로 꼽힙니다.

초기 미스코리아 대회의 취지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여해 한국을 알리고 국제 친선을 도모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한국 전쟁으로 빚어졌던 좋지 않았던 이미지를 벗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시선을 한 몸에 사로잡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그러나 해를 거듭할 수록 여성의 상품화라는 비난과 함께 2002년부터는 텔레비전 중계가 중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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